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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6 (목)

다시 찾아온 위기[안종범의 나라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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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범 정책평가연구원 원장

[안종범 정책평가연구원 원장] 8년 만에 또다시 위기다. 이번에는 45년 만에 선포된 계엄으로 갑작스럽게 위기가 닥쳤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이후 ‘트럼프 리스크’라고까지 불리는 대외불확실성의 위기에 더해져 이번 위기는 더 크게 느껴진다. 필자는 얼마 전 트럼프 당선으로 패닉에 빠진 일부 미국 지식인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했는데 그 후 얼마 되지 않아 그들로부터 한국에 대한 염려와 위로의 말을 들어야 했다. 방위비 추가 부담과 관세부과 등등으로 우리 앞에 닥쳐 있는 트럼프 리스크와 지속하는 국내경제 침체상황을 고려하면 앞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엄청난 정치 일정들은 역대급 위기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이데일리

이번 위기가 더 크고 염려스러운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사회와 국민이 극렬히 분열돼 있다는 것이다. 지역, 이념, 계층, 세대 갈등을 기반으로 하는 진영 간 갈등은 회복할 수 없어 보이기까지 한다. 이러한 진영 간 갈등은 늘 계층 간 갈등을 기초로 포퓰리즘이라는 고도의 정치적 수단을 통해 더욱 심화한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노와 사 그리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반목을 이용해 선거 때마다 저소득층과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가진 자와 대기업을 혼내주는 공약을 내세우면서 표를 얻는 포퓰리즘이 판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정치세력은 갈등 구조 상황을 이용해 ‘편가르기’를 하면서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행태를 자행하고 있다. 아울러 자신들에게 주어진 책임은 외면하면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서로에게 돌리는 횡포를 벌이기도 한다. ‘연금폭탄’, ‘세금폭탄’, ‘나랏빚폭탄’, ‘부동산폭탄’ 등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베네수엘라 등 여러 국가가 이러한 계층 간 갈등을 이용한 선거의 반복 즉, 포퓰리즘 때문에 몰락에 빠졌다는 걸 주목해야 한다. 이러한 갈등 구조는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통신기술(ICT)을 갖춘 우리에게는 더욱더 치명적이다. 대립하고 갈등하지 않아도 되는 이슈나 상황에도 사이버공간에서는 극렬한 갈등으로 나타나면서 생활화하기까지 한다.

이번 위기가 심각한 두 번째 이유는 모든 갈등과 왜곡이 경제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정치가 모든 것을 삼키고 있는 상황에서 몰상식과 불의에 더욱 무뎌진 사회가 되고 나아가 각종 위기에도 무감각해져 버린다. 늘 우리에게 적대적이고 불확실성의 근원인 북한에 대한 무감각은 이번 위기를 더욱 키울 수도 있겠다. 여기에 최근 벌어진 삭감된 예산의 전격 통과, 상법 개정안 추진 등등 우리 경제와 기업에 드리워진 불확실성과 위기는 자못 크다. 중대재해처벌법, 노조법 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 등으로 우리 기업에 부담이 더해지고 있는 상황에 한층 더 큰 위협이 가해진 것이다. 우리 경제가, 사회가 그리고 국가가 여기까지 온 것은 각종 도전과 위기에도 늘 미래를 바라보며 자유, 도약 그리고 희생의 정신으로 성공해 온 기업의 역할이 컸다. 이러한 우리 기업에 포퓰리즘과 더불어 가해진 위협과 불확실성은 너무도 가혹하다.

이제 이 두 가지 위기의 본질을 인식하고 극복하는 데 지혜를 모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기업가치를 보존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기업만이 과거에 갇힌 정치와 사회를 구해 내면서 미래를 위해 생각하고 활동하는 정상적인 생태계를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미래정신은 무너져 가는 경제를 신속히 복원하는 힘이 될 것이다. 우리 기업은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발표한 2024년 국가경쟁력평가 결과 기업효율성 부문에서 67개국 중 23위를 차지했다. 기업 여건은 47위, 정부효율성은 39위인 것을 고려하면 우리 기업의 역할이 얼마나 큰가를 알 수 있다. 이런 기업들에 드리워진 불확실성을 최대한 줄여주는 것이 위기 극복의 실마리가 될 것이다.

그 무엇보다 경제위기에 최우선으로 대처해야 한다. 대외적 경제위기 상황에 대처하면서 대내적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 경제위기는 위기를 제대로 인식하지 않은 채 제때 대처하지 못한 상태로 지나가면 큰 피해가 시차를 두고 나타나면서 오랫동안 지속한다. 그래서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시작은 포퓰리즘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위기를 막아내는 것이다. 정부가 중심을 잡아야 하고 특히 외교와 경제에 있어 정부의 안정적이고 체계적인 정책적 노력과 위기 극복 노력이 꼭 필요하다. 이러한 노력에 방해되는 세력이 있다면 국민의 힘으로 막아내야 한다.

정부는 어떤 정치·사회적 상황에도 경제와 외교 관련 정책과 일정은 변함없이 계속된다는 사실을 명확히 지속적으로 알리고 보여줘야 한다. 원전 등 각종 계약과 수주들이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음을 정부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알리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삭감된 여러 관련 예산을 즉각 복원하고 반도체특별법과 같이 기업경쟁력을 확보하는 법, 근로시간 규제를 완화하는 것과 같은 규제혁신 관련 법들 그리고 세계 최저 출산율에 대처할 인구전략기획부 신설법 등을 정부가 국회를 설득하면서 통과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경제위기 대처와 함께 시작해야 할 것은 국민통합이다. 이를 위해 포용과 화합을 위한 국가적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포용이 국가발전에 핵심적인 수단이라는 점은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의 책인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됐다. 포용과 화합이 시장에, 그리고 제도에, 나아가 우리 국민 마음에 확실히 자리 잡을 때 국가가 발전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포용과 화합이 지금 우리에게는 발전보다 위기 극복에 절실히 필요하다.

우리 국민의 핏속에는 위기 극복 유전자가 흐르고 있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질곡이 있었지만 우리 선조의 뛰어난 위기 극복 능력과 단합으로 슬기롭게 극복해왔다. 외환위기와 같이 20세기에 닥친 위기도 국론이 분열되지 않고 통합됐기에 조기 극복이 가능했다. 이번 위기 극복 역시 분열의 원인을 제공하는 정치세력은 반드시 배척하는 환경 조성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언론과 지식인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런데 지금은 언론과 지식인조차 분열을 조장하는 정치세력과 동조돼 있어서 걱정이다.

위기극복의 실마리는 ‘사실’에 근거해 판단하고 주장하는 풍토가 마련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선 해야 하는 작업은 ‘사실 알리기’라 하겠다. 한 가지 정책 이슈라도 그 근간에 깔린 함정을 제대로 국민에게 알리고 끝까지 진실을 밝혀내는 것이 중요하다. 어려운 이슈를 쉽게, 제대로, 꾸준히 국민에게 이해시키는 전문가의 노력이 절실히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당장은 이러한 노력이 진영 싸움으로 매도되는 어려움에 처하더라도 끝까지 참으면서 사실을 알리는 용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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