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진(스타트업성장연구소 대표) |
이 시대에 상상조차 어려웠던 비상계엄으로 인한 국가적 혼란은 모든 영역에 피해를 끼쳤다. 경제분야에 미친 영향은 심대해서 금융위기 이후 최고 환율을 기록하는가 하면 정부조차 내년 성장률을 1%대로 예상할 정도다. 탄핵소추안 의결로 불확실성이 줄어들었다고 하나 위기는 진행형이다.
스타트업도 예외가 아니어서 지속되는 '투자혹한기'에 치명적인 정치적 리스크가 더해져 엎친 데 덮친 모양이다. 그나마 글로벌 대비 투자감소가 적었고 문화적인 국가브랜드가 상승하는 중이어서 글로벌로 위기를 극복하자는 분위기가 조성되던 때에 찬물을 끼얹은 꼴이 됐다. 최근 열린 우리나라 최대 스타트업 행사 '컴업'은 무사히 개최됐으나 해외 연사와 참석자들의 입국을 설득하는데 애를 먹었다고 한다.
이처럼 경제는 국가를 떠나 존재할 수 없고 정치적 상황에도 큰 영향을 받는다. 우리 경제가 국가 주도의 경제발전 단계를 넘어 민간 주도의 혁신 생태계 조성에 힘써야 한다는 것은 국가정책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지 국가와 정치의 중요성이 줄어들었다는 의미가 아니다. 스타트업 역시 국가와 정치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스타트업이 잘되는 나라는 반드시 국가와 정치의 영향이 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스타트업 생태계의 원조이자 최고인 미국도 마찬가지다. 실리콘밸리의 성공요인이 워싱턴DC(정치)와 멀리 있어서라는 농담이 존재하지만 그만큼 티나지 않는 국가의 노력이 있었다. 오바마행정부부터 '스타트업 아메리카' 정책을 통해 기업과 인재를 미국으로 강력히 빨아들여 세계 최고의 혁신생태계를 만들었다. 지난 10년간 시가총액 10억달러 이상인 나스닥 상장사가 721개사에서 926개사로 성장하는 동안 비상장 스타트업인 유니콘은 22개사에서 665개사로 성장할 정도로 미국 경제의 핵심이 됐다. 무엇이든 시도해볼 수 있는 네거티브 규제시스템과 정부의 적극적 정책지원이 스타트업을 성장시키고 경제를 살린 대표적 사례다. 다만 트럼프 2기를 맞아 기후테크 기업들을 지원하는 IRA(인플레이션감축법)를 무력화하는 등 정책변화가 예상돼 정치적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환경이다.
'창업국가' 이스라엘은 국가와 정치의 영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스라엘은 스타트업 투자가 GDP의 2%를 넘을 정도로 가장 스타트업하기 좋은 나라로 명성을 떨쳤다. 요즈마펀드 같은 벤처캐피탈을 조성하고 혁신기업과 인재들을 이스라엘로 유치하는 창업국가(Startup Nation)전략 추진으로 IT기업이 GDP의 15%, 수출의 50% 이상을 기록하는 등 혁신국가의 표상이 됐다. 그러나 네타냐후정권이 2년째 지속하는 전쟁으로 이스라엘 경제는 모든 것이 망가졌다고 할 정도다. 경제성장률 전망은 3.4%에서 1%대로 떨어지고 예산적자 2배 증가, 국가신용도 하락, 스타트업 투자급감의 충격이 발생했다. 무엇보다 젊은 창업자들과 인재들이 이스라엘을 떠나는 것이 가장 큰 타격이 될 것이다. 올해 이스라엘 기업 6만곳이 폐업할 전망인데 이들 대다수가 5인 이하 기술스타트업이라고 한다.
중국, 프랑스, 캐나다, 북유럽 등에서도 스타트업에 대한 정부와 정치의 영향은 분명하다.
우리나라는 스타트업 생태계가 본격적으로 성장한 지난 15년간 비교적 일관된 정책기조를 갖고 있었다. 모태펀드와 스타트업 육성정책은 정권이 바뀌어도 유지됐고 스타트업 투자는 연평균 15.7%의 고성장을 이어왔다. 현 정부의 모태펀드와 R&D 예산삭감으로 스타트업 생태계도 피해를 입었으나 적어도 표면상 정책기조는 변화가 없었다.
그렇지만 이번 사태로 국가적 리스크가 혁신생태계에 미치는 심대한 영향이 확인됐다. 그간 신산업 규제혁신이 지지부진해 혁신의 기회가 적었던 것도 결국 정치의 영향이다. 국가와 정치가 경제와 혁신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된다. 경제는 국민들의 삶 자체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과 함께 혁신을 촉진하는 정치의 역할을 바로세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최성진 스타트업성장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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