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전, '종전조건' 양측 입장 팽팽…'조기종전' 공언 트럼프 역할 주목
가자전쟁 휴전논의 일부 진전…트럼프 "우크라전보다 해결하기 더 쉬울 것"
'반군 승리' 시리아, 중동정세 새 변수…美·이스라엘 등 발빠른 움직임
러시아 신형 중거리미사일 오레시니크 타격 장면 |
(제네바·이스탄불=연합뉴스) 안희 김동호 특파원 = 우크라이나와 중동 지역에서 이어지고 있는 이른바 '2개의 전쟁'은 2025년 새해에도 국제정세를 가늠할 중요 변수로 꼽힌다.
4년째로 접어드는 우크라이나 전쟁은 지난한 소모전 속에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본토 진격,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 등으로 전선이 격화돼왔다. 우크라이나가 미국 등으로부터 지원받은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자 러시아는 핵 사용 문턱을 낮춘 핵교리 개정과 극초음속 중거리 탄도미사일 '오레시니크' 발사 등으로 한층 대응 수위를 높였다.
중동에선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기습에 대한 이스라엘의 보복으로 시작된 가자전쟁이 3년째에 접어든다.
두 개의 전쟁 모두 현재로서는 새해에도 종전 등 평화를 기대하기에는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다만 내년 1월 20일 취임을 앞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재집권이 국면 전환의 최대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대선 과정은 물론 당선 이후에도 우크라이나전의 조기 종전을 거듭 공언해왔으며, 가자 전쟁에 대해서도 종전 필요성을 압박해왔다.
트럼프 당선인은 우크라이나-러시아 특사에 키스 켈로그를, 중동 특사에 스티븐 위트코프를 각각 지명하고 최근에는 파리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의 3자회동 형식으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직접 만나는 등 2개의 전쟁 종식을 위한 물밑 작업에 들어간 모습이다.
우크라이나전에는 러시아 지원을 위해 북한군이 파병된 만큼 종전 논의 과정에서 트럼프 당선인이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대화에 나설지도 주목된다.
러시아군에 파병된 것으로 추정되는 북한 병사들 |
◇ 우크라-러시아 입장 팽팽…트럼프, 물밑 외교 시동
지난해 우크라이나의 야심 찬 영토 탈환 대반격이 사실상 실패로 마무리된 이후로 올해 상반기까지 우크라이나의 전황은 지루한 소모전 양상이었다.
중동 전쟁으로 쏠렸던 국제사회의 이목을 다시 끌어온 건 올해 8월 6일 우크라이나군의 러시아 본토 급습이었다. 허를 찔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점령지를 넓혀가는 한편 쿠르스크 탈환을 위해 병력을 지속해서 투입했다.
다변화한 전선이 또다시 소모전 양상으로 흐르자 러시아는 북한군 파병,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본토를 타격할 서방 장거리 무기 사용이라는 카드를 각각 꺼내 들었다.
러시아는 지난 10월 북한으로부터 특수부대 병사 1만여명을 파병 받았고, 북한군은 최근 쿠르스크 내 교전에 참전하며 다수의 사상자가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우크라이나는 지난달 미국 행정부로부터 장거리 무기 사용을 승인받았고, 같은 달 19일 전술 탄도미사일 에이태큼스(ATACMS)를 처음 러시아 타격에 사용했다.
이런 가운데 우크라이나전에는 조기종전을 공언해온 트럼프 당선인의 재집권이 중대 변수로 떠올랐다.
최근 전황 격화도 트럼프 당선인의 취임과 본격적인 휴전 협상을 염두에 둔 양측의 입지 강화 노력의 하나로 풀이된다.
트럼프 당선인은 지난 12일 타임지가 공개한 인터뷰에서 "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합의에 도달하길 원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북한군의 개입을 "사건을 복잡하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우크라이나전 해결 과정에서 북한군의 파병도 하나의 변수라는 인식을 드러낸 것으로 보이며, 이에 따라 북한 김정은 위원장과의 직간접적 소통을 할지 여부가 주목되는 부분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
이미 우크라이나 영토 5분의 1 정도를 점령 중인 러시아는 현 상태로 협상에 응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19일 기자회견에서 언제나 협상 의향이 있지만 우크라이나가 준비가 안 돼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도 언제든지 만날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다만, 지난 5월 임기 만료 후 계엄령으로 직을 유지 중인 젤렌스키 대통령이 재선 과정을 거치는 등 합법성을 갖춰야 그와 협정에 서명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점령지 내 우크라이나군 철수와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 금지, 서방국의 제재 해제는 러시아가 협상 과정에서 내놓을 조건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우크라이나로선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이다. 이 때문에 영토 주권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며 서방의 무기 지원을 호소하고 있다.
하지만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달 말 영국 스카이방송과 인터뷰 이후로 나토라는 서방국의 안보 우산 안에 들어갈 수 있다면 협상에 나설 수 있다는 점을 꾸준히 언급하고 있다.
현재로선 접점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 때문에 향후 협상력을 조금이라도 더 확보하려는 양측의 전쟁은 한층 위험한 양상으로 계속되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에이태큼스를 비롯한 서방국 장거리 무기로 러시아의 군사시설 등을 타격하면 러시아는 이를 서방의 전쟁 관여 행위로 간주하고 우크라이나 곳곳을 탄도미사일로 맹폭하는 일이 잇따랐다.
협상을 앞두고 벼랑 끝 전술처럼 교전이 격화하는 현재의 상황이 타개되지 않으면 당분간 협상 여건은 조성되지 못한 채 전쟁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제사회의 중재 속에 우크라이나 일부 지역에 대한 일시 휴전 방안 등이 단계적으로 논의될 가능성도 있다.
공식적인 정치 합의 없이 전쟁을 멈추는 방식의 휴전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점령지를 그들의 영토로 공식 인정하지도 않으며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합류하는 것도 러시아가 수용하지 않는 데서 더 진전된 합의는 나오지 않은 채 전쟁만 중단하게 되는 양상이다.
3년간의 소모전 속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모두 군사 역량을 소진해 현재의 전황을 획기적으로 바꾸기 어려워진 만큼 휴전은 머지않아 현실이 될 거라는 분석도 없지 않다.
다만 휴전 시기를 얼마나 빨리 당길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고 협상 쟁점에 관한 이견이 얼마나 좁혀질지, 효과적인 국제 중재가 가능할지 등에 따라 우크라이나에 언제쯤이면 포성이 멈출지도 정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 가자지구 14개월째 포성…'트럼프 압박' 휴전 앞당길까
14개월 넘도록 이어지는 가자지구 전쟁도 최근 휴전 논의가 가속화하며 중대 변곡점을 맞고 있다.
작년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기습에 당한 이스라엘은 지금까지 가자에서 '피의 보복'을 해왔지만, 이스라엘의 '맹방' 미국의 트럼프 당선인이 평화를 강력히 촉구하면서다.
기습 당일 이스라엘에서 숨진 이는 군인과 민간인을 합쳐 약 1천200명이었지만, 전쟁 발발 후 하마스 측이 집계한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사망자 수는 현재 4만5천명을 넘긴 것으로 집계됐다.
이스라엘이 겪은 피해를 40배 이상으로 되갚아 준 것이다.
하마스는 이스마일 하니예, 야히야 신와르 등 지도자를 잇따라 잃으며 조직이 사실상 무너져 내렸다.
이스라엘은 하마스를 지원한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 그리고 이들 반미국·반이스라엘 세력을 주도하는 이란까지 겨냥했다.
이스라엘 공습에 파괴된 가자지구 난민캠프 |
이스라엘은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를 정밀 공습해 헤즈볼라 수장 하산 나스랄라 등을 살해한 것에 그치지 않고 지난 9월 18년 만에 처음으로 레바논 남부에 지상군을 투입했다.
이란이 자국 인사 피살을 이유로 이스라엘을 직접 공습하자 이스라엘은 재보복으로 이란의 군사 인프라에 깊은 타격을 안겼다.
강경 일변도로 전쟁을 수행해온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이스라엘 내각을 주춤하게 한 것은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재선 성공 소식이었다.
집권 1기 때 네타냐후 총리와 남다른 '브로맨스'를 과시했던 트럼프 대통령이 전쟁 종식을 외치자 이스라엘은 일단 레바논 지상전에 돌입한지 약 2개월 만에 레바논 무장단체 헤즈볼라와의 60일간 임시 휴전에 돌입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가자 전쟁에 대해 "우리가 대화하는 중에도 중동에서 일들이 매우 생산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난 중동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난 중동이 러시아-우크라이나보다 복잡하다고 생각하지만 해결하기는 더 쉬울 것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가자지구 휴전 협상도 속도를 내며 트럼프 당선인에 곧 '취임 선물'을 안겨주는 것 아니냐는 기대도 나온다.
이달 초 이스라엘이 42∼60일간 휴전하면서 인질과 수감자를 교환하는 새 휴전안을 중재국 이집트를 통해 하마스에 제시했다는 관측이 나왔고, 하마스에서도 논의가 재개됐다는 반응이 나왔다.
그러나 막판 쟁점이 돌출하는 등 아직은 성사 가능성을 장담 못하는 상황이다.
최근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 남은 인질과 관련해 생존자와 사망자를 포함한 전체 명단을 작성해 넘길 것을 하마스에 요구했지만 하마스는 휴전 후 최소 일주일은 지나야 명단 검증을 마칠 수 있다며 버티는 중으로 알려졌다.
이스라엘은 또 부상자를 포함한 자국 군인들이 우선 풀려나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하마스는 앞선 인질 석방 논의와 상충하는 요구라며 난색을 보였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
◇ 시리아 내전 종식에 주변국 이전투구…중동 새 변수
중동의 또 다른 화약고였던 시리아에서 13년 넘게 이어진 내전이 반군의 깜짝 승리로 끝난 상황도 중동 정세의 새로운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이슬람 무장단체 하야트타흐리르알샴(HTS)의 주도로 반군이 53년에 걸쳐 2대째 철권통치를 이어온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을 몰아낸 가운데 향후 시리아에 어떤 정권이 들어서느냐에 따라 중동의 역학관계에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와 이란이 각각 우크라이나와 가자전쟁으로 아사드 정권에 대한 지원이 약화된 틈을 타 반군이 대대적인 반격으로 아사드 정권을 몰아낸 것이다.
아사드 정권의 축출로 러시아와 이란은 큰 타격을 입었고, 미국 이스라엘 튀르키예 등 3개국은 시리아에서 입김 강화를 위해 외교전은 물론 무력행사 등을 통한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미국은 시리아에 남은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 잔당을 노린다며 공습을 강화했고, 인접국 튀르키예는 시리아에 군사지원을 할 수 있다고 언급하고 나섰다. 특히 이스라엘은 1967년 3차 중동전쟁 때 장악한 시리아 접경지 골란고원 영유권 주장을 강화하면서 자국 안보를 명분으로 점령지 넘어 시리아 내로 군을 주둔시켰다.
중동의 시아파 맹주 이란이 레바논과 시리아에서 이라크까지 구축해놓은 이른바 '초승달 연대'의 한 축이 무너지면서 중동 정세가 한층 살얼음판을 걷게 된 모습이다.
여기에 이스라엘은 지난 19일 하마스, 헤즈볼라 등과 연대하는 이란의 대리세력인 예멘의 후티 반군을 노려 돌연 대규모 폭격을 감행했다.
이스라엘이 시리아 사태 속 자국 안보 대응을 명분으로 군사행동을 강화하는 것이 가자 휴전 논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습 |
prayerahn@yna.co.kr, d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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