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작은 마을에 자리한 고요한 정원과 아담한 집.
47년 세월을 함께한 동포 노부부가 사는 곳입니다.
담소를 나누며 정원을 산책하는 두 사람에게 어떤 특별한 이야기가 숨어있을까요?
[두영희 / 파독 간호사·독일 동포 : 저희는 독일에서 만났습니다. 그 옛날에 파리 여행에서 누가 소개로 중매했죠]
'철수와 영희',
예전 교과서 속 주인공처럼 정답게 일상을 보내는 이 부부는 지난 1976년, 독일에 온 파독 근로자들입니다.
2만 명 가까운 파독 광부와 간호사가 벌어온 외화는 1억여 달러, 당시 한국 총 수출액의 2%에 달합니다.
이들의 노동력은 한국의 산업화와 경제 발전의 밑거름이 됐고 당시 석탄 산업 번영을 이끌며 독일의 경제 기적에도 원동력이 됐죠.
철수 씨와 영희 씨 역시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독일행을 선택했던 그 수많은 청년 중 하나였습니다.
[두영희 / 파독 간호사·독일 동포 : 집안 어려워서 제가 맏이인데 동생들의 이제 학업이라도 도움이 되고 생활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 여기 왔어요. 그때 당시는 500마르크씩 한국에 보냈어요. 한국에 그것을 이제 거의 우리가 결혼할 때까지 6년 동안 거의 했죠. 거의 해서 한국으로 갔죠.]
고국에 사는 가족을 뒷바라지하고 조금이나마 한국 발전에도 도움이 됐으면…
단지 그런 마음으로 택한 독일행.
고된 노동으로 몸이 힘든 것보다도 더 견디기 힘들었던 건 물설고 낯선 이역만리 타국에서 오롯이 느껴야만 했던 외로움이었습니다.
[김철수 / 파독 광부·독일 동포 : 사실 1천 미터 지하에 내려가서 들어갈 때 1시간 정도 들어가고 또 광산 일을 마치고 나오면 1시간이 걸려 나옵니다. 들어가는 시간 나오는 시간 빼면 실제 일하는 시간이 한 4시간 반 정도 되는데 그때 이 젊은 나이에는 그렇게 힘들지 않았어요. 힘들다는 것은 외로운 것이 힘들었지 노동은 힘들지 않았어요.]
[두영희 / 파독 간호사·독일 동포 : 눈물이 나왔던 건 가끔 이제 한국이 생각나니까 명절 되고 또 이제 대한민국 8.15 행사, 광복절 되고 3.1절 되고 이렇게 되면 어려운 일도 있었지만, 그런 거 저런 거 다 생각하면 대한민국을 가슴에 안고 살죠.]
영희 씨를 오래 지켜본 지인이 갑작스레 여행을 제안한 것이 특별한 인연의 시작이었습니다.
[두영희 / 파독 간호사·독일 동포 : (기차) 옆자리에 앉으라고 자기네들이 모두 다 그걸 짠 거야. 이미 이제 철수는 영희랑 결혼을 못 하면 이제 영원히 한국에 가야 하고 그런 식이야.]
[김철수 / 파독 광부·독일 동포 : 그렇죠. 저희가 둘이 결혼해 살면서 의지할 것은 두 둘뿐이었거든요. 제가 아침 근무를 하면 영희가 오후 근무해야 하고 오후 근무하면 내가 아침 근무를 해야 해요.]
'운명' 같은 짝꿍, 철수와 영희 씨는 어려움을 겪었던 시절을 잊지 않기 위해 파독 근로자를 은퇴한 이후에도 나눔을 통해 더 큰 행복을 찾고 있습니다.
철수 씨는 파독 광부협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영희 씨는 파독 간호사 출신이자 한인 사회 원로로서 동포사회에도 아낌없이 베풀고 있는데요.
한인 유학생이나 출산한 동포 이웃을 위해 도시락과 미역국까지 손수 끓여줄 만큼 베푸는 한인 원로로 자리 잡았습니다.
[두영희 / 파독 간호사 : 여기서 결혼해서 아기를 낳으면 (한국에서) 어머님이 안 오시면 미역국을 끓여다가 갖다가 주고 그래서 그 아이들이 벌써 28, 27, 서른이 된 아기들도 있고.]
[이국준 / 이웃·독일 동포 : 김철수 씨와 두영희 씨는 진짜 이 사회에서 보배 같은 사람들입니다. 동료들을 위해서 또 지역사회를 위해서 수고 많이 하신 분들이지요.]
파독으로 시작된 독일 생활이 어느덧 47년, 이제 부부에게 남은 바람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그저 지난날 외국인 노동자로서 고생했던 파독 근로자들을 기억해주길,
그래서 모국 사람들도 한국에 온 이민자에게 따스한 온정의 마음을 갖고 베풀어주길 바랄 뿐입니다.
[김철수 / 파독 광부 : 그냥 우리 독일에 사는 우리 광부들을 광부나 간호원들을 잊지는 말아달라 잊지는 말아라 그 말을 하고 싶고요. 저희가 40년 50년 전에 독일에 일하러 왔던 외국인들이었는데 바라고 싶은 이야기는 우리 한국에 계신 분들이 한국에 계신 분들이 한국 경제를 위해서 외국인들 노동자들이 와요. 그분들한테 좀 잘해주면 좋겠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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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년 세월을 함께한 동포 노부부가 사는 곳입니다.
담소를 나누며 정원을 산책하는 두 사람에게 어떤 특별한 이야기가 숨어있을까요?
[두영희 / 파독 간호사·독일 동포 : 저희는 독일에서 만났습니다. 그 옛날에 파리 여행에서 누가 소개로 중매했죠]
'철수와 영희',
예전 교과서 속 주인공처럼 정답게 일상을 보내는 이 부부는 지난 1976년, 독일에 온 파독 근로자들입니다.
1960~70년 당시 대한민국은 외화 부족과 경기 침체에 대한 해법으로 수많은 청년 근로자를 독일에 파견했는데요.
2만 명 가까운 파독 광부와 간호사가 벌어온 외화는 1억여 달러, 당시 한국 총 수출액의 2%에 달합니다.
이들의 노동력은 한국의 산업화와 경제 발전의 밑거름이 됐고 당시 석탄 산업 번영을 이끌며 독일의 경제 기적에도 원동력이 됐죠.
철수 씨와 영희 씨 역시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독일행을 선택했던 그 수많은 청년 중 하나였습니다.
[김철수 / 파독 광부·독일 동포 : 한국 경제가 1970년도에는 어려웠고, 일할 자리도 없고, 형편이 어려웠기 때문에 신문을 보고 '독일 광부를 모집한다'해서 응모를 해서 독일로 왔습니다. 독일에서 광산에서 일하면 우리 한국의 부모님 형제 친척 자매 도와줄 수도 있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우리 한국을 위해서도.]
[두영희 / 파독 간호사·독일 동포 : 집안 어려워서 제가 맏이인데 동생들의 이제 학업이라도 도움이 되고 생활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 여기 왔어요. 그때 당시는 500마르크씩 한국에 보냈어요. 한국에 그것을 이제 거의 우리가 결혼할 때까지 6년 동안 거의 했죠. 거의 해서 한국으로 갔죠.]
고국에 사는 가족을 뒷바라지하고 조금이나마 한국 발전에도 도움이 됐으면…
단지 그런 마음으로 택한 독일행.
기댈 곳 하나 없던 낯선 땅에서의 생활은 버티기의 연속이었습니다.
고된 노동으로 몸이 힘든 것보다도 더 견디기 힘들었던 건 물설고 낯선 이역만리 타국에서 오롯이 느껴야만 했던 외로움이었습니다.
[김철수 / 파독 광부·독일 동포 : 사실 1천 미터 지하에 내려가서 들어갈 때 1시간 정도 들어가고 또 광산 일을 마치고 나오면 1시간이 걸려 나옵니다. 들어가는 시간 나오는 시간 빼면 실제 일하는 시간이 한 4시간 반 정도 되는데 그때 이 젊은 나이에는 그렇게 힘들지 않았어요. 힘들다는 것은 외로운 것이 힘들었지 노동은 힘들지 않았어요.]
[두영희 / 파독 간호사·독일 동포 : 눈물이 나왔던 건 가끔 이제 한국이 생각나니까 명절 되고 또 이제 대한민국 8.15 행사, 광복절 되고 3.1절 되고 이렇게 되면 어려운 일도 있었지만, 그런 거 저런 거 다 생각하면 대한민국을 가슴에 안고 살죠.]
비슷한 외로움을 느끼던 청춘들은 정해진 운명처럼 만났는데요.
영희 씨를 오래 지켜본 지인이 갑작스레 여행을 제안한 것이 특별한 인연의 시작이었습니다.
[두영희 / 파독 간호사·독일 동포 : (기차) 옆자리에 앉으라고 자기네들이 모두 다 그걸 짠 거야. 이미 이제 철수는 영희랑 결혼을 못 하면 이제 영원히 한국에 가야 하고 그런 식이야.]
[김철수 / 파독 광부·독일 동포 : 그렇죠. 저희가 둘이 결혼해 살면서 의지할 것은 두 둘뿐이었거든요. 제가 아침 근무를 하면 영희가 오후 근무해야 하고 오후 근무하면 내가 아침 근무를 해야 해요.]
'운명' 같은 짝꿍, 철수와 영희 씨는 어려움을 겪었던 시절을 잊지 않기 위해 파독 근로자를 은퇴한 이후에도 나눔을 통해 더 큰 행복을 찾고 있습니다.
철수 씨는 파독 광부협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영희 씨는 파독 간호사 출신이자 한인 사회 원로로서 동포사회에도 아낌없이 베풀고 있는데요.
한인 유학생이나 출산한 동포 이웃을 위해 도시락과 미역국까지 손수 끓여줄 만큼 베푸는 한인 원로로 자리 잡았습니다.
[두영희 / 파독 간호사 : 여기서 결혼해서 아기를 낳으면 (한국에서) 어머님이 안 오시면 미역국을 끓여다가 갖다가 주고 그래서 그 아이들이 벌써 28, 27, 서른이 된 아기들도 있고.]
[이국준 / 이웃·독일 동포 : 김철수 씨와 두영희 씨는 진짜 이 사회에서 보배 같은 사람들입니다. 동료들을 위해서 또 지역사회를 위해서 수고 많이 하신 분들이지요.]
파독으로 시작된 독일 생활이 어느덧 47년, 이제 부부에게 남은 바람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그저 지난날 외국인 노동자로서 고생했던 파독 근로자들을 기억해주길,
그래서 모국 사람들도 한국에 온 이민자에게 따스한 온정의 마음을 갖고 베풀어주길 바랄 뿐입니다.
[김철수 / 파독 광부 : 그냥 우리 독일에 사는 우리 광부들을 광부나 간호원들을 잊지는 말아달라 잊지는 말아라 그 말을 하고 싶고요. 저희가 40년 50년 전에 독일에 일하러 왔던 외국인들이었는데 바라고 싶은 이야기는 우리 한국에 계신 분들이 한국에 계신 분들이 한국 경제를 위해서 외국인들 노동자들이 와요. 그분들한테 좀 잘해주면 좋겠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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