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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1 (화)

[글로벌포커스]"비욘세가 그래미상 뺏긴 격?" 2024 올해의 단어, 동의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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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정리하는 '올해의 단어' 살펴보니

한 해가 끝나가는 시점이면 꼭 뉴스에 등장하는 게 있다. 바로 ‘올해의 단어’(Word of the Year)다. 주요국 사전 출판사 등을 중심으로 발표되는 올해의 단어는 그 해의 사회, 문화적 트렌드를 반영하는 주요 지표로 여겨져 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최초로 대선에서 승리했던 2016년, 영국 옥스퍼드대학 영어사전(OED) 출판사가 선정한 '포스트 트루스'(post-truth)는 가짜뉴스와 정치 왜곡이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됐던 그 당시 상황을 고스란히 반영한 단어로 평가됐다. 2022년 올해의 단어였던 '고블린 모드'(Goblin Mode) 역시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직후 새로운 시대 정신을 드러낸 것으로 분석됐다. 그렇다면 2024년은 어떤 단어로 요약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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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권위' 옥스퍼드대 '뇌 썩음' 선정…"정당한 승자는 '슬롭'" 평가도
전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사전으로 평가되는 옥스퍼드대 출판사는 이달 초 2024년 올해의 단어로 ‘뇌 썩음(Brain rot)’을 선정했다. 인스타그램 릴스나 유튜브 쇼츠 등 자극적인 저품질 디지털 콘텐츠로 인해 현대인이 느끼는 정보 과잉, 피로감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 단어다. 캐스퍼 그라스왈 옥스퍼드대 출판부 사장은 "우리가 여가시간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 말해주는 단어"라고 평가했다.

옥스퍼드대 출판부가 올해의 단어를 공개하기 시작한 것은 20년 전인 2004년부터다. 첫 올해의 단어는 고급 브랜드나 상류 문화를 저급하게 즐기며 내 마음대로 사는 집단을 가리키는 '차브'(chav)였다. 이후 지금까지 출판부는 여러 개의 후보를 대상으로 약 2주간의 대중 투표, 전문가 논의, 분석 등을 진행한 후, 매년 올해의 단어를 선정하고 있다. 올해의 경우 최종 후보로 오른 단어는 총 6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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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퍼드대학 영어사전(OED) 출판사가 공개한 2024 올해의 단어. OED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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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올해는 비슷한 맥락에서 뇌 썩음에 밀려 '최종 승자'가 되지 못한 또 다른 단어에도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다.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이달 초 ‘죄송합니다. 옥스퍼드 사전 덕후 여러분. 이게 진짜 올해의 단어입니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과거 비욘세가 해리 스타일스에게 그래미상을 빼앗긴 것에 비유하며 “뇌 썩음이 아닌, ‘슬롭(Slop)’이 정당한 우승자다. 2024년에 있어 완벽한 단어”라고 보도했다.

슬롭은 원래 음식물 찌꺼기, 질 낮은 음식 등을 가리키는 단어다. 하지만 오늘날 인공지능(AI) 시대 들어 ‘부정확하며 무분별하게 온라인에 배포된 저품질 콘텐츠’라는 새로운 의미가 추가됐다. 앞서 페이스북 등을 통해 세계적으로 확산한 이른바 ‘새우 예수(Shrimp Jesus)’ 이미지가 대표적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새우로 뒤덮인 예수가 팔을 벌린 이미지, 하체가 새우 형상인 예수가 바다를 건너는 이미지를 보고 당혹스러움을 느끼거나 웃음을 터뜨린 적이 있는가? 이들 이미지의 목적은 분명했다. 종교 비하가 아닌, SNS 알고리즘을 최적화해 더 많은 '좋아요', '팔로우'를 유도함으로써 수익을 얻기 위한 것이다.

사실 이러한 새우 예수 이미지의 이면에는 AI 생성 이미지의 왜곡과 확산을 둘러싼 우려, SNS의 콘텐츠 필터링 문제 등이 존재한다. 슬롭이 단순히 저품질의 콘텐츠를 가리킨 단어가 아니라, 디지털 사회의 경제적, 알고리즘적 구조가 가져온 자극과 혼란을 대변하는 단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역시 최근 AI와 관련한 한 칼럼에서 올 한해를 표현한 단어로 슬롭을 꼽으며 "AI는 더 나은 미래를 건설할 수 있지만, 스팸과 같은 저급한 콘텐츠가 먼저 중단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고 짚었다.

이와 함께 옥스퍼드대 출판부가 최종 후보로 제시한 또 다른 단어들로도 모두 눈길을 끌었다. 얌전한, 단정한 등의 의미를 가리키는 '드뮤어'(Demure), 수요에 따라 제품 및 서비스 가격을 다르게 책정하는 '다이내믹 프라이싱'(Dynamic pricing), 로맨스와 판타지를 결합한 소설 장르인 '로맨타시'(Romantasy), 특정 주제나 세계관을 이해하기 위한 배경지식을 통칭하는 '로어'(Lore) 등이다.

특히 주요 외신들은 이들 후보가 모두 디지털, 인터넷 시대와 연계돼있다는 점을 주목했다. 그라스왈 사장은 "지난 20년간 옥스퍼드 올해의 단어를 돌이켜보면 우리의 가상생활이 어떻게 진화하고 있는지, 인터넷 문화가 우리의 정체성, 우리가 이야기 하는 것들에 얼마나 깊이 스며들고 있는지 등에 대한 사회의 관심이 커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엔시티피케이션, 드뮤어, 브랫 등 시대 반영한 신조어 눈길
디지털, 인터넷 시대를 반영한 올해의 단어는 이뿐만이 아니다. 호주에서 가장 권위 있는 사전인 맥쿼리 사전이 선정한 올해의 단어는 '엔시티피케이션'(Enshittification)이다. 캐나다 출신 작가가 만들어낸 이 단어는 영어 단어 '배설물'의 속어(shit) 앞뒤로, '~하게 만들다'란 뜻의 접두사(en-)와 '~화(化)'란 뜻의 접미사(-fication)가 결합한 신조어다.

맥쿼리 사전은 "특히 온라인 플랫폼에서 제공되는 서비스 품질의 저하와 이익 추구의 결과로 서비스나 제품이 점차 악화하는 현상"으로 이 단어를 정의했다. 양질의 무료 서비스를 앞세워 출범한 플랫폼이 어느 시점부터 수익 확대를 위한 광고 등을 늘리면서 콘텐츠보다 광고, 저급한 악성 게시물이 더 많아지고 플랫폼의 질이 급격히 악화하는 상황을 지적한 것이다. 해당 단어는 지난해에도 미국 언어학회가 선정한 올해의 단어 명단에 올랐었다.

미 온라인 사전사이트 딕셔너리 닷컴은 한 틱톡 크리에이터의 영상으로 화제가 됐던 드뮤어를 올해의 단어로 뽑았다. 이는 올해 옥스퍼드대 출판부의 최종 후보에도 오른 단어다. 드뮤어는 통상 얌전한, 단정한 등을 뜻하는 단어지만, 최근에는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조롱하는 데 널리 쓰였다. 한 틱톡 크리에이터가 '직장에서 얌전하게 지내는 방법'이라는 영상에서 "매우 드뮤어하다"며 자신의 출근룩을 뽐낸 것이 일종의 '밈'이 된 것이다. 딕셔너리 닷컴에 따르면 올해 1~8월 온라인 상에서 해당 단어 사용량은 무려 1200% 증가한 것으로 파악된다. 하반기에는 '드뮤어 룩'이라는 패션 트렌드까지 등장했다.

'선거의 해'로 불렸던 2024년의 각국 정치 상황을 반영한 올해의 단어도 확인된다. 미국의 사전 출판사 메리엄 웹스터가 선정한 단어는 '양극화(Polarization)'다. 지난 11월 치러진 미 대선으로 인해 해당 단어가 언론 등을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됐다는 점을 주목한 것이다. 메리엄 웹스터는 양극화를 "뚜렷이 대조되는 두 개의 대립으로의 분할. 특히 한 사회나 집단의 의견이나 신념, 이해관계가 연속해 걸치지 않고 양극단에만 집중된 상태"로 정의했다. 2003년부터 올해의 단어를 선정해온 메리엄 웹스터는 사회적 여파까지 살피는 옥스퍼드대 출판사 등과 달리 검색 트렌드에 더 중점을 두는 경향이 있다. 2020년에는 팬데믹, 2022년에는 가스라이팅(Gaslighting)이 각각 올해의 단어에 올랐었다.

영국 콜린스사전이 뽑은 '브랫'(Brat)은 팝스타 찰리 XCX의 앨범에서 유래된 단어다. ‘자신감 있는, 독립적인, 쾌락주의적인 태도’를 묘사하는 긍정적인 의미로 젊은 층에서 주로 사용됐다. 앞서 찰리 XCX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에 "해리스는 브랫"이라는 글을 올린 이후, 올해 미 대선 기간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는 젊은 여성들을 상징하는 단어로 쓰이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만약 올해 11월 미 대선에서 해리스 부통령이 승리했다면, 올해의 단어는 브랫이 됐을 것이라는 평가도 잇따른다.

이밖에 영국 케임브리지 사전은 '명확하게 표현하다', '무언가를 내면화해 실현하다'는 뜻의 '매니페스트'(Manifest)를 올해의 단어로 선정했다. 불확실성이 뉴노멀이 된 오늘날, '할 수 있다'는 일종의 긍정 마인드를 심어준 단어라는 평가가 나온다. 중국 국가언어자원모니터링 연구센터 등은 올해의 단어로 인공지능·신품질생산력을 꼽았다. 한국의 경우 매년 올해의 사자성어를 발표해온 교수신문이 제멋대로 권력을 부리며 함부로 날뛰다라는 뜻의 '도량발호'(跳梁跋扈)를 최종 선정했다. 비상계엄령 선포 직전에 진행된 투표 결과지만, 한국의 현 상황과 맞아떨어진 셈이 됐다.

조슬기나 기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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