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아주 자택서 사망 향년 100세
경기 침체·소련의 아프간 침공에
재임 당시 지지율 추락 연임 실패
1차 북핵 위기때 김일성과 회담
국제 분쟁 중재로 '노벨상' 수상
崔 대행 "영원히 기억" 조전 보내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11년 4월 28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열린 '디 엘더스'(국제 원로 자문그룹) 한반도 방문 기자회견에서 안경을 쓰고 있다.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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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대 미국 대통령을 지낸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29일(현지시간) 조지아주 고향 마을 플레인스 자택에서 호스피스 돌봄을 받던 중 별세했다. 향년 100세.
카터재단은 그가 이날 오후 자택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고 성명을 통해 밝혔다.
그는 2022년 10월 98번째 생일을 맞으면서 역대 미국 대통령 중 최장수 기록을 세웠다. 또 지난해 2월에는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집에서 호스피스 완화의료 서비스를 받고 있다고 공개하기도 했다.
재임 기간 그는 국내외 도전 속에서 재선에 실패했지만 퇴임 후 평화해결사로 활약해 '가장 위대한 미국 전직 대통령'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재임 중인 1979년 1월 1일 중국과 수교했고 퇴임 뒤인 1994년 '1차 북핵 위기' 때 평양을 방문, 김일성 당시 주석과 회담하고 '북핵 경수로 합의'의 실마리를 열었다.
그는 1962년 조지아주 상원의원 선거에서 당선된 경쟁자가 부정선거로 낙마, 운 좋게 정계에 입문했다. 조지아주지사를 거쳐 1976년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로 선출됐고, 공화당의 제럴드 포드 당시 대통령을 누르고 대권을 잡았다.
재임 기간 '캠프데이비드 협정'으로 수십년간 이어져 온 이집트와 이스라엘 두 나라 사이의 대결과 전쟁을 종식시켰다. 그러나 경기침체와 인권을 앞세운 이상적인 도덕외교가 옛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제대로 막지 못했다는 지적 속에서 연임에 실패했다. 이란의 미국 대사관 점거사건 해결을 위해 특수부대를 투입했다가 미국인 8명만 숨진 채 끝난 것도 지지율 추락을 가속시켰다. 당시 이란 과격파들은 테헤란의 미국대사관 직원 등 52명을 444일간 억류했다.
카터는 1980년 대선에서 '위대한 미국' 건설을 내건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 후보에게 대패, 연임에 실패했다. 그러나 퇴임 이듬해 세운 카터센터를 발판으로 평화·민주주의 증진과 인권 신장, 질병 퇴치를 위한 국제적인 활동을 벌여 퇴임 후 더 많은 인기를 누리고 존경을 받았다. 그는 열악한 주거환경에 놓인 사람들의 주거 문제를 돕는 봉사단체 '해비타트 프로젝트'(사랑의 집짓기) 활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그는 인권외교와 주한미군 철수를 추진해 박정희 당시 대통령과 갈등을 빚었다. 2018년 3월 펴낸 회고록 '지미 카터'에서 주한미군 철수, 한국 핵무장 등을 둘러싸고 박 전 대통령과 충돌한 1979년 6월 방한 당시 한미정상회담을 두고 "동맹국 지도자와의 가장 불쾌한 토론"이었다고 회고했다.
퇴임 후인 1994년 '1차 북핵 위기' 때 평양에서 김일성 주석과 담판, 북미 협상의 물꼬를 열었다. 그의 이 같은 행동에 대해 월스트리트저널 등 보수층에서는 "북한이 핵 프로그램 관련 거짓말을 늘어놓으며 원조를 갈취하고, 핵국가가 되는 데 이용한 합의틀이 만들어지는 길을 놓았다"고 비판했다. 이후 미국인 억류 사안이 불거진 2010년 8월, '디 엘더스'(국제원로 자문그룹) 소속 전직 국가수반 3명과 함께한 2011년 4월 등 총 3차례 방북했다.
이 외에도 에티오피아, 수단, 아이티, 세르비아, 보스니아 등 국제 분쟁지역에서 평화적 해결책을 찾기 위해 중재자로 나섰고 이런 공로로 2002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그는 "전쟁은 항상 악" "미국은 아름다운 모자이크"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해군 시절 "왜 최선을 다하지 않았나"라는 상관의 질책을 평생 좌우명으로 삼아왔다고 밝힌 바 있다.
june@fnnews.com 이석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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