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연구하는 나라와 경쟁되겠나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특허소위원회 회의에 반도체 특별법 등 관련 심사 자료가 놓여 있다. /사진=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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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할 것 없이 정치권은 올해 내내 반도체 기업에 대한 지원 약속을 쏟아냈지만 결국 말로만 끝났다. 탄핵정국과 맞물려 반도체특별법은 국회 상임위 문턱도 넘지 못하고 해를 넘기게 됐다. 현장에서 절박하게 요구했던 연구개발(R&D) 인력의 주 52시간 근무제외도 물 건너갔고 보조금 협력과 각종 기반시설 지원도 기약할 수 없다. 시간과의 싸움이라는 글로벌 반도체 주도권 경쟁에서 우리 기업이 뒤처지지 않을까 심히 우려된다.
더욱이 반도체 개발진의 주 52시간 근무 제외 조항을 두고 야당이 끝까지 발목을 잡은 것은 말문이 막힐 일이다. 획일적인 주 52시간제 적용으로 첨단기업의 경쟁력 약화 문제가 불거지면서 전문직 예외 적용에 대한 전형적인 여론이 형성됐던 게 사실이다. 현행 제도로는 중요한 개발 연구 중에도 근로시간 제한에 걸려 실험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 이러고 밤새 연구실의 불을 밝히는 해외 개발인력과 어떻게 경쟁이 되겠는가. 모두 야당의 책임이다.
고액 연봉 전문직 개발자의 근로시간을 주요국 중 우리처럼 강제하는 나라가 없다. 근로시간을 유연하게 적용하는 이른바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을 대부분 허용하고 있다. 고위 관리직, 컴퓨터직 등에 종사하면서 1억원대 이상 연봉을 받는 근로자들이 대상이다.
대만은 필요할 때 더 일하고, 업무상 한가한 시즌에 더 쉬는 집중근로 방식이다. 업무 생산성을 높이고 그에 상응하는 보상시스템이 미래 경쟁력이라는 사실은 말할 필요가 없다. 이를 외면하고 주 52시간 근로제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는 노동계 지지층밖에 보지 못하는 야당의 무책임한 처사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할 것이다.
재정적 지원에서도 경쟁국과 비교가 안 되는 수준이다. 일본 이시바 시게루 총리는 지난달 국회에서 반도체와 인공지능(AI) 분야에 향후 10년간 10조엔(약 91조원)을 투자하겠다고 선언했다. 일본은 나라 전체를 AI 첨단기지로 만들어 다시 반도체 왕좌에 오르겠다는 의지가 강력하다. 지난주엔 자국 반도체기업 라피더스에 내년 1000억엔(약 9300억원)의 보조금을 지원하겠다며 이를 위해 법까지 바꾸겠다는 일본 정부 발표도 있었다. 라피더스는 소니 등 일본 8개사가 합작해 만든 반도체 기업이다. 일본의 반도체 영광이 이 기업에 달렸다는 절박함으로 이런 행보를 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과 동맹국의 협공을 받고 있는 중국도 다르지 않다. 지금 우리 기업을 맹추격 중인 중국 메모리 업체들의 자양분도 정부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책 덕분이었다. 직접 보조금을 주지 않았던 대만 정부도 최근 기조를 바꿨다. 미국 엔비디아와 AMD의 R&D센터를 유치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보조금을 지급했다. 국내 기업 보조금 지급에도 난색을 표하는 우리와 너무나 차이가 난다.
수출의 20%를 책임지는 반도체 산업은 한국 경제를 받치는 큰 기둥이다. 그러나 범용 제품에선 중국의 매서운 추격에 시달리고, 최첨단 기술에선 아슬아슬하게 선두권을 유지하고 있어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인재 유출도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이럴수록 정부와 민간, 정치권이 똘똘 뭉쳐 산업을 지켜야 할 터인데 특별법 처리도 못하고 있으니 속이 탄다.
반도체법뿐만 아니라 전력망확충특별법도 촌각을 다투는 법이다. 전력 인프라가 튼튼하지 못하면 첨단 산업 생태계가 자리를 잡을 수 없다. 새해 국회에서는 이 법안들을 다시 논의해 통과시켜야 할 것이다. 더는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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