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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3 (금)

[기자수첩] 허드슨강의 기적은 틀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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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US에어웨이스의 베테랑 기장 체슬리 설리 설렌버거는 '판단착오' 혐의로 미국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에 불려갔다. 설렌버거는 조류충돌로 동력을 잃은 항공기를 허드슨강에 비상착륙시켜 승객을 전원 구출한 사건, 미국 '허드슨강의 기적'의 그 기장이다.

당시 상황은 설렌버거의 자서전과 관련 영화에서 구체적으로 묘사된다. 뉴욕 라과디아공항을 출발한 항공기는 이륙 직후 새떼와 충돌하고 새떼가 양쪽 엔진에 빨려들어가면서 완전히 동력을 잃었다. 급박한 상황에서 공항 관제탑과 교신하던 설렌버거는 "허드슨강으로 가겠다"고 했다. 당시 녹음본엔 이 같은 통보에 당황한 관제사의 목소리가 그대로 드러난다. 관제탑 컴퓨터 계산에 따르면 항공기는 인근 테터보로공항 활주로에 진입하더라도 안전하게 착륙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 때문에 설렌버거는 '국민적 영웅'임에도 NTSB의 추궁을 받게 됐다. 컴퓨터의 예측을 어기고 인간이 자의적 선택을 함으로써 엄청난 인재(人災)를 일으킬 뻔했다는 것. NTSB는 활주로로 진입했더라도 충분히 생존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설렌버거의 생각은 달랐다. 완벽히 통제된 상황에서 수치만으로 결과값을 예측하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은 일촉즉발 상황의 인간이 겪는 고뇌의 시간을 결코 반영할 수 없다는 것. 설렌버거는 이를 '인적 요인'(human factor)이라고 표현했다. 실제 이 시간을 반영해 계산값을 재조정한 결과 활주로 진입은 가망이 없었고 설렌버거의 선택이 결국 옳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29일 제주항공 참사현장을 지켜본 이들은 자연스레 '허드슨강의 기적'을 떠올렸다. 랜딩기어(착륙장치)를 수동으로 조작했더라면, 연료를 공중에서 모두 소진했더라면, 딱딱한 활주로가 아닌 근처 바다에 착륙했더라면 등 수많은 가설이 계속 쏟아졌다.

선택의 기로에서 누군가 '가장 정확한 판단'을 내렸다면 생존자가 한 명이라도 더 나올 수 있었을 것이란 절박함 때문이다. 참사 당시 조종실 상황이 담긴 블랙박스는 수거돼 분석센터로 이송된 상태다. 생때같은 목숨을 앗아간 순간의 선택 이면에 어떤 상황과 가능성이 있었는지 면밀히 분석하고 정확히 밝히는 일이 남았다.

머니투데이

박건희 정보미디어과학부 /사진=박건희




박건희 기자 wisse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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