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신뢰 회복으로 트라우마 극복해야
2025년 첫날인 1일 전남 무안군 무안스포츠파크에 마련된 제주항공 참사 합동분향소에서 어린이 조문객이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헌화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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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 갑작스럽게 가족을 잃은 유가족과 사고 장면을 지켜본 국민이 겪고 있는 트라우마에 대한 우려가 크다. 이번 참사가 불법 계엄 사태와 대통령 탄핵소추 등 극심한 정치 혼란과 사회 불안 속에 맞닥뜨린 국가적 재난이라 정서적 파장이 증폭될 수 있고,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의 상처까지 들춰내 고통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1일 정신건강의학·심리학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가 적극적으로 트라우마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하며 정부에는 “유가족을 위한 조속한 심리지원”을, 국민에게는 “충분한 애도와 일상 유지 노력”을 당부했다.
유가족 심리지원 장기 프로그램 마련해야
이해국 가톨릭대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일가족이 숨지거나 부모 자녀를 한꺼번에 잃은 경우가 많아 유가족이 느끼는 허망함과 상실감, 분노, 슬픔, 우울, 자책 등 복합적 감정이 극단적으로 폭발할 수 있다”며 “특히 항공 사고는 원인 규명과 수습책 마련에 시간이 걸리는 만큼 트라우마가 깊어지지 않도록 초기부터 심리지원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국가·권역트라우마센터, 광역·기초정신건강복지센터, 재난심리회복지원센터를 포괄하는 통합심리지원단을 긴급히 구성해 공항 대합실과 유가족 임시숙소, 분향소에서 심리응급처치와 심리상담을 제공하고 있다. 특별재난지역 선포에 따라 유가족과 피해자에 대한 건강보험료 경감과 국민연금 보험료 납부 예외를 적용하고, 병원과 약국 이용 시 본인부담금을 경감하는 이재민 의료급여도 실시한다.
이 교수는 “전문가의 심리적·정서적 돌봄과 정부 관료의 행정 지원을 받으면서 유가족들이 모여 서로 공감하고 위로하며 치유 활동을 할 수 있는 상주 공간을 마련하면 도움이 된다”고 제안했다. 또한 생존자를 비롯해 희생자를 수습한 소방과 경찰, 군인, 공무원, 현장 취재진에게도 유가족과 동일한 심리상담과 치료가 제공돼야 한다. 이 교수는 “트라우마가 오래 지속될 가능성이 크고 사람마다 회복력이 다른 만큼 정신건강 의료시스템과 연계된 장기적 치유 프로그램이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달 30일 전남 무안국제공항 활주로에 전날 발생한 제주항공 참사 여객기의 잔해와 동체 착륙의 흔적이 남아 있다.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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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 유지하면서 충분히 애도해야
여객기가 동체 착륙을 시도하다 로컬라이저(착륙 유도 안전시설)를 세운 콘크리트 둔덕에 충돌해 폭발하는 장면을 거의 실시간으로 지켜본 국민도 불안과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온종일 우울하다”거나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뉴스를 보기 두렵다”는 반응도 많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참사라는 점에서 ‘내가 저 비행기에 탔더라면’ 같은 심리적 동일시 효과가 나타난다”며 “새해를 맞아 희망을 품는 때라서 더 큰 충격과 좌절감을 느꼈을 것”이라고 짚었다.
임 교수는 그런 의미에서 “희생자를 충분히 애도하고, 슬픔을 참지 말고 표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애도는 유가족의 트라우마 극복을 도울 뿐 아니라 국민 개개인의 고통도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임 교수는 “일상생활을 흔들림 없이 유지하려는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며 “만약 평소와 달리 불안정한 심리 상태가 한 달 이상 지속된다면 전문가를 찾아가 치료받아야 한다”고 권했다.
1일 전남 무안공항을 찾은 추모객이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희생자를 위해 남긴 메모가 공항 계단에 붙어있다. 무안=이유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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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 정쟁화 막고 사회적 신뢰 회복으로 나아가야
참사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신뢰 회복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반복되는 재난은 마음 건강은 물론 사회와 인간과 미래에 대한 신뢰에 타격을 주고 ‘우리 사회가 과연 나아질 수 있는가’ 하는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며 “국가가 적극적으로 참사에 대처하면서 재난 예방 시스템을 만들고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트라우마 극복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처럼 국가적 재난이 또다시 정쟁에 이용되지 않도록 막는 것이 중요하다. 백 교수는 “재난이 일어나지 않는 나라는 없고, 다만 고통 속에 의미를 찾을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며 “우리가 최근 겪은 재난을 통해 얻은 교훈을 되새겨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하면서 빠른 회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기 위해 온라인에서 확산되고 있는 각종 음모론, 유가족에 대한 모욕과 음해, 악성 댓글, 허위사실 유포에 대해 단호한 대처가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백 교수는 “희생자·유가족 명예훼손과 악의적인 가짜 뉴스는 2차, 3차 가해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하며 “또 다른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모두가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도 “온라인 사이트가 자체적으로 악플과 가짜뉴스를 삭제하고 이용자의 잘못된 행태를 감시·경고하는 시스템을 적극 가동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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