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 인사성 밝고 성실한 직원이었는데…'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양천구 목동 깨비시장에서 70대 남성이 모는 승용차가 돌진해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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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전통시장으로 승용차가 돌진한 사고를 수사하는 경찰이 '운전자가 과거 치매 진단을 받은 적이 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했다. 다만, 사고 당일이나 최근엔 치매 관련 치료나 약 복용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1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양천경찰서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 혐의를 받는 김모(74)씨 측을 조사하다 '약 2년 전 치매 진단을 받고 약물을 복용한 사실이 있다'는 진술을 받았다. 경찰 관계자는 "사고 당일이나 최근에는 치매 관련 치료나 약 복용은 없었다고 한다"며 "치매가 이번 사고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는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전날 승용차를 몰고 양천구 양동중학교 쪽에서 등촌로 방향으로 가던 중 앞서가던 버스를 뻐른 속도로 추월하다 깨비시장으로 돌진했다. 차량은 보행자와 상점 간판 등을 들이받은 뒤 80m나 이동한 끝에 멈췄다. 동승자는 없었으며 음주와 약물 측정 검사 모두 음성이 나왔다. 이 사고로 청과점 직원인 40대 남성이 의식을 잃고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끝내 숨졌다. 이 밖에도 중상 3명 등 12명이 다쳤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앞서 가던 차량을 피해 가속하던 중 가판대 앞에서 브레이크를 밟았다"면서도 "잘 기억이 안 난다"고 진술했다.
일단 경찰은 차량 결함보다 운전자 과실에 무게를 두고 있다. 주변 폐쇄회로(CC)TV 영상 등을 분석한 결과 차량의 후미 브레이크 등이 정상 작동한 것으로 드러났고 '차량 급발진이 아니었다'는 피의자 진술도 있어서다.
이번 사고로 치매 증상과 운전의 상관 관계에 대한 관심도 높아진 상황이다. 이해국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치매 진단을 받는다고 무조건 운전을 못 하는 건 아니다"면서도 "시·공간 감각 등의 저하가 있었다면 운전 능력이 미숙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치매 치료 약물 복용으로 인지 기능이 떨어지는 등의 부작용 발생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한다. 이 교수는 "약물 자체가 운전 능력을 떨어뜨리진 않는다"면서 "치매 진단 뒤 꾸준히 약물 복용을 하지 않는 게 더 위험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현재 만 75세 이상 고령 운전자들의 운전면허 갱신 주기를 3년으로 정하고, 면허를 갱신할 경우 인지능력 검사 및 교통안전교육을 의무적으로 받게 하고 있다. 그러나 김씨는 만 74세로 대상자는 아니었다. 김씨가 면허 갱신을 위해 적성 검사를 받은 가장 최근 시점은 2022년 9월인 것으로 나타났다.
새해를 하루 앞두고 대형 사고가 벌어진 탓에 깨비시장은 이날도 침통한 분위기였다. 이곳에서 17년째 옷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는 이연주(65)씨는 "쓰나미가 스치듯 갑자기 '다다다' 소리가 나면서 가게들을 덮쳤다"고 사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청심환을 먹었는데도 온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잠이 안 오더라"고 호소했다. 근처 마트 직원 이진영(52)씨도 "연말 연초에 이런 사고가 발생해 다들 심란하다"고 털어놨다. 사고로 목숨을 잃은 직원을 알고 지낸 이들은 고인을 '인사성 밝고 성실한 사람'으로 기억했다. 고인이 일했던 청과점 단골이었다는 한 주민은 "항상 밝게 웃으면서 인사를 건네던 직원이었다"면서 "그렇게 착했는데 갑자기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김태연 기자 ty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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