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택동 논설위원 |
비상계엄 사태가 한 달 가까이 지나면서 검찰, 경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간에 벌어졌던 내란죄 수사권 혼란은 일단락되고 있다. 쟁점은 공수처와 검찰에 수사권이 있는지 여부였지만, 법원은 수사권을 폭넓게 인정하는 추세다. 공수처가 청구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검찰이 청구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모두 발부한 것이 단적인 예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 측은 수사를 미루거나 피할 수 있다는 미몽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하다. 심지어 법원이 발부한 체포영장마저 “불법” “무효”라며 생떼를 쓰고 있다. 체포영장은 항고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받아들이지 않을 방법이 없다. 발부되면 일단 집행하고, 필요하면 구속영장 심사나 본재판에서 문제가 있는지 짚어보는 것이다. 신속성, 은밀성이 요구되는 체포의 특성 때문일 것이다. 26년간 검사로 재직하며 숱하게 체포영장을 청구하고 발부받았던 윤 대통령이 이를 모를 리 없다. 방어권 차원이라고 주장하더라도 현직 대통령이라는 신분과 사안의 중대성에 맞게 지켜야 할 선이 있다.
무작정 버티는 ‘내란 수괴’ 피의자 尹
그동안 공수처의 출석 요구에 불응했던 과정도 치졸하다. 관저에 숨은 채 ‘수취인 불명’ ‘수취 거절’이라는 이유로 출석요구서를 무시하면서 “공수처에는 내란죄 수사권이 없다” “수사보다는 탄핵심판이 우선”이라는 등의 주장으로 여론전만 펼쳤다. 이런 피의자를 그냥 두고 볼 수사기관은 없다. 더욱이 최고 형량이 사형인 내란 우두머리(수괴) 혐의 당사자를 조사하지 않는다는 건 애당초 불가능한 얘기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 측이 공수처 수사를 거부하는 명분으로 드는 것은 공수처법상 수사 대상 범죄에 내란죄가 없다는 것이다. 공수처법에는 ‘공수처가 수사하는 범죄와 직접 관련성이 있는 죄’도 수사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이에 따라 공수처는 직권남용 관련 범죄로 윤 대통령의 내란죄를 수사하고 있고 법원도 적법하다고 인정했는데, 윤 대통령 측만 애써 귀를 막고 있는 셈이다.
공수처법상 수사 가능한 범죄에 내란·외환죄가 명시돼 있었다면 이런 불필요한 논란의 빌미마저 주지 않았을 것이다. 공수처법은 17개의 직위·직군을 수사 대상자로 적시하고 있는데, 그 첫 번째가 대통령이다. 그리고 현직 대통령에 대해 확실하게 수사가 가능한 범죄는 내란죄와 외환죄뿐이다. 이들 범죄가 공수처 수사 범위에 포함되는 게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는데, 현행법에는 빠져 있다.
형사사법 체계 보완은 차후의 문제
이는 2021년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출범, 2022년 ‘검수완박법’ 통과로 형사사법 체계가 급격하게 변화하는 과정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 검찰 중심으로 이뤄지던 수사 시스템을 바꿔 검찰은 직접 수사를 최소화하고, 고위공직자의 주요 비리는 공수처에서 담당하며, 나머지 범죄는 경찰에 맡기는 방식으로 재정비했다. 그 과정에서 각 기관의 수사권을 입법적으로 세심하게 정리하지 못하다 보니 공수처법에서 내란죄가 누락되는 결과가 됐다고 본다.
윤 대통령을 비롯한 내란 관련자들에 대한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는 만큼 법원의 판단을 받아 가면서 진행하면 될 일이다. 다만 45년 만의 비상계엄 선포와 내란 사태라는 초유의 상황에서 법리적 논란이 벌어진 만큼 비슷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차후에 총체적으로 점검할 필요는 있다. 불명확한 형사사법 체계로 인해 수사에 혼선이 생기거나 절차적 하자가 발생해 사법정의 실현이 지체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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