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탄한 날 없던 양국관계…탄핵 정국으로 앞날 불투명해져
北위협 대응 한일·한미일 협력 중요성 커져…강제징용 해법 지속 여부 주목
한ㆍ일 우호를 기원하는 종이학과 엽서 |
(서울=연합뉴스) 이상현 기자 = 한국과 일본이 수교한 지 60년이 흘렀다.
반세기 넘는 세월이 훌쩍 흘렀지만, 양국은 여전히 과거사 이슈로 관계가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는 '가깝지만 먼 이웃'이다.
한일은 1965년 6월22일 한일협정에 서명하면서 미래로 향하는 길을 열었다.
안보와 경제 협력을 토대로 양국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이웃이 됐고, 이런 협력의 틀은 문화와 인적 교류 등 전방위로 확대됐다.
하지만 치유되지 않은 과거사는 양국관계에 해소되지 않는 갈등을 낳았고, 그 갈등은 현재진행형이다.
윤석열 정부는 강력한 관계개선 의지를 바탕으로 과거사 갈등을 봉합하며 한일협력, 한미일 공조의 틀을 다졌고 올해 수교 60주년을 계기로 그 강도를 더해간다는 방침이었지만 탄핵 정국으로 한일관계의 앞날도 불투명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 '과거사 문제'와 '미래지향 협력' 교차한 한일관계
한일은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10월 예비교섭을 시작으로 14년간의 '마라톤협상' 끝에 1965년 한일협정을 체결하며 국교정상화를 이뤘다.
이후 한일관계는 한 시기도 평탄한 날이 없었다.
한일협정에는 일본의 극한 반대로 과거 침략과 식민 지배에 대한 어떤 사과나 반성의 문구도 담지 못했고, 특히 한일합방이 '원천무효'임을 명시하지 못했다.
한일협정반대를 외치는 고등학생들 |
이런 한계는 지도급 인사들의 망언이나 태평양 전쟁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 교과서·방위백서·외교청서 등을 통한 역사적 사실 왜곡 기술, 일본의 '식민통치 합법' 주장 등으로 불거져 나왔다.
그래서 역대 우리 정부는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적극적 행보를 보이다가도, 과거사를 둘러싼 갈등 사안이 불거지면 다시 급격히 관계가 경색되는 '롤러코스터' 상황을 마주해야 했다.
김영삼 정부 때는 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정한 '고노 담화'(1993년)와 과거사를 반성한 '무라야마 담화'(1995년)라는 성과를 거뒀지만 "식민지 시대 일본이 한국에 좋은 일도 했다"(에토 다카미 총무처장관) 등 망언이 잇따르면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고 강력히 반발하기도 했다.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끌어낸 김대중 정부 시기는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과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갈등 요소가 됐고, 노무현 정부 때도 초기 개선 의지를 보였으나 시마네현의 '다케시마의 날' 조례안 제정 등 파동을 겪었다.
이명박 정부 때도 위안부 문제로 충돌하다가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으로 한일관계는 완전히 얼어붙었고, 박근혜 정부 때는 아베 정권의 '역사수정주의' 흐름에 갈등을 빚다가 2015년 '위안부 합의'를 이뤘지만, 이후 시민사회의 반발과 박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실질 성과를 내기는 어려웠다.
지난 1999년 한,일 정상회담 |
◇ 강제징용 '제3자 해법'으로 관계 개선 드라이브…탄핵정국으로 앞날 불투명
윤석열 정부는 2022년 취임과 함께 한일관계 개선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특히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해 2023년 3월 정부 산하 재단이 민간 기여를 통해 마련한 재원으로 배상금을 지급하는 '제3자 변제' 해법을 내놓으면서 관계 정상화의 첫 단추를 끼웠다.
윤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전 일본 총리는 총 12번에 걸쳐 정상회담을 가지며 관계 개선의 동력을 마련했다.
'신냉전' 시기 바이든 미국 행정부를 중심으로 '캠프데이비드 정상회의'로 상징되는 한미일 협력이 적극 추진된 것도 한일관계 개선의 계기가 됐다.
그 사이 양국 국민의 상호 교류도 증가했다.
지난해 1∼11월 일본을 방문한 한국인은 795만명으로 국적별 집계에서 1위를 기록했고, 1∼10월 한국 방문객 중 일본은 263만명으로 중국(400만명)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동아시아연구원(EAI)이 지난해 9월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일본에 대한 호감도는 41.7%로 2013년 조사를 시작한 이래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물론 이 기간에도 갈등 사안이 없지는 않았다.
일본의 독도 망언이나 역사교과서 왜곡 기술은 여전했고, 총무성의 행정지도로 촉발된 '라인야후' 문제도 불거졌다.
일제강점기 강제노역 현장인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둘러싼 갈등은 최대 위기로 꼽혔다.
등재를 위해 일본이 약속한 노동자 전시 시설에 강제성 표현을 찾기 어려웠고, 지난해 11월 열린 추도식에도 진정성을 느낄 만한 조치가 부재해 한국 정부는 막판에 불참을 결정했다. 결국 한국 외교가 '뒤통수'를 맞았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그런 상황에도 양국은 갈등을 키우기보다는 '관리'에 주력하면서 협력을 지속하는 방향을 택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및 이어진 연쇄 탄핵 사태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한동안 정상외교 동력을 확보하기 어렵게 됐다.
사도광산 내부로 들어가는 한국인 희생자 유족들 |
◇ 기회와 위기의 한일관계…강제징용 해법 유효할지 주목
한일관계의 미래에는 기회 요인과 위기 요인이 병존한다.
미중경쟁 격화, 북러 군사협력과 같은 국제 정세하에서 한일·한미일 안보협력의 중요성은 부각될 수밖에 없다.
수교 60주년을 앞두고 양국이 그동안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준비해온 각종 기념사업도 한동안 소통의 동력을 이어가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역사 수정주의'로 대표되는 일본 사회 보수화 경향으로 과거사 문제 해법을 찾는데 있어 일본 측의 진정한 반성을 끌어내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현실은 근본적 한계로 꼽힌다.
일본으로서는 한국의 불안정한 정치 상황이 앞으로 대(對)일 정책 기조의 급격한 전환으로 이어지지 않겠냐는 우려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경색된 한일관계의 물꼬를 텄던 윤석열 정부의 강제징용 해법이 앞으로 계속 유효할지가 관건이라는 평가가 많다. 그간 야당에선 윤 정부의 강제징용 '제3자 변제' 해법 등에 대해 대일 '굴종 외교'라는 취지로 비판해 왔다.
국내 전문가들은 양국이 과거사 문제에 있어 지속 가능한 해법을 찾으면서 협력의 차원도 한 층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는 "강제동원이나 위안부 문제에 대해 국민도 받아들일 수 있는 지속 가능한 해법을 찾아야 한다. 이는 일본의 노력도 필요한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안보협력도 소극적 의미 협력보다 한반도 등 동북아 평화를 위한 협력의 차원으로 풀어나가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페루서 열린 한일 외교장관회담 |
hapyr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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