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글로벌 금융위기·코로나 급은 아냐
사령탑, 안정적으로 유지해 정국 혼란 막아야
최상목 권한대행 헌법재판관 임명, 불가피해”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달 23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서울시립대학교에서 열린 한국국제경제학회 동계학술대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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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2일 "향후 통화정책은 입수되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대내외 리스크 요인들의 전개 양상과 그에 따른 경제 흐름 변화를 면밀히 점검하면서 금리인하 속도를 유연하게 결정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비상계엄부터 미국 신정부까지 전례없이 정치·경제적 불확실성이 커진 만큼 통화정책을 상황 변화에 따라 유연하게 운영하겠다는 의지다.
■대내외 정치·경제적 불확실성 확대...통화정책 기민하게 운영
이 총재는 이날 2025년 신년사에서 "물가, 성장, 환율, 가계부채 등 정책변수 간 상충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 총재는 “지난해 한국은행은 높은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을 마무리하고 오랜 기간 유지했던 통화정책의 긴축기조를 전환해 기준금리를 10월부터 인하하기 시작했다”며 “2022년 7월 6.3%에 달했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024년 9월부터 2%아래로 안정되면서 물가 안정세가 뚜렷해졌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안도할 새도 없이 경기 하방 리스크와 환율 변동성 확대라는 새로운 어려움에 직면했다. 주력 품목의 경쟁 심화로 수출의 성장 기여도가 약화됐고 미 대선 이후 신정부 정책 방향에 대한 우려로 달러화 강세가 지속되면서 환율 변동성이 확대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12월에는 비상계엄 사태로 정치적 불안이 더해지며 환율이 다시 큰 폭으로 상승했고 경제 심리도 위축됐다”며 “정부와 한국은행이 적극적인 시장안정 조치를 통해 대응하고 있지만 정치 갈등의 심화와 국정공백에 대한 우려는 금융·외환시장의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내외여건도 어느 때보다 어려울 것이라는 평가다. 이 총재는 “대외적으로는 미국 신정부의 보호무역 정책이 본격화될 경우 글로벌 교역이 위축되면서 수출이 어려워질 수 있다”며 “미국 경제의 호황 지속으로 연준의 금리인하가 예상보다 더디게 진행되면서 환율 변동성이 상당 기간 지속될 가능성도 있다. 중국, 유럽 등 글로벌 경제 상황도 좋지 않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국내 상황은 더 엄중하다. 거시건전성 정책 강화로 가계부채 흐름은 안정됐지만, 금리인하가 계속될 경우 불안 요소로 발전될 수 있으므로 비상한 경각심을 갖고 점검해 나가야 한다”며 “정치 상황의 전개에 따라 불확실성이 지속될 경우 어려워진 대외여건과 중첩돼 경제에 주는 부정적 영향이 증대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 총재는 올해 경제 상황을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 위기와 같은 상황으로 보는 것은 과장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은행은 지난 11월 올해 성장률을 1.9%로 전망하였지만 하방 위험이 커진 것이 사실이지만 현재의 잠재성장률 2%나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 이상인 26개국의 성장률 전망치 평균(1.8%)과 유사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2%를 밑도는 성장률의 절대 수준만을 과거와 비교하면서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을 고통을 줄여주는 진통제로만 사용한다면 부작용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 경제의 뇌관으로 꼽히는 자영업자에 대해서는 “세부적으로 보면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어려움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지원이 무엇보다 시급한 상황”이라면서도 “단기적인 부양과 함께 고통스럽더라도 구조조정 문제에 집중해서 중장기적으로 잠재성장률을 높이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일례로 추경을 통해 자영업자나 소상공인을 도와주더라도 이들의 현상 유지를 위한 지원에만 초점을 두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정 사령탑, 안정적으로 유지돼야...헌법재판관 임명, 불가피해
이 총재는 국내 정국 불안이 장기화되지 않아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현 상황에서 통화정책만으로 우리 경제를 안정시키기 어렵다”며 “최근 들어 국제사회의 관심이 금융·외환시장 불안을 넘어 국정 컨트롤타워가 안정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로까지 확대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치적 갈등 속에 국정공백이 지속될 경우 대외 신인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경제 전반에 직간접적으로 충격이 더해질 수 있어 국정 사령탑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이 총재는 “정치적 불확실성에 따른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통화정책을 포함한 경제 시스템 전반이 정치적 프로세스에 영향 받지 않고 독립적·정상적으로 작동한다는 신뢰를 구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최상목 권한대행이 헌법재판관 2명을 임명한 것에 대해서는 “어렵지만 불가피한 결정을 했다”고 평가했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평가가 다르겠지만, 최상목 권한대행께서 대외 신인도 하락과 국정공백 상황을 막기 위해 정치보다는 경제를 고려한 판단이라는 것이다.
이 총재는 “이는 앞으로 우리 경제 시스템이 정치 프로세스와 독립적으로 정상 작동할 것임을 대내외에 알리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며 “이제는 여야가 국정 사령탑이 안정되도록 협력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구조개혁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단기적으로는 신축적이고 유연하게 통화정책을 운용하겠지만, 통화정책 목표 간 상충관계가 갈수록 심화되고 통화정책의 손발을 묶는 상황까지 이르게 되었는지 성찰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 총재는 지난해 수출이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음에도 올해 수출 둔화 우려가 커지는 것에는 반도체 등 특정 주력상품에 고착화된 국내 수출 구조가 있다고 짚었다. 미국의 매출액 상위 15개 기업이 10년 전과 비교할 때 7개 기업이 바뀐 반면 우리는 신산업을 통해 성장했다고 볼 수 있는 기업이 1개에 불과할 만큼 신산업 개발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에 국내 주식시장의 매력이 떨어진 것이 원·달러 환율 상승에도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이 총재는 “해외로 자금유출이 계속되면 국내시장에서는 자금조달의 어려움으로 새로운 기업이 성장하지 못하는 악순환이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며 “신산업 육성과 규제 완화를 통해 새로운 기업이 생겨나고 성장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주지 않으면 밸류업은 공허한 구호에 그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eastcold@fnnews.com 김동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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