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석 대화 그대로 담긴 중요한 단서
조류 충돌 후 엔진 작동 여부 분석해
착륙 방향 바꿔 동체착륙한 원인 밝혀야
2일 오후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 제주항공 참사 현장에서 합동조사단 관계자들이 로컬라이저 둔덕에 파묻힌 엔진을 꺼내는 작업 도중 기체 인근에서 용접하다가 불이 나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무안=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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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원인 조사가 중대 전환점을 맞았다.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사조위)가 사고기 블랙박스에서 음성파일을 복원해낸 것이다. 사고기가 최초 착륙을 시도한 시점부터 방위각 시설(로컬라이저)에 충돌하기까지 마지막 9분간 상황을 밝혀낼 중요한 자료다.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는 2일 브리핑에서 사조위가 블랙박스 음성기록장치(CVR)에서 추출한 자료를 음성파일 형태로 전환하는 작업을 이날 오전 완료했다고 밝혔다. 당초 사조위는 작업을 전날 시작해 3일까지 마칠 것으로 예고했다.
CVR은 항공 사고 발생 시 원인 규명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기장과 공항 관제사의 대화는 물론 조종석에서 기장과 부기장이 나눈 대화, 경고음, 스위치 조작 소리, 엔진소음 등 주변 환경 소리까지 기록하기 때문이다. 비행기록장치(FDR)와 함께 사고 당시 기체 상황, 조종사들의 대처를 밝혀낼 핵심 단서다. CVR은 기록이 끊긴 순간부터 이전 2시간까지 녹음한다. 사조위가 현재 확보한 음성파일 분량도 2시간이다.
사고기 마지막 행적은 관제탑 교신 기록 등을 통해 상당 부분 파악됐다. 사고기는 지난달 29일 오전 8시 54분, 무안국제공항으로부터 활주로 1번 방향(남쪽→북쪽)으로 착륙 허가를 받고 착륙을 시도했다. 8시 57분에 관제탑으로부터 조류 활동 주의를 조언받고 2분 뒤 조종사가 조류 충돌로 인한 비상(메이데이)을 선언, 복행을 통보했다. 사고기는 활주로 좌측(서쪽)으로 착륙 경로를 벗어났고 오른쪽으로 선회해 다시 활주로에 접근했다. 9시 1분에는 활주로 1번 방향의 역방향인 활주로 19번 방향(북쪽→남쪽)으로 착륙 허가를 받았고 1분 뒤 활주로에 동체로 착지했다. 사고기는 1,600m 정도를 동체로 미끄러지다 로컬라이저가 설치된 단단한 둔덕에 충돌해 폭발했다.
국토교통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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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사고기가 동체착륙한 직접적 원인이 여전히 미궁이라는 점이다. 최초 착륙 허가부터 복행, 동체착륙 순간까지 단계마다 풀어야 할 의문이 있다. 전문가 의견을 종합하면 사조위가 CVR 음성파일로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사안은 조류 충돌 직후 조종석에서 엔진 상태에 대해 오간 대화다. 사고기는 엔진이 좌우에 1기씩 있다. 조류 충돌로 엔진 몇 기가 작동을 멈췄고 그것이 유압설비(계통)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파악해야 착륙 장치(랜딩기어) 작동 여부 또는 작동 불능 원인을 알 수 있다. 현재는 2기 모두 작동을 멈췄다는 데 무게가 실린다.
김광일 신라대 항공운항과 교수는 “기장과 부기장이 (조류 충돌 후) 대화했다면 엔진 점검이 가장 우선한 내용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며 “모니터에 표시되는 엔진 출력을 확인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그 수치를 근거로 어디에 착륙할지 논의했을 것”이라며 “정상적 경로(활주로 1번 방향)로 돌아가지 못하고 역방향(활주로 19번 방향)으로 진입한 이유를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주항공 사고기에서 수거한 블랙박스 중 음성기록장치(CVR). 전원부(사각형 상자)와 자료를 저장하는 장치(원통)가 온전하게 결합돼 있다. 중앙사고수습본부 제공 |
일각에서 제기하는 조종사 과실 여부도 음성파일 분석에 달렸다. 랜딩기어가 첫 착륙 시도 시 작동했는지 여부, 동체착륙 전 랜딩기어 조작 여부 등을 두고 다양한 주장이 충돌하는 상황이다. 동체착륙 시 날개의 고양력장치(플랩)가 작동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있다. 조종사 과실이라는 주장과 만약 조종사가 플랩을 작동하지 않았다면 합당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맞선다.
중수본은 사조위 조사가 완료되기 전에는 음성파일을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자칫 사조위 조사가 여론에 영향을 받을 우려가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여론이 사조위 조사 결과 발표만을 기다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비행기록장치(FDR)에서 자료를 추출하지 못해 FDR을 미국에 보내 조사하는 데만 수개월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당국이 공개 가능한 부분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김 교수는 “국토교통부는 관제사와 조종사가 합의해 활주로 19번 방향으로 착륙했다고 하는데 비판 여론을 의식한 듯하다"며 "관제사는 지시하고 승인하는 기관”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관제사가 승인해줬으면 당당하게 승인해줬다고 밝히면 된다"고 강조했다.
김민호 기자 km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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