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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7 (화)

김소영 작가의 요즘 ‘집회 가방’[왓츠인마이백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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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같은 비상시를 대비해 생존배낭을 꾸리는 것이 한때 유행처럼 번졌다. <어린이라는 세계>로 20만 독자에게 어린이를 ‘발견’할 수 있는 시각을 열어주었던 김소영 작가는 요즘 언제든 둘러메고 뛰어나갈 수 있게 ‘집회 가방’을 미리 싸놓는다. ‘반짝이는 것’ 하나를 더 보태기 위함이자, 그곳에서 보고 들은 것을 어린이에게 가감 없이 전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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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영 작가는 늘 ‘집회 가방’을 꾸려놓는다. 아이들이 살기 좋은 세상을 위한 작은 빛 하나를 보태기 위해서다. 김창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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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작가의 가방 속에는…

지난 12월26일 경향신문을 방문한 김소영 작가의 가방에서는 직접 만들어 사용한 흔적이 역력한 집회용 물품이 우르르 쏟아져나왔다. 평범한 독서교실 선생님을 누가 ‘집회 프로’로 만들었나 싶다. 반려견 ‘설탕이’의 일상과 어린이들과 흐뭇한 에피소드, 북콘서트 같은 작가의 공식 일정으로 채워지던 그의 사회관계망서비스는 ‘그날’ 이후 장르가 바뀌었다. 시국 관련 각종 집회 일정과 현장 소식, 성토를 부르는 뉴스가 이어진다. 그중 일명 뽁뽁이 봉투에 신문지를 채워 만든 ‘집회 방석’은 77만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며 갖은 응용 방석까지 양산했다. 눈발이 날려 바닥이 젖기 시작한 집회 현장을 보고 신문지를 비닐로 감으려다가 문득 에어캡 봉투를 떠올린 것이다.

“책을 사기도 하고 보내기도 하는 사람이라 집에 서류 사이즈 에어캡 봉투를 늘 갖고 있어요. 마침 사이즈가 딱 맞아 그 안에 신문지를 넣었더니 가볍고 탄탄해서 따로 방석을 사지 않아도 되겠더라고요. 이걸 제 소셜미디어에 올렸더니 다른 분들은 응용력을 발휘해 푹신한 수건이나 핫팩을 넣어 쓰세요.”

가방에서 일회용 핫팩을 담은 지퍼백도 나왔다. 그는 눈을 반짝이며 “핫팩이 재활용되는 것을 아느냐”고 되물었다. 그가 독서교실을 운영 중인 파주 지역 어린이들에게 배운 노하우라고 했다.

“쓰다 남은 핫팩은 지퍼백에 넣어 공기 접촉을 차단하면 그대로 기능이 멈춰요. 다시 꺼내면 뜨거워지죠. 이렇게 하면 핫팩의 발열 지속시간인 12~16시간을 유용하게 쓸 수 있어요. 서울보다 기온이 4~5도 정도 낮은 파주의 어린이들은 등굣길에 쓴 핫팩을 지퍼백에 넣어놓았다가 하굣길이나 놀이터에서 놀 때 다시 꺼내서 써요. 공기 접촉만 막아주면 일주일도 쓸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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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영 작가의 집회 3종 세트. 모두 재활용을 이용한 수작업으로 만들었다. 김창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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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천 원짜리 크리스마스 장식 전구를 플라스틱 텀블러에 담아 나만의 응원봉도 만들었다. 속초 집회에 참여하고 있는 그의 독자에게 힌트를 얻었다.

“아무래도 응원봉이 없으면 허전하잖아요. 불빛이 많으면 예쁘기도 하고요. 제 것보다 더 아이디어가 좋은 것은 제 친구의 것인데, ‘빵빠레’ 아이스크림 통에 줄 전구를 넣어 들어 보니 마치 횃불처럼 보여요. 이렇게 손수 만든 봉을 백팩 옆 주머니에 넣어놓으면 집에 올 때까지 반짝일 정도로 오래갑니다.”

어린이책 전문 편집자였던 그는 파주에서 12년째 독서교실을 운영 중이다. 13년간 출판사에 재직하며 소장한 책들을 활용하려다 보니 자연스럽게 독서교실을 열게 됐다. 그가 <어린이라는 세계>를 쓰게 된 계기는 코로나19 팬데믹이었다.

“교육부 지침상 독서교실의 문을 닫아야 했어요. 남는 시간에 어린이 관련 글을 블로그에 쓰다 보니 경향신문에서 연재 의뢰가 들어왔죠. 그러다 모은 글이 출간으로 이어졌어요.”

25쇄를 찍은 베스트셀러 <어린이라는 세계>는 그렇게 탄생했다. 출간은 강연으로 이어졌고 김 작가는 전국을 돌며 어린이집 선생님, 태권도 사범님, 학원 차량 기사님까지 다양한 독자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어린이의 세계에 관심이 큰 독자에게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바로 “저는 어떤 어른이 돼야 할까요?”였다. 김 작가는 그에 답하듯 어린이가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어른의 모습을 담은 <어떤 어른>을 최근 펴냈다.

“사실 저조차도 뭘 읽거나 쓰기 괴로운 시기이긴 해요. 제가 많이 배우고 성장한 부분이 있다면, 독자들 덕분이잖아요. 그렇다면 저 혼자 가질 것이 아니라 다시 나누는 게 맞지 않나라는 생각에서 써 내려간 글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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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어른’이 되어야 할까?

김 작가는 어린이와 함께하는 독서교실을 통해 ‘미래는 생각보다 꽤 가깝고 구체적인 것’이라 새삼 느낀다고 했다. 그러므로 어린이는 가장 최신의 것을 배워야 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저와 독서교실에서 함께한 어린이 중에 직장인이 된 친구도 있어요. 미래라는 시간적 감각은 매우 가깝고 구체적이란 생각이 들어요. 뭐든 최신의 것을 빨리 알아 와서 가르치고 안내하는 일이 시급한 일이라 느껴져요. 자연스럽게 사회 문제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어요.”

어린이들은 혼란한 어른들의 사정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어른들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어린이들은 더욱 혼란스러울 수 있다.

“제 경험으로 설명하는 것이 가장 이해시키기 쉽더라고요. 직접 찍은 현장 사진을 보여주며 설명하면 아이들은 질문이 쏟아져요. ‘사람들이 모여 집회를 하는 이유’부터 ‘참석 인원이 몇명인지 어떻게 세느냐’는 참신한 질문도 나오죠.”

그에게 가장 인상 깊게 남은 풍경은 지난 12월22일 참석한 이른바 ‘남태령 집회’였다. 한겨울 트랙터를 몰고 상경한 전국농민회총연맹 전봉준투쟁단이 선봉에 섰으나, 이내 시민들이 모여들어 구름 떼 같은 무리를 이뤘다. 한 가지 이슈로 비슷한 생각을 하는 이들이 아닌 다양한 의견을 가진 이들이 모여 한목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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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영 작가의 집회 가방 속 든든한 아이템들. 김창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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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령은 분명 고개인데 마치 광장에 온 것 같았어요. 모인 사람들이 제각각 깃발을 들고 있더라고요. 소수정당부터 성소수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각종 교육 관련 단체 그리고 한화이글스 깃발까지… 이게 변곡점이 되겠다 싶었어요. 내가 사랑하는 어린이들은 다양한 깃발들 세상에서 살 수 있구나. 정말 감동적이었어요.”

간혹 어른들의 단편적인 언어로 인해 이번 사태가 두렵고 무서운 상황으로만 받아들이는 어린이들도 있다. 김 작가는 어린이들에게 ‘판단 내릴 만큼 정보가 많지 않으니 일단 판단하지 않아도 된다. 대신 어른들을 지켜봐 달라’고 당부한다.

“어린이 앞에서 ‘우리나라 큰일 났어’ ‘망했어’ 이런 말은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냉소가 말하는 사람에겐 잠깐은 시원할지 모르지만, 제일 위험한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린이들은 작아서 잘 보이지 않을 뿐 편의점이든 엘리베이터든 어디에서든 다 듣고 있어요. 함부로 내뱉기보다 어떻게 해결하겠다고 말할 수 있는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이유진 기자 882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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