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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7 (화)

학대 피해 털어놨지만…'거짓말쟁이' 몰려 마음마저 멍든 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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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 도장 사범 고소…관장도 학대 혐의 드러나 재판 진행 중

교우관계 악화·불안감에 정신과 치료까지…"사회가 보듬어주길"

연합뉴스

A군의 허벅지에 든 멍 자국
[피해 아동 측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원주=연합뉴스) 박영서 기자 = "가까운 거리에 맞벌이 부모의 보육 부재로 그 도장에 발을 들인 게 후회로 남습니다. 어른들이야 견딜 수 있지만, 아이는 '거짓말쟁이'라고 손가락질받으며 학교생활과 교우관계가 무너진 상태입니다…"

태권도 도장에서 사범에게 맞아 아동학대로 고소한 피해 아동의 가족이 '허위 고소인'으로 몰려 주변으로부터 눈총을 받으며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어느덧 1심 재판의 선고만을 앞두고 있지만, 유무죄를 떠나 아이의 마음에 든 멍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5일 피해 아동 측에 따르면 가족의 일상에 큰 변곡점을 맞은 건 2023년 11월 말이다.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던 A(11)군의 부모는 아들의 허벅지와 엉덩이에서 주먹만 한 피멍을 발견했다.

이전에도 배나 허벅지, 팔 부위에 멍이 든 경우가 빈번했지만 '넘어졌다'거나 '학교 계단에 부딪혔다'는 아이의 말을 믿고 넘겼던 A군의 부모는 아들을 설득했고, A군은 울음을 터뜨리며 "태권도 도장에서 사범에게 맞았다"고 털어놨다.

'폭행 피해 사실을 왜 진작에 엄마·아빠에게 말하지 않았을까…'

처음에는 아이를 이해하지 못했던 부모에게 아이는 "폭행 중 '죽여버리겠다'는 사범의 말에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감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같은 도장을 다니는 아이들의 부모로부터 추가 피해를 확인한 A군의 부모는 그길로 도장을 찾아갔으나 사범은 폭행 사실을 부인했고, 관장은 사범의 폭행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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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 상처 되는 말'
[연합뉴스 자료사진]


끝내 사과의 한마디를 듣지 못한 부모는 사범을 아동학대 혐의로 고소했다.

조사 결과 피해 아동들은 수업을 잘 따라가지 못한다든지, 친구와 장난을 쳐 수업에 방해되는 행동을 했을 때 폭언과 함께 주먹과 발, 발차기 미트 등으로 맞았다고 진술했다.

A군의 아버지 B씨는 "일을 크게 만들지 말고, 사과받고 넘어가라는 주변 의견도 있었지만, 무도인으로서 아이를 폭행하고도 모르쇠로 일관하는 사람이 또다시 사범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을 가르친다고 생각하니 참을 수가 없었다"고 고소를 결심한 이유를 설명했다.

경찰 조사 결과 사범에 더해 관장에게도 아동학대 방조 혐의가 적용되어 검찰에 넘겨졌다. 검찰 요구에 따라 경찰의 보완 수사를 거쳐 사범과 관장은 지난해 7월 벌금 200만원에 약식기소 됐다.

그러나 법원은 두 사람을 정식 재판으로 넘겼다.

약식기소 사건의 경우 대게 약식재판부가 그대로 벌금형을 내리며 종결되거나, 약식명령에 불복한 피고인들이 정식 재판을 청구해 유무죄나 형량을 다투는 경우가 잦다.

약식재판부 역시 벌금형을 그대로 부과하기에는 사안이 무겁거나 죄질이 불량한 경우라든지, 유무죄를 다툴 여지가 있다고 보이는 사건은 정식 재판으로 직접 넘기긴 하지만 그 비율은 매우 낮다.

결국 법정 공방까지 간 이 사건 재판에서 증인으로 나선 A군은 관장의 학대 사실까지 털어놓았고, 검찰은 이를 토대로 관장을 추가 기소했다.

검찰은 지난해 12월 결심공판에서 사범과 관장에게 각각 벌금 200만원과 300만원을 내려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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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지법 원주지원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제 사건은 곧 1심 판결 선고를 앞두고 있지만, 사건이 진행되는 사이 A군은 정서적 안정을 잃었다.

갑자기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며 잠에서 깨어나 방문을 열고 뛰쳐나가는가 하면 '등하교 중 사범과 마주치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감을 호소한다.

집에서 도보로 불과 3분 거리에 있는 도장을 피해 돌고 돌아 문구점과 놀이터에 가고, 노란색 학원 차량이 보이면 숨어버린다.

집과 가까워 초등학교 입학과 함께 선택한 도장이 오히려 공포의 대상이 되어 일상생활의 반경에 자리하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도장에서 맞은 아이', '영악한 아이', '거짓말하는 아이'라는 주변의 수군거림과 손가락질에 자연스레 친구들과도 멀어지고, 지속되는 두통과 호흡 불안정으로 인한 잦은 조퇴와 결석으로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결국 A군은 지난해 10월 정신과를 찾아 심리치료를 받기까지 했다.

아버지 B씨는 "전학도, 이사도 간단한 문제가 아니기에 아이를 계속 사건이 떠오르는 이곳에 머무르도록 하는 것이 부모로서 죄스럽다"며 자신을 책망했다.

이어 "해가 바뀌고 또다시 시린 겨울이 찾아오는 긴 시간에 지치기도 하지만, 몸과 마음에 큰 상처를 받은 아이가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하게 자랄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아이의 권리를 보듬어주었으면 한다"고 바랐다.

conany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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