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1.07 (화)

"국정원이 선관위 기기 5%만 조사?" 부정선거에 매몰된 사람들의 인식 오류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이혁기 기자]
더스쿠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보수 유튜버 사이에서나 떠돌던 '부정선거 음모론'이 대한민국을 잠식했다. 내란 혐의를 받는 대통령도, 대통령을 돕는 변호사도 적극적으로 부정선거 음모론에 불씨를 붙이고 있다. 광화문에서도, 한남동 대통령 관저에서도 '부정선거를 부정하는 자 공범이다'는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 심지어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12‧3 비상계엄 전에 "부정선거 증거를 찾으면 국민도 찬성할 것"이라는 취지로 발언한 사실이 드러났다.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계엄 선포 사흘 전 여인형 방첩사령관에게 이같은 취지로 말했다. 계엄사가 부정선거 증거를 밝혀내면 국민도 찬성할 것으로 확신했다는 거다.

# 이들은 왜 부정선거 음모론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걸까. 그들이 철석같이 믿고 있는 근거는 뭘까. 더스쿠프가 IT 관점에서 '부정선거 음모론'의 진위를 따져봤다. 선관위 보안자문위원회 위원장인 김승주 고려대 교수가 도왔다.

12·3 서울의 밤. 경기도 과천에 있는 선거관리위원회에 들이닥친 계엄군은 기묘한 행동을 했다. 선관위 서버실에 진입하더니, 선관위 서버의 제조사와 모델명, 포트(PORT) 번호 등을 촬영했다. 이 이상한 행동의 의문이 풀린 건 2024년 12월 12일 윤석열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에서였다.

윤 대통령은 담화문에서 비상계엄을 내린 이유 중 하나로 22대 4·10 총선의 부정선거 여부를 조사하기 위함이었다고 밝혔다. 보수 유튜버와 속칭 자유주의세력이 주장하던 '부정선거 음모론'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이 음모론은 윤석열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끊이지 않고 불거져 나오고 있다. 윤 대통령의 변호인단 구성을 도운 석동현 변호사는 오래전부터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해온 대표주자 중 한명이다. 보수 유튜버들도 연일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부정선거야말로 비상계엄 선포의 이유다. 계엄군이 다른데 다 놔두고 선관위를 우선적으로 진입한 게 이를 증명한다."

더스쿠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진 이들이 주로 문제 삼는 건 선관위의 보안 시스템이다. 22대 4·10 총선(2024년 4월 10일)에서 외부 해킹을 통해 투표 결과를 조작했다는 거다. 2024년 5월 북한이 '해킹'을 통해 선관위를 공격한 것처럼 4·10 총선 때도 그랬을 것이라는 게 이들의 확신이다.

선관위가 수차례에 걸쳐 "북한의 해킹으로 선거 시스템이 침해된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대체 이들은 왜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진 걸까. 선관위 보안자문위원회 위원장인 김승주 고려대 교수와 부정선거 음모론의 쟁점을 하나씩 짚어봤다.

✚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은 선관위 서버실에 있는 포트 번호만 알면 외부에서 해킹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계엄군이 서버실에 들어가서 포트 번호의 사진을 찍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들의 주장을 요약하면 '포트 번호만 알면 원격으로 해킹할 수 있다'는 건데,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 포트는 운영 체제 통신의 종단점이다. 데이터를 송수신할 때 데이터가 도달하는 목적지라고 생각하면 쉽다."

기관용이든 개인용이든 모든 서버엔 '포트 번호'가 적혀 있다. 계엄군이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게 바로 포트 번호다. 하지만 포트 번호만 있다고 서버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건 아니다. 김 교수의 말을 더 들어보자.

✚ 좀 더 자세히 설명해달라.

"포트 번호를 알아도 외부에서 원격으로 접속하려면 결국 서버가 인터넷에 연결돼 있어야 한다. 그런데 선관위 서버는 인터넷을 연결하지 않은 '폐쇄형'이다. 그러니 포트 번호를 알아도 외부에서 접속하는 건 불가능하다."

이 정도 설명만으로 '부정선거 음모론'의 전제는 깨진다. 하지만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진 사람들은 이를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다. 선관위의 주장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건데, 그 이면엔 선관위가 국정원의 보안 점검을 제대로 받지 않았다는 또다른 음모론이 깔려 있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국정원이 선관위 전체 장비 6400여대 중 5%인 317대만 점검했다. 95%를 점검하지 않았기 때문에 국정원의 조사는 정확성이 떨어진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의 담화문에도 나타난다. "…선거관리위원회는 헌법기관임을 내세우며 점검을 완강히 거부했다. 그러다가 선관위의 대규모 채용 부정 사건이 터져 감사와 수사를 받자 국정원의 점검을 받겠다고 한발 물러섰다. 그렇지만 전체 시스템 장비의 아주 일부분만 점검에 응했고, 나머지는 불응했다. 시스템 장비 일부분만 점검했지만 상황은 심각했다(2024년 12월 12일 4차 대국민 담화문)."

✚ 국정원이 선관위 기기 전체를 점검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국정원이 선관위 전체 장비 중 5%만 조사했다는 게 문제란 건데, 전혀 그렇지 않다. 5%에 해당하는 6400여대는 선관위 근무자들이 쓰는 PC 등 실제 선거정보시스템과 무관한 기기까지 포함한 수치다. 국정원은 선거정보시스템과 직결된 장비 위주로 점검했다. 그 수가 전체 기기의 5%였을 뿐이다."

더스쿠프

[사진 | 뉴시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국정원이 나머지 95%까지 모두 점검했다면 더 확실한 조사라고 볼 수 있는가.

"질문 자체가 잘못됐다. '국정원이 선거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장비를 전부 조사했느냐'라고 묻는 게 더 정확하다. 이렇게 묻는다면 난 '그렇다'고 답할 거다. 국정원의 점검 자체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이들이 5%라는 수치에 매몰됐다는 건가.

"그렇다. 점검 기기가 전체의 5%란 점에 매몰되다 보니까 국정원이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다는 둥 선관위가 비협조적으로 나온 게 아니냐는 둥 수많은 의혹이 불거진 거라고 생각한다."

부정선거에 빠진 이들이 주장하는 건 또 있다. 4·10 총선 때 사용한 국산 '전자 개표기'에 문제가 있다는 거다. 총선 당시 누군가가 전자 개표기를 해킹해 선거 집계 결과를 조작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게 핵심이다.

이런 주장이 나온 배경은 2020년 10월 키르기스스탄 총선에서 벌어진 부정선거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잠깐 살펴보자. 당시 잠정개표에서 여당과 친親정부 성향 정당이 전체 의석의 90%를 차지했다는 게 밝혀지면서 키르기스스탄에선 부정선거 논란이 거세게 일었다.

사실이었다. 정부 측 해커가 해킹을 통해 선거인명부를 빼내거나, 유권자에게 돈을 주고 표를 사는 매표買票 행위를 암암리에 진행한 사실이 현지 언론을 통해 드러났다. 부정선거에 책임을 지고 키르기스스탄 대통령이던 소론바이 제엔베코프도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공교롭게도 키르기스스탄이 2020년 총선 때 사용한 '전자개표기'가 한국산이었다. 이 사실은 우리나라의 총선 결과도 조작됐을 것이란 의혹을 키우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 '전자개표기'를 통해 선거 결과가 조작됐다는 음모론은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전자개표기는 엄밀히 말해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선거에서 쓰는 전자기기는 크게 2가지로 나뉜다. 첫번째 기기는 '전자분류기'다. 선관위 직원이 투표용지 뭉치를 집어넣으면 후보자별로 투표용지를 분류해준다. 이렇게 분류된 투표용지는 두번째 기기인 '전자계수기'에 넣어 수를 센다. 그러면 어느 후보에게 몇표를 투표했는지 빠르게 파악할 수 있다. 두 기기를 합쳐서 '전자개표기'라 일컫는데, 우린 여기서 좀 더 정확하게 알아야 할 게 있다."

✚ 무엇인가.

"전자개표기만 해킹해선 선거 결과를 조작하는 게 불가능하다. 전자분류기와 계수기는 말 그대로 분류와 계수의 역할만 담당하기 때문에 투표용지의 내용 자체를 조작할 수 없다. 특정 후보에게 표가 쏠리도록 분류 결과를 바꾸거나 계수 숫자를 조작하는 게 고작인데, 그러면 금세 들통난다. 선관위가 일일이 눈으로 확인하고 손으로 세는 수작업을 병행하기 때문이다."

✚ 사람이 재확인하기 때문에 전자개표기만으론 선거 결과를 조작하기 어렵다는 건가.

"그렇다."

✚ 전자개표기가 해킹될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가.

"불가능에 가깝다. 전자분류기와 계수기는 모두 인터넷과 분리돼 있어서 실시간 해킹이 어렵다. 그럼에도 해킹을 꾀한다면 '해킹 프로그램'을 설치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내부 조력자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 조력자뿐만이 아니다. 손으로 투표용지를 세는 사람들, 참관인들까지 모조리 매수해야 한다. 그런 엄청난 일을 벌여야지만 그나마 해킹에 성공할 가능성이 생기는 거다."

✚ 그럼 사전투표는 조작할 수 있는가.

"생각해보자. 사전투표하는 유권자는 특별제작한 '회송용봉투'에 넣어 밀봉한 다음 투표해야 한다. 봉투 겉면에는 배송경로를 추적·확인할 수 있는 등기번호가 부여돼 있다. 투표관리관은 회송용봉투 수와 투표자 수를 계산해서 우체국에 인계한다. 이 때문에 누군가가 투표용지를 몇장 더 넣으면 금방 탄로가 난다. 개별 등기번호가 있는 회송용봉투도 준비해야 하는 데다, 회송용봉투 수와 투표자 수까지 맞아떨어져야 해서다. 이 정도까지 조작하기란 불가능하다."

더스쿠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한국 선거 시스템의 보안이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나.

"이 말이 답이 되지 않을까 싶다. 한국의 선거 시스템은 생각보다 그렇게 '자동화'돼 있지 않다."

✚ 무슨 뜻인가.

"전자개표기를 쓰니까 '모든 개표 작업을 모두 자동으로 진행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데, 전자개표기는 하나의 검증 방식일 뿐이다. 선관위는 사람 손을 거쳐서 개표하는 수작업을 병행한다. 게다가 전자개표기는 인터넷과 분리돼 있다. 해킹할 수 있는 포인트가 많지 않다."

✚ 완전 자동화로 개표를 진행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해킹 위험도가 낮다는 말인가.

"그렇다. 언급했듯 해커가 선거에 개입할 수 있는 포인트는 거의 없다. 그런데도 왜 부정선거 논란이 끊이지 않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이혁기 더스쿠프 기자

lhk@thescoop.co.kr

<저작권자 Copyright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