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1.07 (화)

[심찬구의 스포츠 르네상스] 2025 대한민국 스포츠… ‘올바른 정치력’ 갖춘 리더가 필요하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작년에 실망 컸던 K스포츠… 축구 대표팀은 ‘내부 정치’로 내홍

안세영의 용기있는 발언에는 기존 관행 옹호해 변화를 거부해

새 대한체육회장·축구협회장은 ‘가치와 도덕의 배분’에 능해야

조선일보

일러스트=김성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스포츠는 정치와 많이 닮아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정치적 동물(zoon politikon)’로 규정해 인간이 언어와 이성을 통해 선과 악을 구별하고 공동체의 가치를 논의할 수 있는 존재라고 설명했다. 이는 인간이 본성적으로 정치적 존재임을 의미하지만, 스포츠에서의 보여지는 인간의 행태는 다른 영역보다도 더욱 정치적으로 느껴질 때가 많다.

‘정치적’이라는 말은 권력 중심적 사고와 행동, 분열 조장, 기회주의적 행동, 사적 이해관계 추구 등의 부정적 뉘앙스를 연상시킨다. 여타 영역도 ‘정치성’에 좌우되면 부정적 평가를 받기 쉽지만, 스포츠의 경우는 그 정도가 더 심각하게 느껴진다. 이는 스포츠가 본질적으로 정정당당함, 팀워크와 협동정신, 인내와 극복 등 이상적인 가치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본질 가치가 ‘정치성’에 의해 변질될 때 그 실망감이 더 커지게 마련이다.

2024년 스포츠에서 논란이 되었던 국내외 부정적인 사례들에서도 ‘정치성’이 문제의 원인으로 지적됐다. 축구 국가대표팀 내홍은 감독 선임 과정에서 대한축구협회의 ‘내부 정치’가 원인으로 작용했다. 파리 올림픽에서는 주최국 프랑스의 과도한 ‘정치적 의도’가 이를 지켜보는 전 세계 스포츠팬들을 불편하게 했다. 배드민턴 국가대표 안세영의 용기 있는 발언은 대한체육회에 대한 정부, 여론, 언론의 지탄으로 이어졌는데, 문제의 핵심은 체육계 리더들의 균형감 없는 ‘정치적’ 이해관계 배분이었다.

캐나다 출신 미국 정치학자 데이비드 이스턴은 정치를 “사회적 가치의 권위적 배분”으로 정의했다. 배분은 공정성과 형평성에 기초해 이루어져야 하며, 이를 통해 정치는 갈등을 조정하고 질서를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정치는 비전을 제시하고 경제적 안정과 복지를 증진하며, 민주주의 가치를 강화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 이러한 기능이 온전히 작동할 때, 정치는 사회의 안정과 발전을 이끄는 중심축이 된다.

스포츠의 자원, 가치배분 과정에도 고도의 ‘정치력’이 필요하다. 프로스포츠나 올림픽 등과 같은 메가스포츠 이벤트는 자본과 기술의 대규모 투자가 이뤄진다. 현대 스포츠가 가진 미디어와의 연계성, 산업 규모, 상징성과 연대감, 세계적 차원의 조직력 등을 포괄하는 영향력에서 파급되는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힘은 상상 이상이다. 미디어와 대중에 대한 영향력, 조직이 부여하는 지위와 권력, 경제적 이해관계, 상징성의 확보 등을 둘러싼 갈등이 스포츠가 정치의 대상이 되는 출발점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국 스포츠는 정치적 작용이 순기능을 하기 위한 3대 키워드, 즉 가치, 권위, 배분에 있어 취약한 모습을 보인다. 외부 이해관계자, 즉 기업, 공공, 사회는 스포츠의 본질적 가치나 그로부터 파생되는 미래지향적 의미의 산업적, 경제적, 문화적 가치에 대한 이해와 경험이 적다. 성적지상주의에 입각한 근시안적인 ‘체육’적 사고가 지배적이다. 스포츠는 본연의 목적으로서 추구되지 못하고, 수단으로 소모되어 왔다. 이에 따라 K문화산업이 세계적으로 성장한 반면 스포츠는 독립적 선도 분야로서 성장하지 못했고, 기업, 공공, 사회에 종속되어 단기 성과에 따른 일차원적이고 수동적인 보상 기제에 만족하며 한정적 재원과 영향력을 놓고 제로섬 게임에 가까운 내부 정치에 힘을 소모하고 있다.

리더십이 권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합법성, 도덕적 정당성, 성과와 역량, 사회적 가치와 이념에의 부합성, 국제적 인정 등의 요소가 필요하다. 가치배분의 주체가 되어야 할 한국 스포츠의 리더들이 이와 같은 제도적, 성과적, 도덕적 권위를 갖추고 있는지 회의적이다. 보편적 권위를 갖추지 못한 리더십에 의한 가치 배분 행위에는 저항이 따르기 마련이다. 개혁의 대상으로 지목되었던 주요 협회장들이 국회 청문 과정 등을 통해 드러난 도덕적, 역량적, 규범적 흠결을 극복하여 리더십을 의미 있게 행사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틀에 갇힌 시야와 지지받지 못하는 권위 속에서 미래지향적인 가치 추구와 자원 배분은 쉽지 않다. 스포츠의 다양한 주체들 간의 창의적이고 미래지향적 가치 추구는 막혀 있는 반면 기득권은 권력과 이해관계를 지키기에 급급하다. 안세영의 용기 있는 발언에 대한 레전드 방수현과 협회장의 반응은 기존의 관행을 옹호하여 변화의 요구를 거부한 것이었다. 개혁의 기치를 내걸었던 대한체육회를 향한 문화체육관광부의 시도는 큰 방향성을 잃고, 결국 주도권 싸움으로 끝나는 양상이다. 축구협회를 향했던 거센 변화에 대한 요구도 어떻게 담길지 미지수다.

우리 스포츠는 엘리트, 프로를 막론하고 공공재원과 기업의 지원금에 대한 의존도가 크다. 그러나 공공과 기업도 선순환적, 중장기적, 구조적 접근을 하지 못하고, 소모성 재원의 지원자 역할만 하고 있다. 프로축구 시도민구단 다수가 지역사회와의 관계성 안에서 중장기전 비전을 가지고 성장하지 못하고, 지역 정치와 단기적 이해관계에 휘둘려 짧은 호흡으로 악순환을 되풀이하고 있는 모습도 그 방증이다. 프로 스포츠에서 재원 공급의 주체인 기업의 접근 방식 역시 중장기적인 산업 발전보다는 지원하고 있는 팀의 성적에만 목표 수립이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스포츠계 수장들의 선거가 진행 중이다. 대한체육회장과 대한축구협회장을 조만간 선출할 예정이다. 우리 스포츠에 제도적, 성과적, 도덕적 권위를 가진 리더십이 필요하다. 통찰력과 창의력, 공감과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는 소통 능력, 구조와 평가, 배분의 공정성에 필요한 신뢰를 이끌어낼 수 있는 진정성 등이 전제조건이다. 페어플레이와 스포츠맨십에 기초하여 최선을 다한 노력이 보답받고 통합과 협력의 가치가 빛을 발하며 규칙의 준수와 포용의 정신이 박수를 받는 스포츠의 본질에 대한 명확한 이해에 기초하여 미래지향적인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산업적 가치를 선도할 수 있는 ‘정치력’ 있는 리더가 기다려진다.

△매일 조선일보에 실린 칼럼 5개가 담긴 뉴스레터를 받아보세요. 세상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91170

[심찬구 스포티즌 대표]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