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 대치의 정치 파탄 속
1인 4역 公僕이
양 엔진 고장난 조종간 잡아
좌우 대결이 아니라
전진 대 후진의 갈림길이다
12월 29일 오전 9시 3분경 무안공항의 제주항공 폭발 참사가 발생했다. 사고 직후 현재 가장 큰 힘(또는 책임)을 가진 두 사람의 행보는 사뭇 대조적이었다. 9시 30분부터 속보가 쏟아졌고 사망자 숫자도 계속 늘었다. 권한대행이 된 지 이틀 만에 참사를 맞은 최 대행은 사고 발생 47분 만인 오전 9시 50분 정부서울청사 중앙재난안전상황실에 도착해 긴급 회의를 주재한 뒤 무안으로 내려갔다. 비슷한 시각인 오전 10시 8분경 이재명 대표는 “국민을 향해 쏴라. 윤&한”이라는 조롱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가 비난이 쏟아지자 글을 내렸다. 그 후 무안으로 가 유가족 앞에 무릎 꿇고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보였다. 이재명 지지자들은 온라인에 “정부는 갈팡질팡하는데 이 대표는 일 잘한다”는 등의 글을 올렸다. 정말 그럴까. 1인 4역을 맡아서도 최 대행은 지난 4일까지 9차례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며 사고 수습에 전력하고 있다.
권한대행이 된 지 나흘 만인 12월 31일에는 국무회의 모두 발언에서 헌법재판관 후보자 3명 중 2명을 임명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헌법재판소를 이 지경으로 만든 건 민주당이다. 검사·감사원장·장관 등을 줄탄핵하고 헌법재판관 3명이 공석이 되어도 6인 체제를 끌고 갔다. 6인 체제로 심리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정치적으로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느닷없는 12·3 비상계엄으로 대통령 탄핵이 시간 싸움에 돌입하니 입장을 바꿨다. 헌법재판관 3명을 빨리 임명하지 않으면 권한대행을 차례로 탄핵시키겠다고 했다. ‘총리는 재적 과반으로 탄핵할 수 있다’며 대통령 권한대행인 한덕수 총리까지 탄핵시킨 건 나라 걱정을 조금이라도 하는 정상적인 정당이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행태였다. 나라야 망가지든 말든 브레이크 고장 난 기관차처럼 폭주해 대한민국을 ‘대행민국’으로 만들었다. 만약 최상목 권한대행까지 탄핵되고 ‘대행대행’에 이어 국제·경제 경험도 없는 이주호 교육부총리, 교수 출신의 과기부 장관이 차례로 대행을 맡는 ‘대행대행대행’ 메들리가 이어졌다면 나라 꼴이 어찌 됐겠는가. 최 대행이 욕먹을 각오하고 민주당의 폭주에 제동을 걸었는데 일부 국무위원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대통령실 수석들이 전원 사의를 표명했다. 최 대행을 지지한 사람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였다. 국무위원들을 향해 “고민 좀 하고 말하라”고 일갈했다. 최 대행과 이 총재는 글로벌 안목을 갖춘 경제통들이다. 내편네편의 정치 유불리보다는, 높은 망루에 서서 멀리서부터 한국 경제를 덮쳐오는 파랑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감지하고 국가 이익의 관점에서 판단하고 대응하는 인물들이다.
시대착오적 계엄으로 탄핵 정국을 자초하고는 보수 지지층에 결집을 호소하며 버티기에 들어간 윤석열 대통령, 자신의 재판 일정은 늦추면서 탄핵과 조기 대선 압박에 올인하는 이재명 대표의 폭주, 그 양 극단의 대결 속에 졸지에 대통령 권한대행이 된 최상목, 세 사람은 모두 대학에서 법을 전공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삶의 궤적은 확연하게 다르다. 법 기술자인 두 사람과 달리, 최 대행은 서울법대를 수석 졸업했지만 행정고시를 통해 정통 관료의 길을 걸어왔다. 1997년 외환 위기도 경험했고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때는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의 정책 보좌관으로 위기 대응의 최전선에 섰다. 강 전 장관은 “소신껏 일 잘하는 후배 관료가 보좌한 덕에 그 힘든 파고를 헤쳐나올 수 있었다”고 했다.
그동안 좌파는 우리 사회를 잘사는 사람과 못사는 사람, 친일·반일로 나눠 갈등을 부채질해왔지만 오늘날 대한민국은 이념을 떠나 도덕과 염치를 갖고 자기 자리에서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선진 시민’, 최 대행처럼 역량으로 단련된 나라 일꾼들이 적지 않아 이만한 성과를 냈다. 반면 저질 정치는 부강해진 나라에 기생해 갈등을 조장하면서 권력과 이권에만 집착해왔다. 정치 판세로는 좌우 대결 같지만 더 넓게 보면 ‘절제와 극단’ ‘상식 대 상식 밖’의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제 일 하는 일꾼들이 저질 정치의 지배를 계속 받으며 나라 전체가 가라앉느냐, 벗어나느냐의 기로에 놓인 것이다.
황당한 이 상황도 어떤 식으로든 결론이 날 것이다. 역대급 비호감 선거로 치러져 오늘에까지 이른 ‘윤석열 대 이재명 구도’는 양쪽 엔진 다 고장 난 비행기가 돼버렸다. 최상목 대행이 ‘동체착륙’시키는 기장처럼 간신히 국정 공백을 메우는데 그조차 흔들려고 한다. 앞에 콘크리트 둔덕이 있을지, 부서지기 쉬운 구조물이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지만 많은 국민이 저질 정치의 실체를 파악하는 계기로 삼는다면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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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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