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호처 "인력 조정 권한" 경찰은 "협의 사항일 뿐"
김용현 처장 당시 군경 지휘로 시행령 고치려 해
군경 반대·상위법 충돌 지적 '협의 후 조정'으로
윤석열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을 위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이대환(붉은 점선 안) 부장검사와 수사관들이 3일 오전 8시 30분쯤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검문소에 진입하자 육군 수도방위사령부 55경비단 병력이 수사관들을 둘러싸며 출입을 저지하고 있다. 이날 공수처 수사관들은 관저 입구까지 갔으나 대통령 경호처의 강한 반발로 영장 집행에는 실패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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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에 앞서 대통령 관저 주변 경호 강화에 협조해 달라는 대통령경호처와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의 요청을 경찰이 모두 거절한 것으로 확인됐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경찰 국가수사본부 특별수사단(특수단) 등으로 꾸려진 공조수사본부(공조본)가 3일 영장 집행을 위해 관저로 진입할 때 경찰 병력과는 별다른 마찰이 없었다.
"검토하라" 최상목 "어렵다" 경찰 수뇌부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4일 정부서울청사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상황실에서 열린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중대본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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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이호영 경찰청 차장(경찰청장 직무대행)과 최현석 서울경찰청 생활안전차장(서울경찰청장 직무대행)은 '윤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 시 서울 용산구 한남동 윤 대통령 관저 경호 인력 강화가 필요하다'는 경호처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조지호 경찰청장과 김봉식 서울경찰청장이 내란 혐의로 구속된 뒤 이호영, 최현석 차장이 경찰청장과 서울청장 직무대행을 맡고 있다.
대통령경호법 시행령(제3조3)을 보면, 경호처장은 관계기관 장과 협의해 경호 인력과 시설, 장비 등 사항을 조정할 수 있다. 경호처장은 이를 근거로 서울경찰청 소속 101· 202경비단, 22경호단 지원을 요청했다. 101경비단은 용산 대통령실 경비, 202경비단은 관저 외곽, 22경호단은 대통령 수행 경호 임무를 각각 수행한다.
경찰 수뇌부는 그러나 "체포영장 집행을 막을 법적 근거나 명분이 전혀 없고, 다른 임무를 수행 중인 경찰 인원을 뺄 이유도 없다"는 의견을 경호처에 전했다고 한다. 경호처는 경찰과 '협의'하는 관계일 뿐 일방적으로 지시할 권한은 없으니 지원 요청에 따르지 않아도 문제가 없다는 게 경찰 입장이다. 실제 101·202경비단과 22경호단의 지휘권은 서울경찰청에 있다.
경호처는 이에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을 통해 재차 협조를 요청했다. 하지만 이호영 직무대행은 최 권한대행의 협조 요청에도 "어렵다"는 뜻을 전했다. 경찰 관계자는 "최 대행은 '지시'나 명령'을 한 게 아니라 검토해 보라는 취지의 협조 요청을 한 것"이라며 "검토를 마친 의견을 전달한 거라 항명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기획재정부 역시 "최 대행이 지시나 명령한 게 아니라 경호처에서 얘기하니 한번 검토해보라는 취지로 말한 것"이라고 했다.
군·경찰 지휘하려던 김용현
김용현 국방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해 9월 2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하상윤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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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호처는 대통령경호법 시행령(제3조3)을 근거로 '인력 조정권'이 경호처에 있으니 경찰의 거부가 위법하다고 주장한다. 반면 경찰은 문언 그대로 '협의'해야 한다는 것이지, 경호처에 경찰 인력 지휘권은 없다고 맞선다.
해당 시행령은 '12·3불법계엄 사태'의 핵심이자 윤 대통령의 충암고 1년 선배인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경호처장 시절이던 2022년 11월 경호처 권한 강화를 위해 개정을 시도했던 조항이다.
경호처는 "(경호)처장은 경호 업무의 효율적 수행을 위해 필요하면 경호구역에서 경호 활동을 수행하는 군·경찰 등 관계기관 공무원 등에 대한 지휘·감독권을 행사한다"는 조항을 신설해 2022년 11월 9일 입법예고했다. 경호처가 경호 업무에 배치된 군과 경찰의 통솔권을 쥐겠다는 취지였다. 당시 대통령실에 재직했던 정부 관계자는 "김용현 처장이 꼭 고치고 싶어한 시행령"이라며 "대통령경호법을 고치려면 국회를 통과해야 하는데, 야당 반대가 예상되니 시행령으로 우회해 경호처 권한을 강화하려 한 것"이라고 전했다.
김 전 장관의 계획은 국방부와 경찰의 반발을 불렀다. 경호처가 군·경을 지휘·감독하는 것은 1976년 유신 시절에나 있었던 일이고 상위 법령인 대통령경호법과도 충돌한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대통령경호법은 경호처장의 지휘·감독권 대상을 '경호처 소속 공무원'으로 제한한다. 군과 경찰은 "시행령을 고치면 경호처에 지휘계통에 속하는 하급기관이 된다"며 반대 뜻을 분명히 했다. 반발이 커지자 경호처는 문제의 '지휘·감독' 문구 대신 '관계기관의 장과 협의' 문구를 넣었고, 시행령은 2023년 5월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김용현 전 장관 의도대로 시행령이 개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관저 경호를 강화하란 경호처와 최 권한대행의 협조 요청을 경찰이 거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조소진 기자 sojin@hankookilbo.com
강지수 기자 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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