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중부 해발 2647m 산 정상에 있는 베라루빈천문대. 위키미디어 코먼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가 발행하는 기술매체 ‘MIT 테크놀로지 리뷰’가 2025년 가장 주목할 10대 혁신 기술(Breakthrough Technologies)을 선정해 발표했다.
수년 내에 우리의 일과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이는 기술을 골라 뽑은 것이어서 발표 때마다 주목받는 행사다. 올해로 24번째를 맞은 ‘10대 혁신 기술’은 자동화, 의학, 물리학 부문에서 주로 선정한다. 혁신의 기준은 새로운 기술로 이어질 과학적 성과, 획기적인 치료 기술, 시범단계를 넘어선 새로운 산업기술 등이다. 2024년엔 기적의 약물이란 별칭을 얻은 새 비만치료제, 2021년엔 생성형 인공지능 열풍을 일으킨 오픈에이아이의 지피티3(GPT-3) 등이 10대 혁신 기술에 선정된 바 있다.
올해 목록에선 인공지능의 효율을 높이고 기후위기라는 시대적 과제에 대응하는 기술이 두 축을 이루고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 검색
우선 인공지능과 관련해선 생성형 인공지능 검색, 소형 언어모델, 고속 학습 로봇 3가지가 꼽혔다.
첫째는 생성형 인공지능 검색이다. 생성형 인공지능은 검색 방식을 바꾸고 있다. 질문을 입력하면 인공지능이 온라인상에서 관련 정보를 모아 분석한 뒤 핵심 사항을 요약해 알려준다.
‘리뷰’는 구글이 제미나이를 기반으로 만든 ‘에이아이 개요’(AI Overviews)를 예로 들었다. 에이아이 오버뷰는 검색 관련 목록을 제공하는 대신 간결하게 요약한 답변을 제공한다. 이런 방식의 검색은 웹사이트를 직접 방문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온라인 광고 시장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지엑스오(GXO) 물류센터에 상자를 운반하고 있는 휴머노이드로봇 디지트. Agility Robotics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효율 좋은 소형 언어모델
둘째는 소형 언어모델이다. 지금까지 출시된 생성형 인공지능은 모두 거대 언어모델을 기반으로 한다. 거대 언어모델은 수천억개의 매개변수와 방대한 규모의 데이터 학습을 통해 실력을 쌓는다. 매개변수와 학습용 데이터가 클수록 성능도 좋아진다. 이에 따라 많은 전력을 소비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특정 작업만을 수행할 경우엔 적은 매개변수와 데이터만으로도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오픈에이아이가 지피티-포오(GPT-4o)와 함께 내놓은 지피티-포오 미니(GPT-4o mini), 구글 딥마인드가 내놓은 제미나이 울트라와 제미나이 나노가 이에 해당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파이(Phi)라는 소형 언어모델을 내놨다. 앤트로픽의 클로드3는 대형, 중형, 소형 세 가지 종류로 제공된다.
인공지능으로 배우는 로봇
셋째는 고속 학습 로봇이다. 생성형 인공지능 덕분에 로봇도 어느때보다 더 빠르게 새로운 능력을 습득하고 있다. 로봇 공학자들은 생성형 인공지능을 이용해 단순히 글과 사진, 영상을 분석하는 차원을 넘어, 이를 로봇의 동작 훈련으로 연결하는 방법을 알아냈다.
리뷰는 “로봇 학습 방식을 재정의할 만한 획기적인 진전이 이뤄져 물류센터에서는 이미 이런 방식으로 로봇을 훈련하고 있다”며 “이는 앞으로 집안일을 돕는 가사도우미 로봇의 토대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소의 트림은 온실가스인 메탄의 주요 배출원이다. 픽사베이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온실가스 줄여주는 소 트림 감소제
온실가스 감축과 관련한 기술에서도 유망한 기술 3가지가 뽑혔다.
첫째는 소 트림 감소제다. 소의 트림은 온실가스인 메탄의 주요 배출원이다. 양과 염소를 포함한 반추동물은 소화과정에서 메탄가스를 다량 배출한다. 유엔식량농업기구 등의 추정에 따르면 축산업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는 전체의 11~20%에 이른다. 따라서 트림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는지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최근 기업들이 트림을 줄여주는 사료 첨가제를 잇달아 개발하고 있다. 네덜란드의 디에스엠(DSM-Firmenich)이 개발한 첨가제 보베어(Bovaer)는 메탄 배출량을 30%까지 줄일 수 있다고 한다. 소의 장내 효소의 작용을 억제해 메탄 배출을 줄이는 방식이다. 이 회사는 이미 50개국 이상에서 이 첨가제가 시판되고 있다고 밝혔다.
리뷰에 따르면 메탄 발생량을 최대 80%까지 줄일 수 있는 홍조류 추출 물질을 발견해 제품화에 나선 기업도 있고, 백신이나 장내 미생물 유전자 교정으로 메탄 발생을 원천적으로 줄이는 기술 개발도 진행되고 있다.
재활용 원료로 만드는 청정 항공유
둘째는 청정 제트 연료(항공유)다. 항공기에서 배출하는 온실가스도 전 세계 배출량의 4%를 차지할 만큼 비중이 적지 않다. 2024년 전 세계 항공기가 사용한 제트연료는 약 1000억갤런(약 3800억리터)이다. 이 가운데 화석연료가 아닌 청정연료는 불과 0.5%다.
이제 폐식용유나 산업폐기물, 공기 중에서 포집한 이산화탄소 같은 재활용 원료로 만든 청정 제트 연료가 개발 단계를 지나 양산 단계에 돌입했다.
일부 나라가 청정 제트 연료 사용을 의무화하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산업 분야로 떠오르고 있다. 예컨대 유럽연합과 영국에서는 항공유의 최소 2%는 청정 연료를 써야 한다. 2050년에는 의무 사용 비율이 70%로 높아진다. 하지만 기존 항공유보다 가격이 거의 3배나 비싼 점이 청정 연료 보급의 걸림돌이다.
스웨덴의 신생기업 스테그라가 약 70억달러의 자금을 조달해 짓고 있는 친환경 제철 공장. 2026년 가동이 목표다. 스테그라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재생에너지로 만드는 친환경 철강
셋째는 친환경 ‘그린 철강’이다. 철강산업에서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전체의 약 8%에 이른다. 세계 3위 온실가스 배출국인 인도보다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한다.
대부분의 철강이 석탄을 연료로 쓰는 고로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강철 1톤당 약 2톤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천연가스를 사용하면 배출량이 약 40% 줄어들지만 그래도 여전히 많다.
이에 따라 철강업계는 재생에너지로 만든 수소를 사용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스웨덴의 스테그라라는 신생 기업이 처음으로 이 기술을 적용한 제철소 건설에 나섰다. 풍력과 수력 발전으로 생산한 전기를 사용해 물을 분해해 수소를 얻는다. 2026년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유럽의 세계적 철강업체인 사브도 비슷한 방식의 제철소를 짓고 있다.
리뷰는 “스테그라 공장의 생산량은 연간 450만톤에 불과하지만 탄소 배출이 없다는 점에서 깨끗한 철강산업의 시작점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2023년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 의료센터에서 줄기세포를 이용한 간질 환자 치료 시술을 하고 있는 모습. UC샌디에이고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연 2회 주사로 에이즈 감염 예방
난치성 질환을 다루는 새로운 치료 기술 2가지도 포함됐다.
하나는 효과가 장기간 지속되는 에이즈 예방약이다. 지난해 말 국제학술지 사이언스는 새롭게 개발된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이즈) 예방약을 2024년 최고의 과학 성과로 선정했다. 레나카파비르(lenacapavir)란 이름이 이 약물은 1회 접종으로 6개월간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을 거의 완벽하게 막아준다. 아프리카 여성 청소년과 성인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서 100%, 이후 4개 대륙에서 진행한 임상시험에서 99.9%의 예방 효과를 보였다. 미국 제약 대기업 길리어드가 개발한 항레트로바이러스 약물로, 제품명은 선렌카(Sunlenca)다.
임상시험 결과대로라면 연 2회 접종으로 거의 완벽한 예방 효과를 누릴 수 있다. 길리어드는 특히 120개 저소득국에서는 복제약물을 제조해 저렴하게 보급할 수 있도록 했다. 유엔은 2030년 에이즈 종식을 목표로 삼고 있다. 리뷰는 “아직도 해마다 전 세계적으로 100만명이 넘는 감염자가 발생하고 있지만 이제 유엔의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 약을 갖게 됐다”고 평가했다.
줄기세포로 난치성 질환 치료
다른 하나는 줄기세포 치료법이다. 줄기세포란 근육이나 피부, 각종 장기를 구성하는 세포로 분화해 자랄 수 있는 원시세포를 말한다. 이 줄기세포를 이용해 난치성 질환을 치료하는 기술이 눈앞에 다가왔다.
2023년 간질 환자에게 줄기세포로 만든 신경세포를 이식해 발작 증상 완화에 성공한 데 이어 2024년엔 소아당뇨병(제1형 당뇨병)이라는 자가면역질환 환자에게 줄기세포로 만든 췌장의 베타 세포(인슐린 호르몬 분비 세포)를 주입해 효과를 입증했다.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에서 진행중인 줄기세포 임상시험이 100건이 넘는다.
리뷰는 “25년 전 과학자들은 시험관 수정을 통해 만들어진 배아에서 처음으로 줄기세포를 분리했다”며 ”당시 과학자들이 약속한 줄기세포 의학 혁명이 마침내 실현되려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구글 웨이모의 자율주행 로보택시. 웨이모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시동 건 로보택시, 요금 경쟁 예고
자율주행 기술을 장착한 로보택시도 마침내 10대 혁신 기술에 선정됐다.
로보택시는 이제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 10여개 도시에서 운행되고 있다. 시험운행 단계를 넘어 생활 속으로 파고들기 시작했음을 시사한다.
미국에선 구글 알파벳의 자회사인 웨이모가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피닉스에서 무인 로보택시를 운행하고 있다. 웨이모는 올해 말에는 우버와 제휴해 오스틴과 애틀랜타에서도 로보택시를 운행할 계획이다.
아마존 소유의 죽스는 올해 안에 라스베이거스에서 로보택시를 운행할 계획이다. 이 회사는 현재 샌프란시스코, 오스틴, 마이애미에서 시험운행중이다. 영국의 신생기업 웨이브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시험운행을 하고 있다. 중국에서도 바이두, 오토엑스, 위라이드, 포니에이아이 등 여러 업체들이 주요 도시에서 로보택시를 운행하고 있다.
리뷰는 “기존 택시기사들의 반발, 안전문제에 대한 우려 등 여러 장애물이 있지만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로보택시를 경험하면서 신기술에 익숙해지고 있다”며 시장을 선도하는 업체들이 사업을 확장하면서 요금 경쟁을 시작할 것으로 예상했다.
베라루빈천문대에 설치된 3200메가픽셀 카메라. 베라루빈천문대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10년간 200억개 은하 목록 작성
천문학자들이 큰 기대를 걸고 있는 천체망원경 베라루빈천문대도 10대 혁신 기술에 선정됐다.
칠레 중부 체로파촌산의 해발 2647m 정상에 있는 이 천문대는 지름 8.4m의 망원경과 3200메가픽셀 카메라, 자외선부터 근적외선 빛까지 포착할 수 있는 여섯개의 필터를 갖추고 있다. 앞으로 10년 동안 남반구의 하늘 전역을 샅샅이 훑어보면서 우주의 95%를 차지하는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의 존재에 관한 단서를 찾는 것이 목표다.
관측이 끝날 무렵엔 200억개의 은하 목록을 작성하고 60페타바이트(1페타=1000조)의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이 데이터를 슈퍼컴퓨터로 분석하면 암흑물질이 은하와 별에 미치는 중력 효과를 찾아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리뷰’는 일이 순조롭게 진행될 경우 올해 상반기 중 첫번째 관측 사진을 볼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중국 이항이 개발 중인 수직이착륙기. 이항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마지막 단계서 탈락한 후보들
가상발전소, 인공지능 에이전트, 전기 수직이착륙기(eVTOL) 3가지는 혁신 기술 후보에 들었다가 마지막 단계에서 탈락했다.
가상발전소란 전력을 생산하고 저장하는 여러 장치를 연결해 전력망 효율을 높이는 시스템을 말한다. 인공지능 에이전트는 사람의 개입 없이 스스로 주어진 환경을 인식하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최적의 행동을 선택해 실행하는 인공지능 시스템을 말한다. 수직이착륙기는 말 그대로 도심 항공교통용으로 개발 중인 에어택시를 말한다. 일종의 전기 헬리콥터다.
리뷰는 “이 세가지는 올해는 비록 선정되지 못했지만 여전히 주목할 가치가 있는 기술”이라고 평가했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한겨레는 함께 민주주의를 지키겠습니다 [한겨레후원]
▶▶실시간 뉴스, ‘한겨레 텔레그램 뉴스봇’과 함께!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