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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8 (수)

자연이 품은 생명력·아름다움… 한국의 빛·색채로 완성시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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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호 탄생 120주년 특별전

韓 서양화단 선구자·첫 인상주의 화가

‘회화는 태양과 생명과의 관계…’ 정의

자연의 본질적 아름다움 화폭에 구현

사회 운동·우리문화보존 운동도 앞장

전남도립미술관서 3월2일까지 전시

흰 저고리, 옥색 치마, 붉은 옷고름…. 화사하고 밝은 색조로 화면에 생기를 입혔다. 선홍빛과 짙은 갈색 등으로 이루어진 배경이 단아한 자태로 앉아있는 여인을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처의 상)

개성 송악산 자락의 초가. 화창한 봄날 대추나무의 보라색 그림자가 집을 온통 덮고 있다. 양지바른 담장 밑에 누워 졸고 있는 흰 삽살이, 개밥을 주러 나오는 딸 아이의 빨간 옷, 그리고 사철나무의 초록이 명랑한 분위기를 조성한다.(남향집)

세계일보

‘처의 상’(72×53㎝, 1936). 전남도립미술관 제공


당시 유행하던 인상주의 화풍에 기조를 두었으나 관념적인 방법을 지양하고 이 땅의 공기와 빛깔이 인상주의에 가장 걸맞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작품들이다.

‘20세기 한국미술의 전설’ 모후산인(母后山人) 오지호(吳之湖, 1905~1982)는 한국의 자연과 풍토를 주제로 ‘빛에 의해 약동하는 생명’을 표현하고자 인상주의 기법을 도입해 독창적인 조형 언어를 구축한 한국 서양화단의 선구자다. 국내 최초의 인상주의 화가라고 보면 된다. 그는 맑고 밝은 색채와 빛을 이용해 자연의 생명력을 부각시키며, 한국의 자연주의와 서구 인상주의 화풍을 결합한 자신만의 미학을 제시했다.

특히 1970년대에는 프랑스 인상주의 색채보다 한국 자연의 본질적 아름다움을 더욱 깊이 탐구해, 동양 정신의 우월성을 표출해냈다. 마치 시처럼 내면의 감성을 통해 자연의 정신을 화폭에 구현한 것이다.

“회화는 태양과 생명과의 관계이자 융합이다. 회화는 환희의 예술이다”고 정의한 그는 자신의 캔버스에 자연이 품은 생명력과 아름다움을 오롯이 담아내고자 애썼다.

또한 사회사상가로서 민족주의 가치를 바탕에 깔고 우리말 표기와 국한문 혼용 사용, 한자교육 운동을 주창하며 사회운동도 활발히 전개했다. ‘구상회화론 선언’, ‘순수회화론’, ‘피카소와 현대회화’, ‘현대회화의 근본 문제’ 등 다양한 주제의 회화 관련 논문을 발표한 최초의 화가이기도 하다. 이러한 그의 문화 예술적 유산은 여전히 후배 작가들에게 영감을 전하고 있다.

세계일보

‘풍경’(65.5×53㎝, 1927)


세상을 떠날 때까지 무등산 아래 광주 지산동 초가에 머물며 남도의 풍경과 정취를 담는 창작 활동을 지속했다. 한국어문교육연구회를 창립하고 ‘계고회(稽古會)’를 조직해 우리문화보존운동에도 앞장섰다. 그의 예술정신과 실천행위는 주체적인 민족문화 정립에 근간을 둔 이른바 ‘지사의 삶’과 상응한다.

전남도립미술관은 오지호 탄생 120주년을 맞아 ‘오지호와 인상주의 : 빛의 약동에서 색채로’라는 주제를 내걸고 3월2일까지 오지호 특별전을 개최한다. 오지호의 전 생애를 아우르는 회화작품 100여점, 아카이브 100여점, 오지호의 데스마스크와 생전에 사용하던 이젤과 팔레트, 작업복 등 유품을 만나 볼 수 있다.

인상주의의 시대적 의미와 현대적 의의를 제고하기 위해 오지호, 김홍식, 김용준 등 일본 동경예술대학 졸업작품과 동경예술대학 교수이자 일본의 대표 인상주의 화가인 오카다 사브로스케, 후지시마 다케지의 작품들을 함께 전시하고 있다. 아울러 오지호의 화업을 잇는 아들 오승우(1930~2023), 오승윤(1939~2006), 그리고 장손 오병욱(1958~)의 대표작품들도 배치해, 근현대 서양 화단을 이끌어 온 오지호 일가의 회화 세계를 재조명한다.

전시는 크게 시기별 활동 범위와 특성에 따라 1부 ‘인상주의를 탐색하다’(1920~1945), 2부 ‘남도 서양화단을 이끌다’(1946~1970), 3부 ‘한국 인상주의를 구현하다’(1971~1982)로 구분해 놓았다.

세계일보

‘남향집’(80×65㎝, 1939)


1부에서는 1920년대 동경예술대학 유학 시절 제작한 작품과 한국 최초 서양화 미술 단체인 ‘녹향회’ 활동, 1930년대 개성 송도 시절에 출간한 한국 최초의 원색화집 ‘오지호·김주경 2인 화집’(1938)에 수록된 ‘처의 상’, ‘임금원’과 국가등록 문화재로 지정된 ‘남향집’ 등 인상주의 천착기에 제작한 대표작들이 관람객을 반긴다.

2부는 해방 이후의 산 풍경과 항구·배를 그린 바다 풍경, 꽃과 식물, 열대어 등 남도 서양화단을 주도했던 시기의 작품들을 모았다. 아들과 손자의 작품들도 여기서 만날 수 있다.

3부는 1970년대 이후 빛과 색채로 구축한 남도의 풍경뿐 아니라 1974년, 1980년 두 차례 해외여행을 통해 담아낸 유럽 풍경들과 그가 유작으로 남긴 미완의 작품 ‘쎄네갈 소년들’(1982)을 선보인다. 특히 문헌, 사진, 실물자료 등을 토대로 구성한 아카이브는 ‘오지호화백작품전’(1948), ‘아미타후불탱화’(1954)와 미술론·미술비평, 국·한문 혼용운동, 문화재 보전운동 등 다양한 활동 기록을 보여준다.

세계일보

‘베니스’(72.7×90.3㎝, 1978)


프랑스 인상주의 대표작가인 클로드 모네와 빈센트 반 고흐의 예술세계를 VR(가상현실)로 체험할 수 있는 코너도 마련되어 있다. 모네의 대표작인 ‘수련의 집착’을 통해 지베르니 정원으로 안내받아, 그의 작업실을 탐방하면서 작품세계를 들여다보는 자리다. 고흐가 소장했었고 현재는 오르세 미술관의 소장품이 된 ‘팔레트’ 등 고흐의 작품 네 점을 상호 대화형의 인터랙티브 방식으로 감상할 수 있다.

이지호 관장은 “자연과 대상에 대한 생명력을 한국의 빛과 색채로 완성시킨 오지호 작품의 정수를 감상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라며 “오 화백만의 생명 찬가를 직접 느껴보시라”고 조언한다.

“여하한 불의와도 타협하지 않고, 여하한 폭력 앞에도 굴복하지 않고, 오직 한 갈랫길로만 나아가는 심적 태도를 가리켜 ‘지조’라고 부른다. … 이 지조는 반드시 예술활동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요, 사회적 활동에서도 발현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오지호, ‘수필문학’ 1972)

김신성 선임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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