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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8 (수)

강력한 거짓말쟁이의 나라 [뉴스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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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1월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실에서 대국민 담화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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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 사회부장



2018년 4월 검찰 관계자에게서 한통의 제보 전화를 받았다. 지역의 한 사업가가 명망 있는 검찰 출신 전관 변호사를 고소했다고 했다. 고소장에는 자신이 검찰 출신 전관을 검사 시절부터 금전적으로 지원하는 스폰서 역할을 했다는 내용이 구체적으로 담겼다고 했다.



사실이 아니라면 무고죄로 맞고소돼 곤욕을 치를 게 분명한 사안이었다. 그럼에도 검찰에 고소장을 냈으면 진실일 가능성이 커 보였다. 제보는 상대가 검찰 출신 거물이라 수사가 왜곡될 가능성을 우려한 일종의 ‘내부 고발’이기도 했다.



정치부 기자였던 나는 법조팀에 제보 내용을 알렸다. 검찰이 어느 정도 비중을 두고 의지를 가지고 수사 중이라면 보도해야 할 가치가 있는 사건이었다. 얼마 뒤 법조팀 선배가 취재 결과를 알려줬다. 수사 책임자에게 확인했더니 “고소인에게 주장을 뒷받침하는 물증을 제시하라고 했는데 하지 못했다”는 상황을 전하며 ‘별로 얘기가 안 되는 사건’이라는 반응을 보여서 기사를 쓰지 않기로 했다는 설명이 돌아왔다.



그 순간 또 다른 검사의 말이 떠올랐다. “수사는 기세고 자세야. 검사가 수사 의지를 갖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야 사람들은 입을 열어.” 이름난 선배 검사를 상대로 한 수사에 담당 검사가 적극성을 보이지 않는다면? 나아가 수사 책임자가 고소된 검사 선배와 가까운 사이라면? 검찰 출신 전관의 스폰서 의혹이 별일 아니라고 못박았던 ‘수사 책임자’는 윤석열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었다. ‘정치인 윤석열’의 거짓말을 다수 접하면서 ‘국민 검사’ 시절 그의 발언도 되짚어보게 된다.



윤 대통령의 거짓말에는 몇가지 특징이 있다. 도저히 부인할 수 없는 상황인데도 그냥 우긴다. 2022년 9월 미국 순방 기간 욕설이 방송사 마이크에 잡혔고 김은혜 당시 대통령실 홍보수석마저 윤 대통령이 ‘이 ××들’이라고 욕설을 한 사실은 인정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마저도 아니라고 잡아뗐다.



자신이 궁지에 몰리면 거짓말의 강도는 더욱 세진다. 그가 검찰총장 시절이었던 2020년 4월, 자신의 수족이나 다름없는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이 당시 여권 정치인과 언론이 ‘윤석열·김건희·한동훈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야당 정치인에게 고발장을 전달한 ‘고발 사주’ 사건이 1년5개월 뒤에 폭로됐다. 윤석열 당시 대선 후보는 격앙된 표정으로 “출처 없는 괴문서로 국민을 혼돈에 빠뜨리고 있다”고 반발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손준성 검사장(당시 대검 수사정보정책관)만 기소했지만 최근 항소심 법원은 그에게 무죄를 선고하며 “고발장 작성을 지시한 검찰총장 등 상급자가 고발을 기획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대선 과정에서 김건희 여사의 주가조작 의혹이 불거지자 윤 후보는 “집사람은 오히려 손해 보고 그냥 나왔다”며 오히려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국거래소가 이상거래 심리분석을 통해 산정한 김 여사와 어머니 최은순씨의 도이치모터스 주식 거래 수익은 23억원이다.



순간의 위기를 모면하려 거짓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공직자의 거짓말은 다르다. 공적인 거짓말은 그 자체로 가짜 뉴스가 돼 혹세무민하기 때문이다. 이젠 내란 피의자가 된 윤 대통령의 최상급 거짓말이 정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지난달 12일 대국민 담화에서 그는 “질서 유지를 위해 소수의 병력을 잠시 투입한 것이 폭동이란 말이냐” “도대체 2시간짜리 내란이라는 것이 있냐”고 반문했다. 국회가 계엄 해제를 의결하지 못하도록 군 사령관들을 닦달했다는 복수의 증언이 차고 넘치는데도 윤 대통령의 항변은 “체포의 ‘체’ 자도 꺼내지 않았다”(석동현 변호사 전언)는 주장에까지 이르렀다.



보통의 사람은 거짓말을 할 때 시선이 흔들리거나 말끝을 흐린다. 부끄러움을 아는 수오지심의 발현이다. 이런 미세한 흔들림도 없이 거짓말을 해대면 새빨간 거짓말도 진실로 믿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영국 옥스퍼드대학 출판부는 ‘2024년 올해의 단어’로 ‘뇌썩음’(brain rot)을 선정했다. 강력한 거짓말쟁이가 대한민국의 최고 권력을 획득해 2년 반 동안 가장 큰 마이크를 들고 썩은 뇌에서 증식할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생산했다. 비상계엄 선포 뒤 ‘체포 공성전’에서 승리한 그의 손엔 아직 마이크가 들려 있다. 무서운 일이다.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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