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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9 (목)

[설왕설래] 대통령 경호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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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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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죽여야 국가원수를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다.’ 노무현정부의 대통령 경호실이 2006년 8월 발간한 책자 ‘바람소리도 놓치지 않는다’에는 대통령 경호원들의 사생관이 담겨 있다. ‘매일 아침 목욕을 단정히 하고 빗질을 가지런히 하고 속옷을 깨끗하게 갈아입는 것은 최악의 경우 깨끗한 모습으로 내 시신이 수습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대목에선 숙연해진다.

군인이나 경찰은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 무술을 연마하지만, 경호 훈련의 최우선 목적은 대통령 보호다. 대통령을 겨냥한 테러 위험이 감지됐을 때 반격하기에 앞서 자신의 몸을 대통령의 방패로 만드는 훈련을 반복한다. 지난해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를 암살하려는 총탄이 날아왔을 때 비밀경호국 소속 요원들이 반사적으로 트럼프를 에워싸도록 한 그 훈련이다. 경호 훈련을 ‘죽는 훈련’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경호원 가족들은 대통령을 지키기 위해 온몸으로 폭탄을 덮치거나 총칼을 막아내는 경호 시범 훈련을 지켜보면서 눈물을 흘린다고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체포영장 집행에 불응하면서 대통령 경호처 소속 경호원들이 기로에 섰다. 법원이 발부한 체포영장 집행과 경호원의 직업적 소명이라는 상반된 가치가 충돌하는 공간에 갇혀 힘든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이들은 ‘대통령 경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원수의 절대 안전으로 이는 대통령 경호처의 존재 가치’라는 복무 수칙에 따라 윤 대통령 수호를 위한 방어선을 구축했다. 체포영장 1차 집행에 실패한 공수처는 조만간 다시 윤 대통령 체포에 나설 태세다. 경호원들은 자칫 국가원수 경호의 최후 보루라는 명예와 긍지 대신 ‘대통령의 사병’이라는 불명예와 조롱을 뒤집어쓸 수 있는 상황에 놓였다.

16세기 신성로마제국 군대가 로마를 공격했을 때 교황청이 고용한 스위스 근위대는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교황에 대한 ‘충성서약’을 끝까지 지키다 옥쇄했다. 이들의 희생은 스위스 용병의 충성심을 담보하는 신뢰 자산으로 남아 훗날 교황청이 스위스 근위대만 고용하는 관행을 만들어냈다. 윤 대통령에게 충성한 경호원들에게는 어떤 보상이 있나.

조남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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