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욱 화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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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건너온 철조망은 양들이 뾰족한 가시가 박힌 장미 넝쿨을 피해 다닌다는 점에 착안해 만들어진 발명품이다. 각자의 영지를 구분하고 가축을 지키기 위한 목적이었다. 1870년대 미국 일리노이주의 한 농부가 철조망 특허를 내어 큰돈을 번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이 서부 황무지로 영토를 확장하던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철조망이 늘어나는 동안, 원주민인 인디언들은 철조망 바깥으로 밀려나기 일쑤였다. 이들은 철조망을 ‘악마의 끈’이라 불렀다.
이후 철조망은 전쟁에 쓰이기 시작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철조망은 참전국들의 영토를 구분하는 새로운 국경선이나 다름없었다. 참전국들은 참호를 구축하고 철조망을 친 뒤, 적군이 다가오면 기관총 사격으로 막았다. 1916년 프랑스 솜강 유역에서 벌어진 독일군과 영국·프랑스 연합군의 참호전에서 영국군이 돌격을 개시한 첫날에만 6만명에 이르는 사상자가 나왔다. 이날 전투는 ‘철조망 안에서의 대량 학살’이라고 불릴 정도로 잔혹한 결과를 낳았다.
농장의 울타리에서 전장의 무기가 된 철조망은 아우슈비츠 강제노동수용소에서 억압과 폭압을 상징하는 도구가 됐다. 치명적인 전류를 철조망에 흘려보내 수용자들이 탈출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철조망은 냉전과 분단의 상징물이기도 하다. 독일 통일로 무너진 베를린 장벽은 1960년대 철조망과 감시탑, 지뢰밭 등이 포함된 복합적인 구조로 지어졌다. 우리나라에는 군사분계선의 2㎞ 남쪽에 위치한 남방한계선에 철조망이 길게 세워져 있다.
지난 7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로 향하는 도로에 철조망이 설치되어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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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윤석열 대통령은 한남동 관저 안에다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철조망을 쳤다. 지난 3일 경호처를 동원해 체포영장 집행을 저지한 직후의 일이다. 차벽으로는 부족하다 싶었는지, 철조망은 1~3차 저지선마다 설치됐다. 관저 외벽을 둘러싼 철제 울타리 위에도 추가됐다. 윤 대통령은 물리적으로는 철조망, 머릿속으로는 알고리즘의 장막으로 스스로를 가둔 모양새다. 극우 성향 유튜브를 시청하며 자신이 무슨 일을 벌였는지도 모른 채, 관저를 요새화하는 데만 골몰하고 있으니 말이다. 유발 하라리는 ‘넥서스’에서 “21세기에 정치가 분열된다면, 민주주의와 전체주의 사이가 아니라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분열이 될 것”이라고 했다. 국가를 마음대로 쥐고 흔든다고 생각하는 독재자조차 알고리즘이 무엇을 하는지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한 채 그에 종속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경고다.
황보연 논설위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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