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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9 (목)

'기업 집주인' 고소한 미국과 국토부의 이상한 역주행 [마켓톡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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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연 기자]

미국 공정거래위원회(FTC)·법무부는 이른바 '기업 집주인'들이 최근 몇년간 월세를 가파르게 끌어올린 주범이라고 판단하고, 사법처리에 나섰다. 하지만 우리나라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8월 '기업 집주인' 제도 도입을 발표하고, 이를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미국 정부가 '기업 집주인'들을 정조준한 이유를 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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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법무부가 기업 집주인들과 이들에게 월세 책정 소프트웨어를 제공한 리얼페이지에 민사 소송을 제기했다. [사진 |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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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법무부는 7일(현지시간) 8개 주정부와 함께 부동산 임대 소프트웨어 회사인 리얼페이지(Reapage)와 기업형 주택 임대회사 6곳에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알고리즘을 통해서 월세를 불법적으로 인상한 혐의다. 도하 메키 법무부 반독점 당당 차관보 대행은 "사람들은 월세를 감당하느라 고군분투하는데, 기업 집주인들은 월세 관련 민감한 개인정보를 공유하고, 알고리즘을 사용해 월세를 최대한 높게 책정하려고 담합했다"고 비난했다.

법무부가 고소한 '기업 집주인'은 그레이스타(Graystar), 블랙스톤 소속 리브코어(LivCor), 윌로브릿지(Willow Bridge), 캠던(Camden), 피너클(Pinnacle), 쿠시만 앤드 웨이크필드(Cushman & Wakefield)다. 코틀랜드(Cortland)는 법무부와 합의했다. 기업 집주인 6곳은 미국 전역에서 130만 채 이상의 임대주택을 소유하고 있다.

리얼페이지의 월세 불법 인상 문제가 처음 불거진 건 3년 전이다. 비영리언론 프로리퍼블리카는 2022년 '월세가 오른다? 이 회사 알고리즘이 이유일 수 있다'는 기사에서 "리얼페이지는 2016년 이후 일드스타(YieldStar)란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기업형 임대회사들이 최대한의 월세를 책정하고, 쉽게 적용할 수 있게 했다"고 보도했다. 2021년 리얼페이지 홍보 영상에는 당시 부사장이 "아파트 월세가 최근에 14.5%나 올랐는데, 일드스타 소프트웨어가 그 원동력"이라고 자랑하는 모습이 그대로 담겨있었다.

실제로 미국 월세는 폭등을 거듭했다. 미국 전국 평균 월세는 2019년 1149달러에서 2024년 1521달러로 40% 가까이 올랐다(인구조사국). 워싱턴DC의 연 소득 5만 달러 이하 가구 중에서 수입의 절반 이상을 월세로 내는 비율은 2014년 50.0%에서 2024년 65.0%로 상승했다(비영리단체 UPO).

뉴리퍼블릭은 지난해 1월 '미국의 월세 위기가 악화하고 있다'는 기사에서 "월세나 주택담보대출 월 상환액으로 소득의 25% 이상을 쓰면 안 된다는 게 미국인들의 경험적 원칙이었지만, 이제 그런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고 보도했다.

미국 월세 폭등이 전적으로 '기업 집주인' 때문만은 아니다. 고물가와 공급 부족, 저가 공공임대의 실종 등 여러 문제가 혼재한다. 그런데도 미국 정부가 '기업 집주인'을 정조준한 이유는 이들의 진짜 얼굴이 가려져 있어서다.

일례로 미국 최대 민간 임대회사 인비테이션홈스의 무차별 주택 매입 과정에 사모펀드 자금이 개입한 상황이 2022년 알려졌다. 사모펀드 프리티움파트너스는 연수익률 20%를 목표치로 제시해 모집한 10억 달러의 상당 부분을 인비테이션홈스에 투자했고, 기업 집주인은 한 마을의 집을 차례차례 사들이는 방식으로 임대료를 폭등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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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9월 기업 집주인 인비테이션홈스에 4800만달러 합의금을 부과했다. 인비테이션홈스는 지난 2017년 상장했다. [사진 |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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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미국 공정거래위원회(FTC)는 2024년 9월 24일 인비테이션홈스로부터 최소 4800만 달러의 합의금을 받기로 했다. FTC의 합의금은 우리나라 공정거래위원회의 벌금과 유사한 성격이다.

FTC는 인비테이션홈스가 수수료를 대거 부과해 월세를 사실상 인상했고, 광고에는 수수료를 제외한 월세를 표기했으며, 약정된 24시간 유지보수를 몇주씩 끄는 방식으로 지키지 않았고, 보증금 반환율도 39.0%로 전국 평균의 절반에 머물렀으며, 팬데믹 기간에도 불법으로 임차인을 퇴거시켰다고 밝혔다.

미국은 2008년 금융위기에서도 주택담보대출에서 채무자와 채권자의 얼굴이 지워지면서 문제를 겪었다. 금융위기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와 프라임 모기지(우량 주담대)를 MBS(주택저당증권) 형태로 유동화하고, 이를 다시 파생상품으로 만드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발생했다. 비우량 주담대에서만 부실 문제가 생겼지만, 대출을 받거나 해준 사람 모두 누군지 모를 정도로 자본 뻥튀기가 돼 있어 전체가 부실해졌다.

필 엔젤레이드 미 의회 금융위기조사위원장은 2010년 1월 13일 청문회에서 로이드 블랭크페인 골드만삭스 CEO에게 이렇게 말했다.

"골드만삭스는 모기지 기반 채권을 팔아치우고서는 이 채권이 부도 나는 것에 베팅했다. 나한테는 브레이크가 고장 난 차를 팔고서, 구매자의 생명보험을 사들였다는 말처럼 들린다." 얼굴 없는 자금의 위험성을 가장 잘 표현한 말이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eongyeon.han@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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