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난 유럽 지도자들과 달리 ‘신중론’ EU
‘실세’ 건드렸다가 미 정부와 갈등 겪을라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와 유럽연합 국기. AF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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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정치권에 간섭하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에 대해 유럽 지도자들이 줄줄이 비판에 나선 반면 유럽연합(EU)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 2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취임을 앞두고 머스크가 ‘실세’로 떠오른 상황을 의식한 행보로 풀이된다.
유럽연합(EU)의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는 7일(현지시간) 정례 브리핑에서 ‘머스크의 정치 간섭에 대해 유럽 정상들이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EU의 정치적 목소리는 실종됐다’는 지적에 “현재로선 논쟁을 부추기지 않겠다는 게 우리의 정치적 선택”이라고 밝혔다.
내달 치러지는 독일 총선을 앞두고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을 공개 지지해온 머스크는 9일 AfD 총리 후보 알리스 바이들과 대담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엑스(옛 트위터)에서 생중계하겠다고 밝혀 논란을 키웠다. 독일, 영국 정치권을 가리지 않는 머스크의 입김이 점차 심해지자 유럽 지도자들은 EU 집행위에 머스크를 통제하기 위한 법적 권한을 동원할 것을 요구했다.
집행위는 그러나 머스크가 AfD 총리 후보와 대담을 생중계하는 일은 법에 어긋나지 않으며, 머스크는 온·오프라인에서 정치적 견해를 표현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대신 2023년 12월부터 엑스를 상대로 진행 중인 디지털서비스법(DSA) 위반 조사의 한 사례로 포함할지 신중히 고려하겠다고 덧붙였다.
DSA는 SNS 등 온라인 플랫폼에서 허위정보 및 불법 콘텐츠가 유통되는 것을 막기 위한 규제 법이다. EU 내 이용자가 월 4500만명이 넘는 대형 플랫폼을 대상으로 2023년 8월부터 시행됐다. 법을 어기면 연간 글로벌 수익의 최대 6% 수준인 과징금이 부과되며 최악의 경우 유럽 시장에서 퇴출당할 수 있다.
EU 집행위 기술주권 담당 대변인은 ‘1년 넘도록 엑스를 대상으로 한 DSA 조사에 진척이 없는 이유가 뭔가’라는 질의에는 “(위법을 판단할) 증거를 수집해야 하며 집행위는 가능한 한 신속하게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답했다. 전날 정례브리핑에서도 집행위 측은 머스크 언행에 대한 대응 계획을 묻는 질의에 원론적 답변만 되풀이했다.
9일(현지시간)로 예정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와 독일 극우 정당 ‘독일인을 위한 대안(AfD)’의 총리 후보 알리스 바이들의 온라인 대담을 홍보하는 게시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엑스(옛 트위터) 갈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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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EU 집행위 태도를 두고 최근 프랑스, 독일을 비롯한 EU 회원국은 물론 영국과 노르웨이 등 유럽 각국 지도자들이 일제히 머스크를 비판하며 날을 세운 것과 대조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중도 우파 성향인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조차 전날 “세계 최대 SNS 소유주가 새로운 국제 반동 운동을 지원하고, 독일 선거 등에 직접 개입할 것이라고 10년 전만 해도 누가 상상이나 했겠나”라고 지적했다.
EU 집행위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머스크를 향해 가짜뉴스를 퍼뜨리지 말라고 공개적으로 경고하는 등 각을 세워왔는데, 머스크가 곧 출범하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실세’로 떠오른 상황을 우려해 소극적인 태도로 돌아섰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집행위가 머스크나 엑스를 상대로 DSA 잣대를 들이대 과징금을 부과하면 곧 미 행정부와의 갈등으로 번질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EU 집행위는 미 대선을 앞둔 지난해 8월 머스크가 트럼프 당시 공화당 대선후보와 온라인 대담을 예고하자 DSA법을 위반하지 말라는 경고 서한을 전달했다가 갈등을 빚기도 했다. 당시 머스크는 “엿이나 먹어라”는 글을 올리며 격한 반응을 보였고, 트럼프 선거캠프도 EU를 향해 “언론 자유의 적”이라고 맹비난했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 유럽판은 “EU 집행위는 머스크의 행동에 대응하라는 (회원국의) 압력에 직면했다”면서도 “대형 기술 재벌을 상대로 법적 조처를 하는 일 자체만으로도 아주 까다로운데, 머스크가 13일 뒤면 트럼프 2기 행정부 정부효율부 수장으로 오른다는 사실이 EU의 고민을 키우고 있다”고 짚었다.
트럼프 당선인은 이날 플로리다주 마러라고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머스크의 행보가 적절하냐는 질문에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머스크가 아주 잘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머스크를 “아주 똑똑한 사람”이라고 추켜세웠다.
김희진 기자 h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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