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가 그린란드 등을 미국령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을 돈로 독트린으로 풍자하는 뉴욕포스트의 8일자 만평. 뉴욕포스트 누리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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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로 독트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그린란드와 파나마운하를 미국령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을 거듭하자 8일(현지시각) 미국 뉴욕포스트가 1면에 실은 트럼프의 대외정책 명칭이다. 1823년 미국 5대 대통령 제임스 먼로가 천명했던 먼로 독트린을 빗댄 것으로, 이는 ‘유럽과 아메리카는 서로 간섭하지 말자’는 내용의 대외정책이었다. 유럽의 추가 팽창을 막으려는 취지가 있었지만, 아메리카 서반구는 미국 세력권이라는 뜻으로도 받아들여졌다.
트럼프가 지난 7일 대통령 당선 이후 두번째 기자회견에서 그린란드와 파나마운하를 되찾거나 획득하기 위해 군사력 사용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밝히면서 동맹국 사이에서도 우려와 반발이 커지고 있다.
당장 유럽 국가들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7일 “국경 불가침 원칙은 매우 작은 나라든 매우 강력한 나라든, 그것이 동쪽이 됐건 서쪽이 됐건 모든 나라에 적용된다”고 우려했다. 유럽의 ‘동쪽’인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와 ‘서쪽’ 그린란드에 눈독을 들이는 트럼프의 미국을 나란히 놓고 비교한 것이다. 장노엘 바로 프랑스 외교장관도 “미국이 그린란드를 침략할 거냐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아니’다”라면서도 “적자생존의 법칙이 통용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강자의 법칙이 승리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각성하고, 우리 힘을 구축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이 반발하는 배경에는 그린란드가 덴마크령이며, 덴마크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이라는 점도 작용한다.
트럼프는 7일 기자회견에서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로 만들고 멕시코만의 명칭을 ‘아메리카만’으로 바꾸자는 등 북미 대륙 전체를 미국화하겠다는 식의 주장을 거듭 제기했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비서실장을 보좌했던 알렉산더 그레이는 “트럼프가 하려는 것은 서반구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고, 열강으로부터 지키자는 것”이라며 “우리의 첫번째 우선순위가 서반구 방위이고 중국과 러시아가 우리 뒷마당으로 오고 있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서반구는 본초자오선의 서쪽 반구를 말하는데 아메리카 대륙을 포함해 유럽과 아프리카 서쪽 일부 등을 포함한다. 트럼프는 파나마운하는 “우리 군을 위해 만들어졌다”며 “우리는 파나마운하를 파나마에 줬지, 중국에 준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파나마운하 양쪽에 있는 항구가 홍콩 회사에 의해 운영되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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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대륙이 미국의 세력권이고 이곳을 대외정책의 1순위로 놓아야 한다는 것은 공화당의 전통보수 세력이 1980년대까지 견지하던 사고였다. 이후 미국이 중동을 대외정책의 우선순위로 놓으면서 서반구 우선주의는 퇴색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미국의 전세계적 개입 축소를 내건 트럼프가 등장하자 서반구 우선주의에 입각한 공격적인 팽창주의가 부활하는 모습이다. 파나마와 그린란드 등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진출을 막고, 아메리카 대륙을 미국의 성채로 다시 만들어야 한다는 ‘고립적 팽창주의’이기도 하다. 문제는 현재 트럼프의 위협적 발언들이 중·러 ‘견제용’ 접근이라고 해도 현대 국제질서에서 정당화될 수 없다는 점이다.
트럼프가 강제적으로 그린란드 등을 획득하고,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로 만드는 일은 가능하지도 않다. 다만 이런 협박을 통해 트럼프가 원하는 바를 최대한 뽑아내려고 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파나마운하는 그 운영을 맡는 방식으로 사실상 접수하려 하고, 그린란드에서는 자원 개발과 군사 기지 확대 등으로 미국의 세력을 확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린란드의 경우 태평양 섬 국가들과 맺은 ‘자유연합협정’ 등의 방식으로 명목상 주권을 남겨두면서 실질적으로 미국이 군사·경제적 편입을 노릴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트럼프의 아메리카 우선주의는 미국의 세력이 쇠퇴하는 데 대한 대응이라는 지적도 있다. 전세계에 걸친 미국의 개입이 힘겨워지자, 전통적인 세력권을 재확립하려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동맹, 특히 유럽의 동맹국들로서는 미국과 유럽을 하나로 묶던 대서양주의뿐만 아니라 미국이 표방하던 ‘침략주의와 식민주의의 반대’라는 원칙조차도 저버리는 현실에 경악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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