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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0 (금)

[데스크칼럼]우리가 보지 못하는 사고 원인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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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원종태 산업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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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기 사고는 2가지 이상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한다. 그러니 각각의 원인들이 어떻게 연쇄 작용을 일으키며 사고의 최종 행위를 만들었는지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들여다봐야 한다.

전 세계에서 운항하는 여객기는 ADS-B(Automatic Dependent Surveillance-Broadcast, 전파 기반 항공기 위치 탐지시스템) 로 항로 추적이 가능하다.

제주항공 무안공항 사고 여객기(JC2216 편)도 ADS-B를 통한 항로가 플라이트레이더 24(Flighttrader 24) 같은 항공 전문 사이트에 공개돼 있다. 이곳에서 사고 여객기의 동체 착륙 직전 고도와 하강률(Vertical Speed) 데이터를 초 단위로 볼 수 있다.

전문가들이 이 ADS-B를 분석한 결과 사고 여객기는 지난해 12월 29일 오전 8시58분00초를 전후해 새 떼와 충돌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전까지 해당 여객기 고도와 하강률은 정상 흐름을 보이다가 이 시점에 '이상 조짐'이 감지됐기 때문이다.

이어 오전 8시58분15초에서 8시58분20초 사이에 해당 여객기는 복행(Go-Around, 고어라운드)에 나선다. 복행은 항공기가 완전히 착륙하지 않고, 착륙 전에 다시 상승하는 것을 말한다.

문제는 사고 여객기가 복행을 시도할 때 이미 고도가 500피트(150m) 수준까지 떨어진 상태였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조종사들은 1000피트(300m) 이하 고도에서는 특별한 비상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무리하게 복행하지 않고, 그대로 착륙하는 것을 불문율처럼 여긴다고 한다. 이처럼 낮은 고도에선 무리한 복행보다 그대로 착륙해 지상의 도움을 받는 것이 유리할 수 있어서다.

이 점을 감안해 가정하면 사고 여객기는 오전 8시58분00초 전후에 엔진 이상을 발견한 뒤 1번 활주로를 통해 그대로 착륙하는 것이 나았을 수 있다. 하지만 해당 여객기는 그렇게 하지 않았고 결국 복행했다.

복행 당시 비행 고도는 500피트 직전이었다. 전문가들은 이렇게 낮은 고도에서 왜 착륙하지 않고, 복행할 수밖에 없었는지, 이 의문의 대답이 사고의 결정적 원인이라고 진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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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리지 않는 원인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500피트 이하 낮은 고도에서 복행이 좌절되자 해당 여객기는 '180도 백(Back)'으로 불리는 '급선회'를 감행한다.

통상 180도 백은 플랩(Flap, 항공기 이착륙 보조 조종장치)와 랜딩기어(Landing Gear, 비행기 바퀴 등 이착륙 장치)를 이미 착륙 상황에 맞춰 놓은 상태에서 이를 다시 되돌려야 하기 때문에 여간 쉽지 않은 작동으로 꼽힌다.

그러니까 해당 여객기가 고도 500피트 전후에서 복행을 시도하다가 180도 백까지 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 비행이다.

만약 착륙을 위해 플랩을 15도 늘리고, 랜딩기어까지 올린 상태였다면 이는 더더욱 위급한 상황이 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이런 복행과 급선회 원인을 찾는 것 역시 중요한 사고 원인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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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 관리 측면에서 조종사가 비행할 때 가장 높은 수준을 '예측적 수준(Redictive Level)'이라고 한다.

전직 기장인 김동현 씨가 쓴 책 '플레인센스'에 따르면 예측적 수준의 조종사는 프로 스포츠 선수가 경기 흐름을 미리 읽고 공이 있을 곳에 가있는 것과 견줄 수 있다.

상대 팀 전략과 선수들 특성을 파악해 프로 선수가 예측 플레이를 하는 것처럼 조종사도 기상이나 항로 상황, 여객기 상태에 대한 정보를 미리 분석해 벌어질 상황을 예측하고 대비하는 것이 바로 예측적 수준이다.

경험 많은 기장들은 이륙 전 주요 항로의 날씨 뿐 아니라 공역(여객기가 이동하는 지구 표면 상의 구역과 고도로 정해진 공중 영역)의 상황까지도 분석한다고 한다.

특히 조종사는 예측할 수 없는 돌발 상황에 즉각적인 대응 능력을 갖추는 것이 필수다. 이런 대응 능력을 유지하고 높이기 위해 조종사들은 1년에 2번씩 시뮬레이터 심사를 통해 비상 상황 대비 훈련을 한다.

이 시뮬레이터 심사에서 불합격을 받으면 해당 조종사는 즉시 항공 업무에서 배제되고, 두번째 심사에서도 통과하지 못하면 조종사 자격을 잃고 파면된다.

그러나 일부에선 이 심사가 과연 기장들의 비상 상황 대응 능력을 얼마나 발전시켜주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일부 조종사들은 시뮬레이터 심사가 대부분 기장과 부기장이 마치 약속 대련을 하는 것처럼 정해진 순서로 이뤄질 때가 많다고 한다. 시뮬레이터 심사 자체가 워낙 복잡해 체크리스트 암기와 반복에 치우치는 경향이 있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형식적인 내용들은 배제하고 조종사들이 실전에서 꼭 필요한 능력 위주로 심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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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에선 눈에 보이지 않는 조종사들의 '타임 프레셔(시간의 압박)'까지 따져봐야 한다고 진단한다.

단적으로 지난해 1~11월 제주항공 여객기 운항 편수는 4만7026편으로 소속 조종사 670명으로 나눠보면 1명당 70.1편꼴로 운항했다.

이는 대한항공 27.3편, 아시아나항공 35.2편에 비해 크게 높은 것이다. 또 다른 저비용 항공사인 티웨이항공 46.2편, 진에어 57.2편에 비해 타이트한 스케줄이 아닐 수 없다.

이 같은 타임 프레셔는 당연히 조종사들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압박이 될 수 있다. 지난해 12월초 마감한 국내 한 저비용 항공사의 경력 조종사 채용에 제주항공 조종사들도 대거 지원했다는 점은 곱씹어 볼 대목이다.

JC2216 여객기의 사고 원인 조사는 기체·기술·정비 결함 같은 표면적 원인 외에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원인들도 파악해야 한다. 무엇보다 조종사들의 타임 프레셔가 어느 정도인지 이참에 반드시 짚고 가야 한다. 정부는 현직 조종사들을 더 많이 만나야 한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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