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양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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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을 보고 대화 내용을 파악하는 독순술(讀脣術)은 청각 장애인의 소통법이지만 범죄 수사와 첩보 수집 등에도 활용된다. 몇 해 전 직장 동료 간 폭행 사건이 벌어졌는데 가해자는 때린 사실만 인정하고 때린 이유는 함구했다. 경찰은 폭행 현장을 녹화한 승용차 블랙박스를 찾아냈다. 독순술 전문가에게 보여주고 가해자가 “누가 신고했어?”라고 말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보복 범죄로 구속했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SF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등장하는 인공지능 ‘할’은 우주선에 함께 탑승한 승무원들이 밀실에서 나누는 대화를 창밖에서 ‘엿보고’ 내용을 파악한다. 대화가 자신을 제거하려는 작전 모의란 사실을 알아내자 ‘할’은 승무원들을 먼저 살해한다. 영화 ‘미션임파서블3′나 엘러리 퀸의 추리소설 ‘Y의 비극’에서도 독순술이 이야기를 끌어가는 주된 요소로 쓰였다.
▶독순술로 대화 전모를 파악하는 것이 현실적으론 쉽지 않다. 2006년 월드컵 때 프랑스 축구 선수 지단이 이탈리아 선수 마테라치의 가슴을 시합 중 머리로 들이받았다. 마테라치가 뭐라 했기에 지단이 폭력을 썼는지 궁금증을 풀기 위해 독순술가들이 나섰고 “마테라치가 지단의 누이를 매춘부라 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나중에 마테라치가 공개한 자초지종은 사뭇 달랐다. 몸싸움 중에 유니폼을 붙잡는 마테라치에게 지단이 “경기 끝나고 준다”고 했고 마테라치가 “옷보다 네 누이가 좋다”고 한 게 화근이었다.
▶독순술가들은 유럽 언어보다 한국어 ‘해독’이 더 어렵다고 한다. ‘ㅁ’ ‘ㅂ’ ‘ㅍ’처럼 발음할 때 입 모양이 같거나 ‘ㄱ’ ‘ㄲ’ ‘ㅋ’처럼 입안에서 발음이 만들어져 눈으로는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몇 해 전 문재인 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도보다리에서 밀담을 나눴을 때 독순술가들이 대화 내용 파악을 시도했지만 ‘핵시설’ ‘트럼프’ ‘미국’ 같은 단어를 썼다는 사실 정도만 유추할 수 있었다.
[김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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