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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미국 주식은 너무 비싸다.’
2025년 1월 현재 글로벌 자산 운용가들이 공유하고 있는 생각이다. 13일(현지시각) 파이낸셜타임스(FT)는 현재 미국 주식의 가치가 지나치게 높아져 있다는 이유로 운용사들이 고객에게 위험 자산보다는 채권 등 상대적 안전 자산 쪽으로 ‘방어 투자’를 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른바 ‘주식 60 대 채권 40’이라는 포트폴리오의 구성을 뒤집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뉴욕 증시를 대표하는 스탠다드앤푸어스(S&P) 500 지수의 주가수익비율(PER·주가를 주당순이익으로 나눈 값)은 약 2년 전인 2022년 9월 19.2배에서 1월 현재 30배까지 올랐다.
미국 주식 줄이고 채권 늘려라
국내 증권사들도 비슷하게 선진국, 곧 미국 주식의 비중을 줄이고, 채권 비중을 늘리라는 자산배분 전략을 내놓고 있다. 박소연 신영증권 연구원은 “올해 미국 주식은 줄이고 채권을 늘리는 전략을 권한다”며 “선진국 주식 비율은 5로 줄이고, 채권에는 3, 대체투자에 2를 배분하기를 추천한다”고 했다.
시장 분석가들이 이러한 조언을 하는 배경에는 너무 높아진 미국 주식 가격, 그리고 채권 금리 상승(가격 하락)이 있다. 예컨대 지난 2년여 동안 S&P 500 지수는 연간 20% 넘는 수익률을 올리고 있다. 기술주 중심의 미 나스닥 지수는 지난해 연간 수익률 28.6%,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는 수익률이 12.9%였다. 지난해 11월 미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승리하고, 미 공화당이 의회 다수당 지위를 차지하면서 주식 시장에 재차 강세장이 연출됐으나, 앞으로는 하락장에 들어설 것이라는 게 다수 전문가의 전망이다. 이런 상황에서 채권 금리는 심리적 저항선으로 여겨지는 연 5%에 가까워졌다. 주식과 채권의 기대 수익률에 큰 차이가 없어지게 됐다.
박 연구원은 “주가가 이렇게 올랐던 경우가 2000년 정보기술(IT) 버블, 2020년 코로나 버블 시기를 제외하면 없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며 “주요 20개국의 경제 전망을 나타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경기선행지수(CLI)로 따지면 미 경기는 2022년 10월이 저점이었다. 이번달 1월까지면 27개월째 확장인데, 경기가 30개월 이상 확장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했다. 채권과 주식의 기대 수익률에 큰 차이가 없는 상황에서 특정 종목의 주당순이익(EPS·순이익을 총 주식수로 나눈 값)이 늘어나는 게 눈에 띄게 보이지 않는 이상 “발을 빼는 게 맞다”는 얘기다.
하재석 엔에이치(NH)투자증권 연구원도 지난 2일 보고서에서 “당분간은 미국 주식에 대한 리스크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며, 매수를 고려하는 투자자라면 연초를 피하는 게 현명하다”고 했다.
트럼프 행정부 인플레, 미 금리인하 속도도절도 우려
이뿐 아니라 단 며칠 뒤면 미국에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들어서는데, 관세 부과 등 새 정부가 추진할 정책에 대한 불확실성이 벌써부터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을 자극하고 있다. 지난해 9월 통화정책 기조를 전환한 미 연방준비제도(Fed)는 견조한 고용 상황과 물가 상승 우려를 이유로 벌써 금리인하 속도 조절에 들어갔다. 금리가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 기업의 자금 조달 비용이 늘어 수익성이 악화되고 이는 주가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박석중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향후 1∼2개월 동안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정책 불확실성 등을 고려하고 미 연준의 통화정책 경로 변화를 소화하면서 주식에서 채권을 늘리거나, 원유, 천연가스 등 대체자산 쪽으로 비중을 늘리는 것이 합리적으로 보인다”며 “다만 당장 추세적으로 (미 증시가) 약세로 전환되는 조정 국면은 아니어서 급격한 포지션변화를 가져가긴 이르다”고 했다.
서학개미 새해 첫 열흘 미 주식 31억달러↓, 채권 3억달러↑
이른바 ‘서학개미’들은 벌써부터 움직이는 모양새다. 실제로 새해 첫 열흘 동안 국내 투자자가 한국예탁결제원에 맡긴 미국 주식 예탁액이 31억달러(약 4조6천억원)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채권 예탁액은 3억달러(약 4542억원) 늘어났다. 주식 예탁액 감소는 주로 보유주식의 주가 하락에 따른 것이라 본격적인 미국 증시 철수는 아니다. 채권 예탁액 증가는 순매수를 늘린 까닭으로 보인다.
한국예탁결제원의 증권정보포털 세이브로(SEIBRO) 집계를 보면, 예탁결제원이 서학개미들의 예탁을 받아 보관중인 미국 주식은 10일 기준 1089억6천만달러(약 160조5천억원)어치다. 이는 지난해 연말 1121억달러에 견줘 31억4천만(약 4조6천억원)달러 가량 감소한 것이다.
10일 기준 서학개미들의 채권 보관액은 116억1천만달러(약 17조1천억원)어치로 연말(113억달러)에 견줘 3억1천만달러(약 4542억원) 늘었다. 채권은 가격 변동이 크지 않은 까닭에, 보관액 증가는 채권 순매수를 늘린 것으로 해석된다.
미국 주식 보관액의 감소는 서학개미들이 많이 보유하고 있는 기술주들의 주가 하락이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연말 245억달러어치를 보유해 보관액이 가장 많았던 테슬라는 열흘 동안 보관액이 9억9천만달러(4.0%) 가량 줄었다. 이 기간동안 테슬라 주가는 9.8% 하락했다. 서학개미들이 주가가 큰폭으로 떨어지자 순매수를 했을 가능성이 크다.
서학개미들의 미국 주식 보관액은 지난해 5∼7월, 11∼12월 사이 큰 폭으로 늘었다. 채권 보관액은 주식의 10분의 1 수준에 머물긴 하지만, 서학개미들이 주식 보유가 크게 늘지 않을 때는 채권 보유액이 늘어나는 흐름을 보여왔다. 지난해 12월에는 주식 보관액이 59억6천만달러 늘고 채권 보관액이 3억달러 줄었는데, 1월 들어 첫 열흘간은 주식 보관액이 줄고 채권 보관액이 늘어났다.
노지원 기자 zone@hani.co.kr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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