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2차 집행이 임박했다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14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에서 경호처 직원으로 추정되는 직원이 경내를 순찰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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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정 |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저는 부끄럽게도 전직 국가주의자입니다. 군대를 모두가 가야 한다고 생각하던 때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게 얼마나 끔찍한 생각인지 압니다. 국가의 폭력이란 물리적 폭력과 부조리만이 아니지 않습니까. 위계와 복종과 무력감과 폭력과 냉소를 내면화하는 일, 이것이 국가가 군인 개인에게 가하는 폭력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것이 결국 국가 전체를 물들였습니다. 국가가 시민에게 폭력을 가하는 세태입니다.” 1월10일 금요일 저녁, 경북 구미 한국옵티칼하이테크의 불탄 공장 앞에서 한 시민이 마이크를 쥐고 말했다. 30대 논바이너리 시민이자 현직 직장인, 전직 직업군인이었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은 “가장 추운 날,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켰던 그날이 내 생을 바꿀 것”이라고 발언했다. 외국 자본 닛토덴코의 고용승계를 요구하는 소현숙, 박정혜 노동자는 “그동안 우리는 생산성을 채우는 기계처럼 살았다”며 1년 넘은 고공시위의 이유를 짚었다.
탄핵 광장은 윤석열이 일으킨 12·3 비상계엄 사태를 용납할 수 없는 민주주의 사회 시민들의 집회지만, 광장에는 윤석열 이야기만 있지 않다. 지난 토요일 광화문 동십자각 무대에서 어느 자유발언자는 가방으로 얼굴을 가린 채 공무원인 자신이 현 국가의 행태에 출근해야 할지, 퇴사해야 할지 고민된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자유발언자는 부친이 학벌 좋은 고학력자인데 부정선거를 굳게 믿는 열혈 유튜브 시청자라며 자신의 역할을 고민했다.
광장의 자유발언에 다들 집중하는 이유는 다양한 정체성으로 스스로를 소개하는 ‘이반’들의 자기 고백, 각자 자리에서 어떤 ‘이반’을 감행하고 있는지 들려주는 이야기들이 마음에 깊이 와닿기 때문이다. 이반은 이성애자를 ‘일반’이라고 하는 것에 빗대, 이성애중심주의 같은 기존 질서를 이탈한 이들을 지칭한다. 또 이반은 ‘민심 이반’처럼 마음이 떠나버리거나 등지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광장에 열심히 나가는 20대 여성 수민은 이렇게 말했다. “살다 보면 내가 이거 왜 하고 있지, 하는 회의감이 많이 드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언하고 활동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거잖아요. 그리고 그분들이 내가 느끼는 사회의 어떤 문제점 개선을 위해 이제까지 활동해오셨던 거고. 그래서 힘을 많이 받아요. 그냥 가만히만 있으면 안 되겠다고. 뭐라도 행동하려고 해요. 시위에 참여하는 많은 사람들이 본인의 힘듦이 다 있을 텐데, 각자의 싸움을 하면서 여기 왔다는 걸 아니까. 서로 그걸 안다는 것이 주는 위로와 치유가 있어요.” 응원봉을 든 시민은 ‘이반한 자’로서 ‘이반’을 알아보고, 오랜 저항의 자리를 찾아간다. 조선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천막,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지하철 출근길 선전전, 배달 라이더들의 시위와 캠페인에 연대한다.
윤석열은 이렇게 이반하는 시민들의 대척점에 있다. 남북 분단 상황을 악용하고 반공이데올로기를 부추기고, 자신 외에는 국가를 위험하게 하는 세력이라고 규정한다. 내란을 획책하고도 정당한 통치행위라고 우기더니, 지금은 체포되지 않으려고 경호처 직원들을 사병처럼 앞세운다. 체포영장이 발부되고도 관저를 가로막아둔 버스, 진을 친 경비대를 보며 시민들은 아연실색한 채 불면에 시달리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경호처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이번 사태 이전에도 언론 지상에 오르내렸다. 한 대학교 졸업식장에서, 어느 행사장에서 대통령에게 어떤 의견을 말하려고 하자 번개처럼 달려가 그의 입을 틀어막고 팔의 관절을 꺾어 잡고 오금을 눌러 뒤로 당겼다. 현재 대통령 경호처 직원들은 대통령이라는 권세와 권력을 아무도 방해하지 않도록, 그의 뜻과 의지를 철저히 수호하도록, 그의 신체를 가장 자유로운 상태로 두도록 훈련받았을 것이다.
특정인을 무소불위의 상태로 두기 위해 큰 위험을 떠안아야 할 때 인간은 어떤 시간을 보내게 될까? 2차 체포영장 집행을 앞두고 경호처 강경파는 소총과 실탄을 지급하거나, 칼을 어떤 때 어떻게 쓰라고 지시하고 있을지 모른다. 경호처 직원 개개인은 공무집행 방해라는 법 위반의 위험을 자신의 등 뒤에 짊어지고 있다. 통제받지 않는 권력이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시도를 가장 가까이에서 보고 있을 경호처 직원들에게 이제는 떠날 때라고 꼭 말해주고 싶다. 스스로와 타인을 살리는 ‘이반’을 할 시간, ‘이반’이 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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