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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0 (월)

[MT시평]민주주의는 왜 자멸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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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구민교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




"기억하라, 민주주의는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자신을 곧 소모하고, 탈진하며, 파멸시킨다. 자멸하지 않은 민주주의는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다."(Remember, democracy never lasts long. It soon wastes, exhausts, and murders itself. There never was a democracy yet that did not commit suicide.)

미국 제2대 대통령 존 애덤스가 자정능력과 복원력을 상실한 민주주의에 대해 내놓은 비관적 전망이다.

남 얘기가 아니다. 현직 대통령은 부정선거 의혹 해소와 반국가세력 척결을 명분으로 비상계엄을 발동하면서 메마른 정치판에 불씨를 댕겼고 더불어민주당은 탄핵을 넘어 내란죄와 외환죄의 광풍을 불러일으켰다. 불씨와 바람이 만나면 불길이 번지는 건 자연스러운 이치다. 수사권 논란에도 불구하고 현직 대통령 체포를 강행하려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무리수는 타오르는 불길에 기름을 부었다. 정치판의 극한 대립이 '민주화 이후'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공든 탑을 한순간에 무너뜨릴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엄습한다.

더 늦기 전에 현행 '1987년 헌법'이 잉태한 권력구조의 내재적 모순과 흠결을 바로잡아야 한다. 현행 헌법은 유신헌법과 5공화국 헌법의 부정적 유산이던 대통령의 비상조치권과 국회 해산권을 폐지하고 국회의 국정감사권을 부활하면서 입법부의 대통령과 행정부에 대한 견제와 감시기능을 강화했다. 지난 40여년 동안 정치적 갈등과 위기가 끊임없이 발생했지만 정권교체와 삼권분립의 틀 안에서 문제를 그럭저럭 해결했다.

그러나 지금 누적된 문제가 봇물 터지듯 쏟아져나온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통해 국회의 정치활동을 금지하려던 시도나 탄핵 및 형사소추로 그 대통령을 끌어내리려는 거대야당의 공세는 한국 민주주의의 퇴행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민주당은 탄핵과 고소·고발 남발만으론 부족했는지 급기야 '카톡(카카오톡) 계엄령'까지 꺼내들었다. 더 놀라운 것은 우리 민주주의에 이러한 과잉을 견제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없다는 사실이다. 그 학습효과 덕택에 미래 다수당도 유사한 행태를 보일 가능성이 크다.

4년 중임제 대통령제나 내각제에 대한 숙고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나 여야는 물론 대다수 국민의 동의를 얻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엄격한 제한을 두는 것을 전제로 대통령의 국회 해산권을 부활하는 원포인트 개헌이 더 현실적이다. 과거 "민주주의의 퇴행"이라는 비판 속에 논의 자체가 금기시됐지만 국회 해산권은 다수당의 독주를 견제할 유력한 헌법 수단이다.

우리 민주주의가 자멸하기 전까지 얼마나 시간이 남았을까. 설마 하면서도 불안감 때문에 자꾸 마음이 급해진다. 물론 견제와 균형이 단순히 권한의 재분배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정치문화가 선진화하고 협치의 관행이 정착되면 굳이 헌법 탓을 하지 않아도 된다. 불행히도 지금의 '너 죽고 나 살자'식의 정치문화는 쉽게 바뀌지 않을 전망이다. 결국 국회가 결자해지하지 못하면 국민이 나설 수밖에 없다.

구민교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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