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상훈(성균관대 교육학과, 교무처장) |
지금 우리가 누리는 풍요는 거저 생긴 게 아니다. 어려웠던 시절 가난에서 벗어나겠다는 굳은 의지와 슬기로운 대처가 있었기에 열매를 맺을 수 있었다. 어머니, 아버지 세대가 보여준 희생과 헌신 덕분에 자녀 세대는 과거보다 나은 삶을 누리는 것이다. 우리는 역경, 헌신과 노력, 발전과 희망이 교차한 그 시절을 '개발 시대' 또는 '산업화 시대'라고 말한다.
개발 시대엔 그에 맞는 전략이 필요했다. 개인보다 조직을 우선하고 불편해도 참는 게 미덕이었다. 다양함보다 표준제품을 만들어 빠르게 납품하는 것이 경쟁력을 높이고 압축성장을 달성하는 비결임을 알고 있었다. 개성과 창의를 존중하는 '개개인성(individuality) 원칙'은 비용과 속도를 중시하는 '효율성(efficiency) 원칙' 앞에 무시된 것도 사실이다. 그야말로 소품종 대량생산과 속도전 시대였다.
고등교육도 개발 시대를 겪었다. 대학에 맡겨진 주된 책무는 소수 엘리트를 받아들여 산업역군, 과학기술인재, 유능한 행정가, 정치지도자로 키워내는 것이었다. 소수를 대상으로 선진국에서 발전한 지식과 기술을 효과적으로 전수하고 사회지도자로서 필요한 덕목과 교양을 갖추도록 돕는 곳이 대학이었다. 교수와 칠판, 책상이 있는 교실만 있으면 대학 구실을 했다.
대학도 다르지 않다. 개발 시대 고등교육을 끝내고 선진화한 대학으로 변해야 한다. 소수 엘리트 교육을 넘어 누구나 대학에 진학해 인재로 성장하는 '고등교육 대중화' 시대가 됐기 때문이다. 선진 대학은 공급자 중심에서 벗어나 모든 학생의 성공(Student success)을 최고 가치에 두는 학생 중심 대학이다. 미국의 잘 가르치는 대학을 연구한 조지 쿠에 따르면 학생의 성공을 추구하는 대학들의 공통점은 학생에게 다양한 대학경험(college experiences)을 제공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전공수업뿐만 아니라 진로탐색, 정신건강, 글로벌 활동, 창업기회, 스포츠 활동, 봉사와 리더십 프로그램을 포함해 다양한 성장기회를 제공한다고 한다. 학생 한 명 한 명이 인재가 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획일적 붕어빵 교육이 아닌 개인별 맞춤형 교육을 제공하는 것도 잘 가르치는 대학의 특징이다.
요즘 대학가에선 등록금 인상이 화두다. 정부는 국가장학금을 대폭 확대하면서 돈이 없어 공부를 못하는 학생이 없게 하겠다고 했다. 문제는 교육과 연구의 허브로서 대학의 경쟁력이다. 대학의 자구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16년째 묶인 등록금으로 미래인재를 길러내는 최고의 교육과 첨단 연구환경을 제공할 수 있을까. 이제 개발 시대 대학을 끝낼 때다. 정치문제가 아니다. 내 자식과 나라의 미래가 걸린 문제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교무처장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