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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4 (금)

정부도 국회도 방치한 쓸모 없는 '규제 대못' [視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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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원 기자]

규제는 양날의 검이다. 완화를 주장하는 이들에게 규제는 '대못'과 같다. 규제 강화를 부르짖는 이들에겐 최소한의 '안전망'이다. 이 때문에 규제 완화와 강화는 섣불리 선택할 문제가 아니다. 장기적인 숙의 절차와 논쟁이 필요하다. 다만, 시대상에 맞게 반드시 풀어야 할 규제도 있다. 22대 국회에서도 규제 완화를 다룬 무쟁점법안이 숱하게 발의됐다. 문제는 논의 자체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외국인 근로가 고용허가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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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를 혁파하겠다." 역대 정부는 '규제 개혁'을 외쳐왔지만, 지금까지 성과가 크지 않았다. 여전히 기업 활동은 규제에 발목이 묶여 있는 게 현실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23년 발표한 '상품시장규제지수(PMR)' 평가에서 한국은 38개국 중 20위(종합순위)를 차지했다.

언뜻 괜찮은 성적표 같지만 면면을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 '기업활동 개입' 부문에선 36위를 차지해 꼴찌를 겨우 면했고, '무역·투자 장벽' 역시 36위에 머물렀다. PMR 순위가 낮을수록 규제 강도가 강하다는 의미다.

이 때문인지 국회가 나서 규제완화 입법을 추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물론 기업들이 완화를 요구하는 '중대재해처벌법 등 안전규제(43.3%·한국경영자총협회·2024년)' '주 52시간 등 근로시간 규제(35.5%)' '최저임금제도(21.0%)' 등은 숙의와 토론이 필요하다.

하지만 여야가 사실상 똑같은 것을 주장한 '무쟁점법안'은 논의 절차에 속도를 붙여야 한다. '외국인 고용허가제도 개선 법안' '입법영향분석제도 도입 법안' '기회발전특구 지원 확대 법안' 등이다. 하나씩 살펴보자.

■ 무쟁점법안➎ 외국인 고용허가제 = 저출산·고령화로 생산인구가 감소하면서 외국인 근로자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정부는 이런 상황을 반영해 2004년부터 '외국인 근로자 고용허가제(E-9)'를 운영하고 있다.

이 제도의 골자는 내국인 근로자를 구하지 못한 사업장이 정부의 허가를 받아 외국인을 고용할 수 있도록 하는 거다. 이를 발판으로 2021년까지 5만명에 머물던 외국인 근로자는 올해 13만명으로 늘었다. 이들은 제조업(7만2000명), 농축수산업(1만명), 조선업(2500명), 건설업(2000명) 등의 분야에 배치된다.

하지만 외국인 근로자의 짧은 체류기간이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외국인 근로자의 업무 숙달과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선 장기간 근무하는 게 유리하지만, 현행법(외국인근로자의고용등에관한법률)상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외국인 근로자는 최장 4년 10개월(3년 취업활동 후 재계약 시 1년 10개월 추가)만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지난해 진행한 '외국인 근로자 활용 현황 및 정책 인식조사' 결과, 전체 기업의 41.3%(복수응답)가 외국인 근로자 고용 시 겪는 제도적 어려움으로 '짧은 체류 허용 기간'을 꼽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2대 국회에선 3건의 '외국인근로자의고용에관한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 발의됐다. 그중 이준석(개혁신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은 동일한 사업장에서 2년 이상 근무한 외국인 근로자가 일정 교육과정을 이수할 경우 취업기간을 3년(현행 2년) 더 연장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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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법안엔 김현(더불어민주당), 신장식(조국혁신당), 김기현(국민의힘) 등 여야를 막론하고 의원 10명이 참여했다. 여야 이견이 없는 무쟁점법안이지만, 이준석 의원안을 포함한 관련 법안 3건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참고: 고용허가제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선 외국인 근로자의 처우 개선 등이 뒷받침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기사에선 무쟁점법안을 다룬 만큼 이 내용은 제외했다.]

■ 무쟁점법안➏ 입법영향분석 제도 = 경제계에선 과잉규제를 방지하기 위해 '입법영향분석'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이어지고 있다. 의원들이 발의하는 법안 중 과도한 규제를 양산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서다.

경제·사회적 비용과 편익을 추정하고 규제 타당성을 평가하는 정부 발의안과 달리 의원 발의 법안엔 이런 절차가 없기 때문이다. 21대 국회를 통과한 2959개(원안가결+수정가결 법안) 법안 중 의원 발의 법안이 47.0%(1391개)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짚어볼 문제다.

일찌감치 관련 제도를 도입한 곳도 있다. 유럽연합(EU)의 유럽의회조사처는 2003년 '입법영향분석' 제도를 만들었다. 법안 시행으로 발생할 수 있는 영향을 사전에 포괄적으로 판단하기 위해서다.

우리 국회도 문제의식을 갖고 있긴 하다. 관련 법안이 발의된 건 18대 국회(2008~2012년)부터지만, 임기만료 폐기를 반복해 왔다. 22대 국회에선 윤재옥(국민의힘) 의원이 "무분별한 규제 입법이 정부의 규제개혁 노력을 저해하는 주요 요인이 되고 있다"면서 '국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여기엔 규제를 신설·변경하는 법안 발의 시 국회입법조사처가 입법영향분석서 작성, 법안 심사 시 입법영향분석서 참고 등의 내용이 담겼다. 이 외에도 부승찬·박성준(더불어민주당) 의원도 관련 법안을 각각 대표 발의했지만 3건 모두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 무쟁점법안➐ 기회발전특구 지원 법안 = 무쟁점법안 중엔 기업뿐만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필요한 법안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게 '기회발전특구 지원 법안'이다. 2023년 '지방자치분권및지역균형발전에관한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각 지방에 '기회발전특구'를 지정·운영할 수 있는 근거가 생겼다. 기업의 국내 투자를 늘리고, 지역의 균형발전을 이루기 위해 지방 거점을 '기회발전특구'로 지정할 발판이 마련된 거다.

지난해 6월 대구·부산·전남·경북 등을 시작으로 현재 14개 시·도가 모두 기회발전특구를 운영하고 있다. 예컨대, 세종시엔 한국유나이티드제약이 638억원을 투자해 의약품 생산공장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충남엔 셀트리온이 의약품 생산공장을 건립하는 데 3000억원을 투자할 방침이다.

하지만 기업에 인센티브를 제공해 국내 투자를 활성화한다는 당초 취지에 맞지 않게 현행법엔 기업을 지원하는 구체적인 규정이 없다. 여야는 앞다퉈 이런 한계를 보완할 법안을 발의했다.

역대 정부는 규제 개혁을 외쳤지만 여전히 한국의 규제 수준은 높다.[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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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욱(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방소멸위기극복을위한지방투자촉진특별법안'을 대표 발의했는데, 여기엔 기업의 지방 투자 시 국가·지자체가 행정적·재정적 지원, 산업통상자원부가 기회발전특구에 조세특례 및 연구개발 지원, 지방시대위원회 심의의결을 거쳐 기회발전특구 특례 부여 등의 내용을 담았다.

국민의힘 역시 김상훈 의원을 포함한 109명의 의원들이 참여해 비슷한 내용을 담은 '지역균형투자촉진 특별법안'을 발의했다. 언급했듯 이 법안은 기업뿐만 아니라 지역소멸이란 국가적 과제 해결을 위해서라도 처리가 시급한 법안이지만, 국회 어디선가낮잠을 자고 있다.

지난해 12월 17일 국회를 방문한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SK 회장)은 "(국회가) 무쟁점법안을 통과시켜준다면 대한민국이 정상 작동한다는 시그널이 되고, 거시지표 우려도 사라질 것"이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12개 무쟁점법안이 모두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면서 정부도 국회도 제대로 작동하는 거냐는 의문만 커지고 있다.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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