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훈 기자(nowhere@pressian.com)]
"내가 몸통이다."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 2012년 3월 이명박 정부 민간인 사찰 논란 당시)
12.3 비상계엄 사태 주모자 윤석열 대통령을 감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하 직함 생략)의 지난 23일 대통령 탄핵심판 4차 변론기일 증언을 보고 이 발언을 떠올렸다는 이들이 많다.
<조선일보>가 "뒤집어쓰기"를 의심하고(24일치 사설) <동아일보>도 "혀를 찰 헌재 농락", "온갖 궤변"이라고 격분한(같은날자 사설) 김용현의 주장 요지는 '계엄 포고령은 내가 썼다', '최상목에게 전달한 쪽지도 내가 썼다', '병력이동 계획도 내가 세웠다'는 것 등이었다.
우선 김용현의 주장 자체가 윤석열의 지난 21일 3차 변론기일 당시 주장 등에 맞춰 급하게 '맞춤형'으로 변경됐다는 의혹이 있고, 특히 곽종근·이진우 등 군 장성들과 최상목의 국회 공개회의 등에서의 증언과 배치된다는 점에서 사실관계를 정확히 따져봐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이 자주 쓰는 표현대로 '가사' 김용현의 23일 헌재 증언이 사실이라손 치더라도 '그게 어쨌다는 것이냐'는 의문을 지우기 어렵다.
김용현이 건의를 했든 말았든, 계엄 선포는 대통령만의 고유 권한이다. 장관이 건의한다고 해서 헌법상의 계엄 선포 요건(헌법 77조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서 병력으로써 군사상의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에 해당하지도 않는데 덜컥 계엄을 선포해버린 것은 어찌됐든 대통령인 윤석열 아닌가.
김용현이 비상계엄 선포를 건의했다? 그러면 대통령은 '안 된다'고 했어야 한다. 김용현이 포고령을 작성해 들고와 보고했다? 대통령은 '이게 무슨 소리냐'고 돌려보내고 호되게 꾸짖었어야 한다. 이제와 아무리 자신의 관여 정도나 책임성을 덜어내려 애써본들 전 국민, 아니 전 세계가 보는 가운데 황당하기까지 한 비상계엄 선포를 한 일이 없던 게 될 수는 없다.
더구나, MB정부 민간인 사찰 논란 당시의 '내가 몸통이다'는 유권자의 반감을 샀고 시민사회의 조롱거리가 됐을지언정 현실 법리적으로는 유리한 측면이라도 있었지만, 24일 윤석열·김용현의 헌재 발언은 그마저도 없다.
예컨대 고위공직자인 탄핵심판 피청구인이 탄핵 사유로 적시된 본인의 과오에 대해 '심신상실·미약'을 주장하는 경우를 가정해 보자. 이 주장이 받아들여진다면, 만약 이 재판이 형사재판이라면 무죄가 나올 것이다. 왜? 심신상실자는 형사책임능력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반면 탄핵심판이라면? 당연히 탄핵이 인용될 것이다. 정상적 판단이 불가능한 사람이 어떻게 고위공직을 맡아 국정을 돌볼 수 있겠나.
마찬가지로, 국회에 무장군인을 투입해 의결을 방해하고 정치인 체포 등을 지시한 일에 대해 '장관이 했고 대통령인 나는 몰랐다'고 주장한다면 어쩌면 형사책임은 다소 덜어질지 모르나 그런 대통령에게 "국정을 담당할 자격"(2004헌나1)이 있다고 보기는 몹시 어려울 것이다.
형사재판에 익숙한 검사 출신 대통령이 헌법재판의 속성을 간과해버린 실수일까, 아니면 탄핵심판은 아예 포기하고 내란죄 등 형사법정에서 내려질 판결을 최대한 가볍게 하겠다는 '올인' 전략일까? 검찰총장까지 지냈고, 무슨 보고를 받든 미심쩍으면 법전부터 펴본다는 그가 이같은 주장이 헌재 재판부에 먹혀들 거라고 진지하게 생각한 걸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본인의 탄핵심판 4차변론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게 직접 증인신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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