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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유가와 세계경제

 “석유를 파자”는 트럼프…그래서 유가 내리나요?[딥다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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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취임하자마자 ‘행정명령 사인쇼’를 벌였습니다. 유례없는 정책 폭격을 퍼붓고 있죠. 미국 은행 JP모건체이스가 ‘작전실(War room)’을 설치하고 직원들이 밤새워 정책을 분석 중일 정도인데요.

전 세계를 긴장케 하는 관세 관련 행정명령은 아직 나온 게 없습니다. 예상보단 훨씬 신중한 행보를 보이고 있죠. 대신 지금까지 발표된 것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이겁니다. ‘미국 에너지의 해방(Unleashing American Energy)’ 행정명령. ‘친환경에서 다시 화석연료로’ 미국 에너지 정책의 급격한 유턴을 선언한 건데요. 글로벌 에너지 산업에 영향이 큰 트럼프의 에너지 행정명령을 들여다보겠습니다.

취임 첫날인 1월 20일 행정명령에 서명한 뒤 이를 들어보이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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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1월 24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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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에너지가 부족하다고?

미국은 에너지 비상사태에 놓여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고요? 아무도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는 듯하지만, 어찌 됐든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첫날 그렇게 선언했습니다. 대통령이 에너지 비상사태를 선포한 건 미국 역사상 처음이라는군요(1970년대에 일부 지역에서 선포한 적은 있다고). 그는 “미국의 에너지 생산·운송·정제·발전이 부족한 건 우리 국가 경제·안보·외교정책에 비정상적이고 특별한 위협”이라고 주장했죠. 미국이 이미 세계 최대 석유 생산국이고, 그 생산량이 올해는 물론 내년에도 사상 최대치를 경신할 텐데도 말이죠.

동아일보

그리고 비상사태를 이유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첫날 서명한 게 ‘미국 에너지 해방’ 행정명령입니다. 그 내용은 많지만, 몇 가지로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①에너지와 천연자원(광물)의 생산을 가로막거나 지연시키는 각종 규제를 없앤다.
②액화천연가스(LNG) 수출에 대한 바이든 행정부의 제한을 해제한다.
③전기차를 의무화하는 정책은 철폐한다.
④차량·가전제품에 대한 소비자 선택권을 제한하는 불공정한 보조금 폐지를 즉각 검토한다.

트럼프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에너지에서 많은 돈을 벌 겁니다. 우린 누구보다 (에너지를) 더 많이 가지고 있어요.” “우리는 (에너지) 가격을 낮추고 전략적 비축량을 다시 최고점까지 채우고, 미국 에너지를 전 세계로 수출할 겁니다.”

미국,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의 연간 석유, 가스 생산량을 비교한 그래프. 2018년부터 미국(파란색 막대)은 세계 최대 생산국 지위에 올랐고, 점점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미국 에너지정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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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에서 다시 화석연료로

‘드릴, 베이비, 드릴(Drill, Baby, Drill)’. 석유·가스 시추를 늘리자는 구호이죠. 트럼프가 대선 캠페인에서 강조했던 이 슬로건이 이제 정책으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럼 시장 반응은 어떨까요.

일단 트럼프 대선 캠페인에 수천만 달러를 기부했던 석유 재벌들은 정책 기대감에 주가가 뛰며 큰 수혜를 봤습니다. 기후책임연구프로젝트(CARP)가 친트럼프 성향의 석유업계 억만장자 15명의 재산 변동을 추적했는데요. 트럼프 취임 후 단 하루 만에 33억 달러가 늘었다고 합니다. 2025년 들어서 그들이 번 돈은 총 170억 달러에 달한다죠. 투자금(기부금) 대비 수익률이 엄청납니다.

대선 후보 시절인 2024년 10월 자신의 에너지 정책에 대해 연설 중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AP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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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LNG 수출기업은 파티 분위기입니다. 그동안 바이든 정부가 LNG 수출 허가를 중단하면서 위기에 처했는데, 트럼프가 이를 다 풀어줬으니까요.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LNG 수출기업 벤처글로벌(Venture Global)은 이를 기회 삼아 곧 대규모 기업공개(IPO)에 나섭니다.

규제에 가로막혀있던 광산업체들도 활기를 띱니다. 리오틴토는 12년째 허가를 기다렸던 미국 애리조나주 구리광산 개발이 마침내 승인될 거라 기대하죠. 완전히 개발되면 북미에서 가장 큰 구리광산이 될 겁니다. 미국 환경보호청(EPA)이 거부했던 알래스카의 페블광산 프로젝트도 트럼프 정부에서 승인받을 가능성이 커 보이죠. 캐나다기업 노던다이내스티가 소유한 이곳엔 구리·금·몰리브덴이 약 4000억 달러어치가 매장돼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행정명령을 통해 전기차 충전소 설치를 위한 연방 정부 지원을 중단했다. 바이든 친환경 정책의 대대적인 후퇴가 이어진다. AP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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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전기차 관련 업계는 크게 덜컹거립니다. 2030년까지 신차의 절반을 전기차로 채운다던 바이든 시대 목표가 트럼프 행정명령으로 물거품이 되어버렸죠. 전기차 충전소 건설을 위한 연방정부 지원도 중단됐고요.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의 전기차에 최대 7500달러 구매보조금(세액공제)을 제공 정책은 아직 살아있긴 한데요(행정명령으론 없애지 못하고 의회가 새 법안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 역시 결국 폐지 또는 축소될 게 뻔하단 관측이 나옵니다.

테슬라를 포함한 전기차 업체와 미국에 투자해 온 국내 배터리 업계엔 악재가 아닐 수 없죠. 23일엔 일본 자동차 기업 닛산이 미국에서 소형전기차를 생산하는 계획을 포기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그래서 셰일혁명 다시 한번?

자, 그럼 이제 미국에선 대대적인 석유·가스 개발 붐이 일어나고, 미국 소비자들은 기후 위기 따윈 잊어버린 채 저렴한 화석연료를 펑펑 쓰며 풍요를 즐기게 될까요. 그럼 국제유가는 이제 하락할 일만 남았으니 우리는 안심해도 되나요.

일단 트럼프 대통령은 그런 시나리오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기가 대통령이 되면 석유 생산량이 왕창 늘어서 미국 휘발유 가격이 갤런당 2달러(=L당 0.53달러, 757원) 이하로 떨어질 거라고 큰소리쳐왔거든요.(22일 현재 미국 내 평균 가격은 갤런당 3.23달러)

2024년 8월 미국 버지니아주의 한 주유소. 휘발유 가격이 갤런당 3.79달러(L당 1달러, 1428원)를 기록하고 있다. 신화통신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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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말이죠. 규제를 풀어주고, 개발할 땅을 임대해주고, 허가를 신속하게 내주는 것. 모두 석유·가스 생산을 늘리는 데 도움 되는 정책인 건 분명한데요. 시추를 더 하느냐 마느냐는 대통령이 아니라 민간 기업이 결정하죠. 그리고 기업 의사결정을 지배하는 건 어디까지나 시장 논리입니다. 유정을 새로 뚫는 게 얼마나 돈이 되느냐가 가장 중요하죠.

그리고 그 부분이 좀 애매합니다. 미국은 이미 세계 최대 석유 생산국이자 천연가스 수출국이죠. 2009년부터 ‘셰일오일 개발 붐’이 일면서 이후 미국의 원유 생산량은 급증했는데요(2016년 하루 약 890만 배럴→2024년 1320만 배럴).

지금은 미국도 이 붐의 끝물입니다. 수익성 있는 유정은 이미 거의 다 파냈기 때문이죠. 갈수록 미국에서 새 유정 굴착에 드는 비용이 커지는 추세입니다. 미국 석유의 심장부인 퍼미안 분지의 손익분기점이 이미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 기준으로 배럴당 62달러에 달하고 있죠.

미국 에너지정보국이 예상하는 올해 WTI 평균 가격이 얼마냐. 배럴당 70달러입니다. 2026년엔 62달러로 떨어질 거라고 전망했고요. 이 전망대로라면 새로운 유정을 뚫는 건 남는 게 없는 장사입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원유 생산지인 텍사스주 퍼미안분지의 모습. AP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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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드릴, 베이비, 드릴’ 정책이 실제론 석유·가스 생산기업을 움직이진 못할 거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에너지분석 전문기업 리스타드에너지는 이렇게 내다봤죠. “임원진이 (트럼프의) 수사에 고무될 순 있지만, 석유의 잠재적 과잉공급과 유정 생산성 정체로 인해 더 많은 시추를 위해 투자를 늘릴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낮습니다.

물론 트럼프 정부가 석유 과잉공급을 흡수하는 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전기차 지원을 없애고 배출가스 기준을 낮춰서 기름 많이 쓰는 내연기관차 판매를 늘릴 수 있고요. 또는 예산을 태워서 전략비축유를 다시 가득 채울 수 있죠. 트럼프 정부가 준비 중인 정책인데요. 참고로 미국은 긴급 상황에 대비해 전략비축유를 최대 7억1350만 배럴까지 저장할 수 있고, 현재는 약 4억 배럴 정도만 채워져 있습니다. 이론적으론 3억 배럴 넘게 추가할 수 있는 거죠(대신 예산이 엄청 많이 들겠지만.)

동시에 다른 나라를 이렇게 압박하고 나설 겁니다. ‘관세를 피하고 싶나요? 그럼 미국 LNG를 수입하세요!’ 현재 미국산 LNG의 최대 수입국인 중국, 러시아산 LNG 수입에 의존하는 유럽이 모두 그 타깃이 되겠죠. 물론 세계 3위 LNG 수입국인 한국도. 이미 한국가스공사는 2022년 이후 3년 만에 미국산 LNG 장기도입 계약 체결에 나섰습니다.

미국 기업 벤처글로벌이 건설 중인 수출용 LNG 저장 탱크의 모습. 미국은 LNG 수출 세계 1위 국가이다. 벤처글로벌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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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렇게 하면 또 다른 문제가 생깁니다. 석유·가스 공급과잉 없이는 미국 소비자의 에너지 가격이 떨어질 리가 없죠. 소비자와 석유 생산기업의 이익, 둘은 명백히 상충합니다. 인플레이션을 잡으려고 석유 생산을 늘리자는 건데, 생산을 늘리려면 유가가 뛰어야 한다니. 딜레마적 상황인데요.

그래서 트럼프의 ‘가솔린 2달러’ 공약은 신기루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미국에서 휘발유 가격이 배럴당 2달러 이하였던 마지막 시기는 코로나 팬데믹이 절정이던 2020년. 당시 평균 원유 가격은 배럴당 39.16달러(WTI 기준)였습니다. 그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석유 기업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아직은 확정되지 않은 트럼프 정부 정책도 큰 변수입니다. 만약 미국이 정말 캐나다에 다음 달부터 25% 관세를 부과한다면? 미국 중서부 지역 휘발유값이 갤런당 30~40센트 오르게 될 겁니다. 미국은 석유의 20% 이상을 캐나다에서 수입하니까요. 또는 트럼프가 그동안 공언했던 대로 이란에 더 강경한 제재 정책을 펼친다면? 이란의 원유 수출이 급감하면서 국제유가가 요동칠 겁니다. 골드만삭스는 이 경우에 브렌트유가 무려 90달러까지(!) 뛸 거라 내다보죠.

그래서 결론은? 네, 트럼프가 돌아왔습니다. 그의 단순명료한 구호(‘드릴, 베이비, 드릴’ 같은)에 비해 에너지 정책이 나아가는 길은 울퉁불퉁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예고한 대로 관세 정책까지 더해지면 롤러코스터가 펼쳐질지 모르죠. 그러니 꽉 잡으세요. By.딥다이브

트럼프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다보스포럼에서 “OPEC은 석유가격을 낮추라”고 발언했죠. 이에 브렌트유 가격이 1% 하락하기도 했는데요. ‘저유가=미국경제 번영’이란 그의 확고한 믿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해 드리자면.

-20일 취임한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행정명령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그중 전 세계가 주목한 건 ‘미국 에너지 해방’ 행정명령이죠. 친환경에서 다시 화석연료로의 유턴을 선언했습니다.

-미국 석유와 천연가스 생산업계는 규제 완화에 환호하죠. 반면 보조금 폐지 위기에 처한 전기차 관련 업계는 우울합니다.

-‘드릴, 베이비, 드릴’이란 트럼프 구호대로 미국에서 다시 셰일오일 붐이 불붙을까요. 기름값이 떨어지고 소비자들은 행복해질까요. 그럼 좋겠지만 냉정한 시장 논리에 따르면 그게 쉽진 않다는데요. 시대는 이미 달라졌는데 자꾸 ‘다시 좋았던 옛날로’ 돌아가려고 하는 트럼프식 정책의 한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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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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