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대책 비현실적, 이주 방안 요구"…지원 조례 있지만 예산 無
재취업 쉽지 않아…부분 철거 시작 후 폭주 청년에 신변 위협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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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오전 서울시 성북구청 앞에서 미아리 성노동자들이 이주 대책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5.02.06/ⓒ 뉴스1 권진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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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도 알아보려 했는데 병이 많아서…당뇨·고지혈증·천식·디스크 그리고 보름 전에는 대상포진도 걸렸어"
(서울=뉴스1) 권진영 기자 = 6일, 서울시 성북구청 앞에서 미아리 성 노동자의 생존권과 이주 대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 참석한 홍희정 씨(60대·가명)는 뉴스1 취재진에게 진갈색 점처럼 남은 대상포진 자국을 보여주며 말했다.
그는 젊은 시절 운영하던 술집이 망해 미아리로 흘러들어왔다. 이후로 30여 년을 지내며 19년째 뇌출혈로 쓰러진 친언니의 병간호 비용을 대고 있다. 7년간 매월 500만 원 정도가 나갔다. 쓰러진 충격으로 다섯 살 어린아이처럼 변한 언니지만 "그래도 언니가 살아 있는 게 좋으니까", "피붙이니까"라며 홀로 감당해 왔다.
홍 씨는 성매매가 아닌 다른 일을 찾아보려고 했지만 도전할 기회가 없었다고 했다. 그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다른 성 노동자 여성은 "주방 설거지 아르바이트를 하려 해도 경력직을 뽑더라"며 허탈해했다.
이날 성북구청 앞에 모인 미아리 성 노동자 이주대책 위원회(이하 대책위) 일동은 '단결, 투쟁'이라 적힌 빨간 머리띠를 두르고 "철거민 투쟁 정당하다", "신월곡 1구역 주민들의 생존권을 보장하라"고 반복해 외쳤다.
칼바람을 막기 위해 털모자와 롱패딩, 방한 마스크, 장갑으로 눈매를 제외한 온몸을 꽁꽁 싸맸다. 참가자의 연령대는 30~60대까지 다양했다. 얼음장 같은 바닥에 깔개 한 장을 놓고 앉은 이들 사이에서는 이따금 굵은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집회 장소 한편에는 영정사진이 마련됐다. 지난해 9월 사채업자의 불법추심에 시달리다 끝내 어린 딸을 두고 삶을 끝낸 30대 성 노동자 A 씨가 주인공이다. 사채업자는 고인의 딸이 다니는 유치원에 찾아가겠다고 협박했고, 실제로 그렇게 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채업자들은 통상적으로 성 노동자에게 돈을 꿔주기 전 가족관계증명서를 요구해 고리의 이자를 독촉하는 수단으로 삼는다. 가족과 가까운 지인들에게 자신의 일을 숨기는 경향이 있는 성 노동자가 불법추심 협박을 단호히 끊어낼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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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서울시 성북구청 앞에 지난해 9월 세상을 떠난 성노동자의 영정과 생전 주장한 이주 대책을 담은 글이 전시돼 있다. 2025.02.06/ⓒ 뉴스1 권진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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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 대책 쏙 빼고 불법 대부업체 대응만 내놓은 서울시
김수진 대책위원장은 아직도 고인의 빚을 갚으라고 독촉하는 전화가 온다며 서울시가 내놓은 대책은 현실적으로 맞지 않다고 비판했다.
서울시는 A 씨의 사연이 전해지자 불법 대부업 피해를 근절하겠다며 대책 마련에 나섰는데, 그중 하나가 익명으로 불법추심 피해를 상담할 수 있는 카카오톡 전용 상담창구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나쁜 맘을 먹고 "돈을 끌어다 쓴 후 경찰에 신고해 협박당했다며 역이용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또 고인의 일은 비통하지만 정작 성 노동자의 생존권과 이주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비껴간 것에 대해서도 불만을 표했다. 그는 "2년 넘게 아무리 이주 대책을 논의하자고 해도 (서울시) 이 사람들은 우리 얘기를 못 알아듣고 너네는 계속 떠들어라 식"이라고 질타했다.
성북구는 성매매 피해자들에 대해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대해서는 공감대가 있지만 대상자 수를 정확히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구청은 성매매 노동자 중 "성북구 주민으로 등록된 이가 거의 없다"며 "서울시와 실무선에서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구청과 서울시는 2017년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매매 예방 및 성매매 피해자 등의 자활 지원 조례'를 제정했다. 성 노동자 여성들이 집결지를 벗어나 '탈성매매'를 할 경우, 일정 기간 이들에게 생계비와 주거 이전비·직업훈련 및 교육비를 지원한다는 것이 골자다.
2021년에도 비슷한 내용의 '여성폭력방지와 피해자보호 및 지원에 관한 조례'가 마련됐지만 "조례 만들어 두고 한 번도, 한 건도 (적용 사례가) 없다"고 대책위는 꼬집었다.
이하영 여성인권센터 '보다' 소장은 2017·2021년에 마련된 조례 둘 다 예산 책정이 안 됐다며 센터 측은 "(성매매 집결지) 폐쇄를 앞두고 지자체에 자활 지원 조례 예산 책정을 계속해서 분명히 요구해 왔다"고 말했다.
부분 철거와 함께 시작된 폭주 청년들의 협박
신월곡 1구역에서는 지난 12월부터 재개발을 위한 부분 철거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무서운 불청객도 찾아왔다. 바로 폭주 청년들이다.
집회에 참석한 복수의 성 노동자는 최근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탄 미성년자들이 업소 주변을 난폭하게 주행한다며, 자신들을 향해 상스러운 욕설을 퍼붓거나 위협적으로 물건을 던지기도 했다고 했다.
사진을 찍거나 제대로 된 신고를 하려 해도 순식간에 현장을 벗어나 증거를 잡기가 힘들었다. 한 여성은 "나만 있는데 업소 주차장을 돌면서 그럴 때는 너무 무섭다"고 했다. 다른 여성은 "소름이 끼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미성년자는 이곳에 오면 안 돼. 집에 가"라고 주의를 줬지만 "우리 (재개발) 조합에서 시켜서 알바하는 거다"라는 답이 돌아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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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서울시 성북구청 앞에 성노동자들의 이주 대책을 요구하는 피켓이 경찰 펜스 앞에 세워져 있다. 2025.02.06/ⓒ 뉴스1 권진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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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미아리에 남아 있는 성매매 여성은 100여 명으로 추정된다.
김 위원장은 자신 역시 한 달 동안 세상을 등져야 할지, 마음이 벼랑 끝으로 몰렸지만 강아지가 있어 꾹 참았다고 속이야기를 고백했다.
그는 "최근 다양한 사회문제로 우리 이야기가 묻히고 있다. 이대로라면 제2의 A 씨가 나오지 말란 법도 없다"며 "미아리라는 집결지만 없앤다고 성매매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또 다른 음지가 생길 것이고 우리는 더 위험한 곳으로 흘러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이어 "사람이란 방 한 칸이라도 마음 편히 있으면 내가 어떤 일을 하든 할 수 있다"며 "직업 교육 등도 단독이 아닌 이주 대책과 병립해 이뤄져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realkwo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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