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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6 (일)

“성차 연구, 여성은 물론 남성에게도 도움” [건강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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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 대한성차의과학회 초대 회장(앞줄 왼쪽 넷째)이 지난 1월23일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한국과학기술총연합회에서 열린 창립총회에서 발기인들과 함께 밝게 웃고 있다. 대한성차의과학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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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 초반에는 수면제 졸피뎀을 남녀 모두 10㎎을 처방했어요. 그런데 아침에 출근하던 여성들의 자동차 사고가 늘어나는 현상이 나타났어요. 남녀의 대사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처방이 불러온 사고입니다.”



김나영 대한성차의과학회 초대 회장(서울의대 내과학교실 교수)이 지난달 31일 진행한 인터뷰에서 성차의과학이 왜 필요한지 설명하면서 든 사례다. 1월23일 아시아 최초로 출범한 대한성차의과학회는 남녀 질병 차이를 연구하는 ‘성차의학’을 뛰어넘어 ‘성차의과학’으로의 논의 확대와 발전을 꾀하는 학술단체다.



이에 따라 총 95명의 발기인 중 의학 관련자는 약 62%이고 약학, 간호학, 수의학, 인공지능(AI), 기초과학 등 연구자도 많이 참여했다. 남성도 적지 않다. 두 부회장 중 한 명인 김상건 부회장이 남성이고 동국대 약대 교수라는 것도 상징적이다. 또 다른 부회장은 충북의대 소화기내과의 박선미 교수가 맡았다.



2023년 3월부터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성차의학연구소’ 소장직을 맡아온 김나영 회장은 “성차의학에 대한 무지가 일으킨 의료참사가 적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졸피뎀 10㎎ 남녀동등 처방건’도 그중 하나다. 김 회장은 “졸피뎀은 체지방에 녹는 약물”이라며 “여성은 체지방이 많고 남자는 근육이 많은 상태여서 여성의 몸에서 상대적으로 오랫동안 머물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같은 양을 복용하더라도 여성은 아침까지 잠이 덜 깨는 경우가 생긴다. 이에 따라 미국 식품의약품안전국(FDA)은 2013년 여성에게는 졸피뎀 첫 처방 용량을 기존의 절반인 5㎎으로 낮추도록 했다.



김 회장은 앞으로 남녀 간의 차이를 더욱 자세히 확인하면서 이런 문제들을 계속 찾아내고 해결해나갈 예정이다. 김 회장은 이를 위해서는 더욱 많은 성차의과학 연구가 진행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이는 김 회장과 95명의 발기인이 학회를 출범시킨 주된 이유이기도 하다. 김 회장은 “학회는 성차의과학에 대해 알리고 관심 있는 학자들을 모으는 데 일정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며 “이런 과정을 통해 성차의과학에 대한 연구를 늘리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2021년 ‘과학기술기본법 개정안’이 입법화되는 등 연구에 대한 제반 환경도 좋아지고 있다. 당시 ‘과학기술기본법 개정안’에는 과학기술 연구에서 성별 특성을 고려하도록 하는 내용을 새로 담았다. 김 회장은 “올해는 질병관리청 산하 국립보건연구원이 나라장터에 성차의학이라는 이름으로 각각 4년간 37.5억원에 해당하는 순환기·소화기 분야 연구과제를 올렸다”며 “학회에서는 이 과제를 따기 위해 협업이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김 회장은 이런 노력과 함께 오는 6월에는 세계적인 성차의과학회인 미국의 ‘성차연구기구’(OSSD)를 방문할 예정이다. 성차연구기구 방문을 통해 미국과 유럽 연구자들과의 네트워크도 강화하고, 이 기구에서 발행하는 학회지 ‘바이올로지 오브 섹스 디퍼런스’의 운영도 살펴볼 계획이다. 이를 통해 여건이 갖춰지는 대로 자체 학회지 발간도 추진할 계획이다.



김 회장은 “이런 노력을 통해 앞으로 진행될 성차 연구가 여성은 물론 남성들에게도 큰 도움이 되는 연구 결과를 낳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나영 대한성차의과학회 초대 회장이 성차의학 책을 배경으로 삼아 밝게 웃고 있다. 대한성차의과학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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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인터뷰 내용이다.



- 축하드립니다. 아시아에서 최초로 성차의과학회를 창립하셨는데요. 우선 성차의학은 어떤 개념인가요?



“성차의학이라는 게 ‘젠더혁신’(Gendered Innovation·남성·여성 차이 분석을 통해 새로운 지식을 창조해내는 것)의 한 부류라고 보시면 돼요. 젠더혁신 이전에는 남성 또는 남자 위주로 모든 게 흘러가고 있었어요. 이제 거기에 여성 또는 여자라는 요소를 특수하게 고려해야 된다라는 게 젠더혁신입니다.



가령 자동차 시트벨트를 보면 초기의 시트벨트는 남성 위주로 제작됐습니다. 그래서 사고가 나면 여성들이 많이 다치거나 죽었다고 합니다. 자동차 시트벨트가 가슴하고 배를 보호해야 하는데요. 그런데 시트벨트 제작을 허리가 길고 키가 큰 남자에 맞춰서 진행해서 여자들은 그 벨트가 안 맞아서 튕겨나가는 일도 많았다고 합니다.



이때 스웨덴 자동차사 볼보가 자동차 업계에서는 처음으로 ‘젠더혁신’을 최초로 실천했습니다. 볼보는 1970년대부터 교통사고 조사팀을 만들어 안전한 시트벨트·에어백 등을 개발해왔는데요. 1995년부터는 자동차 충돌시험에 여성 더미를 사용했습니다. 이를 통해 여성도 안전할 수 있는 시트벨트 등을 만들었습니다.



성차의학은 그 것이랑 비슷한 개념인데요. 의학을 생각할 때 남성과 여성이 다르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구체적으로 어떤 점을 인식해야 하는 걸까요.



“가장 중요한 점은 남녀의 대사가 다르다는 점입니다. 가령 여성은 체지방이 많고 남자는 근육이 많습니다. 이에 따라 체지방에 녹는 약물의 경우는 여성의 몸에서 상대적으로 오랫동안 머물게 됩니다. 체지방에 녹는 약물 중 하나가 수면제인 졸페뎀인데요. 예전에는 이 졸피뎀을 남녀 모두 10㎎을 처방했습니다. 이 분량은 남성이 4시간 만에 깰 수 있도록 처방한 분량입니다. 그런데 체지방이 많은 여성은 졸피뎀 성분이 체내에 남아 있는 시간이 길어서 잠을 깨는 데 더 오래 걸립니다. 그래서 졸피뎀 처방 이후 차량 사고가 약 700여건이 일어났습니다. 잠을 못자다가 새벽 2시쯤 졸피뎀을 복용하는 경우를 상정해볼게요. 남성은 오전 7시에 일어나면 잠이 깬 상태가 되지만, 여성은 체내 졸피뎀 성분이 남아서 졸린 상태가 됩니다. 그래서 자동차로 출근하다 사고를 일으키는 비율이 높아지는 것이다. 이에 따라 미 식품의약품안전국(FDA)은 2013년 여성에게는 졸피뎀 첫 처방 용량을 기존의 절반인 5㎎으로 낮추도록 했습니다.”





- 학회는 성차의학을 넘어 성차의과학을 지향한다고 밝혔는데요.



“그렇습니다. 학회에는 의학 관련자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합류해 있습니다. 약학, 간호학, 자연과학, 식품영양학, 수의학 그리고 인공지능(AI) 전문가도 있습니다.



이런 인적 구성을 취한 것은 시너지를 극대화하기 위한 것입니다. 관련하여 비만 문제를 좀 살펴보면요. 우리나라는 50살 미만에서는 여성 비만이 낮습니다. 여성 비만 비율은 대략 26% 정도이고, 남성은 35% 정도입니다.



그런데 폐경이 지나면 갑자기 여성 비만이 늘어납니다. 폐경으로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이 없어진 것도 큰 원인인데요. 그래서 70대에서의 여성 비만 비율이 44% 정도까지 올라갑니다. 이 경우 여성 비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의학뿐만 아니라 식품영양쪽에서도 같이 살펴보면 더욱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의학이 단독으로 진행할 때보다 여러 과학이 밑받침이 될 때 더욱 좋은 결과가 나오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차의과학으로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김나영 대한성차의과학회 초대 회장이 회장에 당선된 뒤 소감 발표를 하고 있다. 대한성차의과학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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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회 결성의 장점은 어떤 것이라고 보십니까?



“신생 학회로서 성차의과학에 대해 알리고 세를 결집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국가나 공공기관의 연구비 지급에도 일정한 흐름이 있습니다. 가령, 줄기세포(스템셀)가 중요한 키워드가 됐던 시기가 있는가 하면, 인공지능(AI)이 흐름의 중심이 되기도 합니다. 성차의과학이 주요한 흐름이 되는 움직임도 이제 시작했다고 생각합니다. 학회는 이런 흐름을 더욱 촉진시킬 것입니다.



연구비 문제도 그 중 하나입니다. 질병관리청 산하 국립보건연구원이 올해 성차의학이라는 이름으로 순환기와 소화기쪽에 37.5억원에 해당하는 연구과제를 내놓았습니다.



학회 구성원들이 성차의학도 하고 성차과학, 성차약학 등에 관한 책도 썼지만 궁극적으로 성차의학이 크게 발전하려면 관련 연구가 많아야 합니다. 이제 그런 조건이 돼가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연구비를 학회를 주지는 않지만, 이와 관련된 연구자들이 많이 모여 있으면 시너지를 낼 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성차의학을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차의학이 여성과 함께 남성에게도 도움이 되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가령 ‘남성에 소외된 질환’ 등도 성차의학에서는 강조해나갈 예정입니다. 예를 들면 여성들의 병으로 알려져 있는 유방암의 경우도 환자의 0.4%가 남성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매년 25000명 정도가 유방암으로 진단되는데 이중 100명 정도가 남성입니다.



그런데 남성의 경우는 유방암은 성호르몬의 수용체에서 여성과 다르다고 합니다. 호르몬 수용체에 따라 잘 듣는 항암제도 달라지는데요. 여성 유방암 환자 위주의 항암제 연구만 이루어진다면, 남성 유방암환자가 불리하게 됩니다.



또 골다공증의 경우도 여성들에게 많은 질병으로 알려져 있어서, 남성의 골다공증 예방과 치료는 소외된 측면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70살 이상의 경우 남성도 18.0%가 골다공증에 걸립니다. 18.0%이면 5명 중에 한 분이시잖아요. 한데 이중 치료는 16.2%만 받는다고 합니다. 대부분이 본인이 골다공증인줄 모르는 것이지요.



성차의학은 이런 경우도 조명해나갈 것이고, 이는 남성들의 질병 치료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성차의과학이 발전하면 국민건강에 많은 도움이 되겠군요.



“예, 그렇습니다. 지금 국립보건연구원에서 연구과제로 내놓은 중에는 남성 중심의 가이드라인을 바꾸어달라는 것도 있는데요. 마찬가지로 국민건강에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대장암 검사인데요. 현재는 대장암 검사를 남녀가 동일한 나이에 시작하는데요. 여성이 남성보다 5~7년 정도 늦게 하는 것이 좋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성은 남자보다 대장암이 5~7살 늦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여성의 경우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이 대장암 발병을 일정 정도 막아주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대장암 검사를 여자가 남자보다 5~7년 늦게 시작하고 그 기간만큼 늦게 끝낸다면, 국민 건강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연구과제를 통해 이를 공식 가이드라인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이드라인을 만들기 위한 근거를 많이 찾아야 합니다. 국립보건연구원에서 이번에 37.5억원의 연구비를 내놓은 데는 이런 필요성이 크게 작용했다고 생각합니다.”





- 현재 미국과 유럽에서는 성차의과학이 우리보다 발전돼 있는 것으로 아는데요. 어느 정도 차이가 있나요?



“제가 보기에는 한 10~15년 정도 차이는 있는 것 같아요. 2000년 1월 미국 회계감사원에서 10개의 약을 시장에서 퇴출시킨 것이 성차의학 발전의 큰 계기가 됐다. 10개의 약 중 8개가 여성에게 부작용이 있는 약이었기 때문입니다. 가령 퇴출된 약중 소화운동촉진제로 역류성 식도염에 많이 쓰인 ‘시사프라이드’의 경우 남성보다는 여성들에게 심실 부정맥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심하면 심정지에 이르게 했다고 합니다. 이 약 개발 때 행해진 임상실험에서는 남성이 많이 들어가서, 여성들의 부정맥 부작용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 이후 2015년에 미국 국립보건원(NIH)이 연구비 지원서에 섹스 혹은 젠더를 고려하고 있는지 묻기 시작했습니다. NIH가 연구비 지원을 할 때, 사람의 경우 왜 남성 위주로 하는 건지, 동물 연구라면 왜 수컷을 가지고 하는 건지 물어보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히려 성차를 포함하는 연구가 기본이 되는 것이고, 그걸 안 하면 왜 안 하는지를 설명하게 되었습니다.”





- 성차의과학 선진국과의 교류도 추진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미국과 캐나다의 경우 OSSD(The Organization for the Study of Sex Differences)라는 국제적인 흐름을 선도하는 학회가 활발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OSSD에서는 또 ‘바이올로지컬 섹스 디퍼런스’라는 학회지도 발행하고 있습니다. 성차의과학회에서는 오는 6월에 미국 뉴멕시코에서 열리는 2025 OSSD 학회에 참석할 예정입니다. OOSD에 가서 글로벌 네드워킹도 하고, 학회지 발행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배워올 생각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의 성차의과학 수준도 높이고, 선진 외국과도 대등한 관계에서 대화를 할 수 있도록 선도해나갈 계획입니다.”



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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