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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2 (금)

    이슈 미술의 세계

    홀로코스트 생존 건축가의 아메리칸 드림…트럼프를 꼬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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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일보

    영화 속 건축 작품들은 실존 건축물에 영감 받아 미술팀이 직접 디자인했다. 이를 지금은 잘 쓰지 않는 와이드 스크린 포맷 ‘비스타비전’과 70㎜ 필름에 담아냈다. [사진 유니버설 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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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베니스영화제 은사자상(감독상)에 더해 지난달 미국 골든글로브 작품(드라마 부문)·감독·남우주연상(애드리언 브로디) 3관왕에 오른 화제작 ‘브루탈리스트’(감독 브래디 코베)가 12일 국내 개봉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홀로코스트에서 생존해 1947년 미국으로 탈출해온 유대계 헝가리 건축가 라즐로 토스(애드리언 브로디)의 30년 전쟁 상흔을, 전후 트라우마 속에 탄생한 육중한 건축 양식 ‘브루탈리즘(Brutalism)’ 걸작에 응축해냈다. 내달 2일(현지시간) 열리는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작품·감독·각본·남우주연·여우조연·남우조연·음악·미술·촬영·편집 등 10개 부문 후보에 올라있다.

    3시간 35분(인터미션 15분 포함)에 육박하는 상영 시간도 화제. 헝가리인 설정의 주연 배우 브로디와 아내 에르제벳 역할의 펠리티시 존스의 헝가리어 대사 연기 일부를 음성 복제 AI 툴(Respeecher)로 다듬은 게 밝혀지며 연기상 후보 정당성에 논란이 일기도 했다. 그런데 영화를 본 이들 사이에선 “AI 사용이 그렇게나 대수냐”(워싱턴포스트·CNN)는 반문도 나온다. 이 “거대한 교향곡 같은 작품”(할리우드리포터)에서, 원어민 발음에 충실하기 위한 ‘AI 튜닝(조율)’은 빙산의 일각이란 옹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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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로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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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는 나치가 폐쇄한 독일 예술학교 바우하우스 출신의 건축가 라즐로가 난민으로 전락한 뒤, 구원자처럼 다가온 미국 자본가 해리슨(가이 피어스)에게 또 다른 방식으로 짓밟히는 세월을 그린다. 해리슨은 라즐로의 예술성을 알아보고 초대형 문화센터의 건축을 의뢰하지만 동시에 라즐로의 재능을 시기하고 소유하려 든다. 해리슨의 모욕과 폭력에 무너져 내린 라즐로를 치유하는 것은 결국 자신의 영혼을 담은 건축 설계다.

    70여 년 전 시대물이지만 동시대적이다. 코베 감독이 현대 미국에서 착안한 이야기여서다. 반이민 정책 속에 혐오와 차별이 극단화한 도널드 트럼프 1기 집권기(2017~2021)가 그에게 영감이 됐다. 영화의 출발점이자, 또 하나의 주인공인 브루탈리즘은 전후 유럽 재건 과정에서 등장한 건축 양식으로 거대한 노출 콘크리트 몸체와, 장식보다 기능에 초점 맞춘 투박한 건물구조가 특징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임 당시 “(브루탈리즘 양식의) 추악하고 끔찍한 연방 건물을 (신고전주의 디자인으로) 다시 아름답게 만들자”며 노골적인 철거 표적으로 삼았다.

    코베 감독은 브루탈리즘을 향한 엇갈린 시선을 전후 유럽 이민자들을 둘러싼 미국 사회 초상에 빗댔다. 할리우드리포터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미움받기 쉬운 브루탈리즘 건축물이 이민자의 경험을 떠올리게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웅장하고 기념비적 도시 설계에 집착하는 트럼프의 건축관을 나치 독재자 히틀러와 닮은꼴로 바라봤다.

    제작 기간이 7년에 달하는 이 영화의 제작비는 놀랍게도 1000만 달러(약 145억원),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20분의 1에 불과한 규모다. 헝가리 부다페스트 교외에 세트를 지어 20세기 중반 미국 펜실베니아를 구현했다. 햇살이 십자가 형태의 빛으로 들이치는 극 중 문화센터 예배당 등 영화 속 건축물도 큰 볼거리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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