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07 (일)

    이슈 질병과 위생관리

    결핵 진단받고 철렁…목포병원 덕에 살았죠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국립목포병원 의료진이 치료간병통합서비스 병동에서 거동이 불편한 노인 환자의 욕창 방지를 위해 자세를 바꿔주고 있다. 국립목포병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 정도면 결핵이 꽤 진행된 겁니다. 아버님이 많이 힘드셨겠네요."

    박승규 국립목포병원 원장은 화면에 폐 엑스레이 사진을 띄워놓고 보호자인 엄 모씨에게 설명을 이어갔다. 화면에 뜬 엄씨 아버지 폐 사진에는 구멍이 2개나 보였다. 설명을 듣던 엄씨는 착잡한 표정으로 "치료를 받으면 구멍은 메워지나요?"라고 물었다. 박 원장은 "한번 망가진 폐는 회복되지 않는다"면서도 "열심히 치료받으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으니 힘내자"고 격려했다.

    국립목포병원은 전국에 두 곳(목포, 마산)뿐인 국립결핵병원이다. 현재 50여 명이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 간병부터 식사까지 모든 것이 무료다. 환자 대부분은 70대 이상 고령층으로, 거동이 불편하거나 치매, 암 등을 함께 앓고 있다. 결핵은 전염성이 강하기 때문에 가족의 간병이나 병문안이 어렵다. 이 때문에 환자들의 치료는 물론, 간병이나 일상의 말동무까지 모두 의료진의 몫이다.

    지난 4일 오후 2시 간호사 3명이 병실로 향했다. 병실에는 의식이 없는 90대 환자가 누워 있었다. 요양병원에서부터 의식이 없었던 이 환자는 결핵 진단을 받고 국립목포병원으로 이송됐다. 간호사들은 환자의 욕창을 방지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자세를 바꿔주고 전신 안마를 해줬다. 콧줄로 식사와 처방약이 잘 들어가는지도 확인했다. 그렇게 환자 한 명을 살피는 데 30분이 걸렸다.

    치매 병실로 간 간호사들은 환자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식사는 어땠는지, 요즘 무슨 드라마를 보는지 등 사소한 이야기를 나눴다. 병원에서 19년째 일하고 있는 김수남 간호사는 "결핵 환자들이 느끼는 가장 큰 고통은 소외"라고 했다. 결핵에 걸리면 주변 사람은 물론, 일부 의료진까지 외면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김 간호사는 "일부러 내 부모님이라는 마음으로 친근하게 다가가려고 노력한다"며 "오히려 이곳에서 치매가 호전되는 환자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밀착 관리는 국립목포병원이 가진 전문성의 핵심이다. 결핵은 6개월 이상 10개 정도 약을 매일 먹어야 치료할 수 있다. 환자들은 며칠만 약을 먹어도 증상이 호전되기 때문에 꾸준히 약을 먹지 않는 경우가 많다. 박 원장이 "결핵 치료는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말할 정도다. 그렇기 때문에 의료진이 옆에서 살펴봐주고 격려하는 게 치료에 중요하다.

    지금까지는 요양병원에 있다가 결핵에 걸린 환자들이 오갈 데 없어 난감한 경우가 많았다. 2016년부터는 민간 병원에서 진료를 받아도 국가가 입원, 치료 등의 비용을 지원하지만 고령 환자들은 오랜 기간 간병이 필요하기 때문에 비용이 큰 부담이었다. 질병관리청과 국립목포병원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손을 잡았다.

    질병청은 지난해부터 시범사업으로 추진하던 '치료간병통합지원사업'을 올해부터 전국으로 확대 시행한다.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서 결핵 환자가 발생하면 환자와 보호자에게 국립결핵병원을 안내하고 이송하는 시스템을 갖췄다. 이 사업이 도입된 이후 국립목표병원 의료진은 환자를 모시기 위해 전국을 다닌다. 최근에는 환자 한 명을 위해 목포에서 서울 구로구까지 왕복한 적도 있다.

    국립목포병원을 소개받고 어머니를 입원시킨 보호자 김재철 씨는 "처음 어머니가 결핵 진단을 받았을 때 심장이 철렁했다. 국립목포병원이 아니었으면 어떻게 했을지 상상도 안 된다"고 말했다. 결핵과 함께 치매를 앓고 있는 그의 어머니는 국립목포병원에서 빠른 속도로 호전되고 있다.

    이곳 의료진은 어려운 상황에 놓인 결핵 환자가 더 많이 국립목포병원을 찾으면 좋겠다고 했다. 박 원장은 "우리나라는 아직도 결핵의 사각지대가 많다"며 "그들은 대체로 어려운 환경에 놓여 있기 때문에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안타까워했다. 무료로 치료받을 수 있는데, 적어도 몰라서 치료를 못 받는 경우는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후진국 병' 결핵은 한국에서는 여전히 흔한 질병이다. 2023년 기준 국내 결핵 환자는 1만9540명에 달한다. 10만명당 38.2명꼴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2위다. 매년 조금씩 낮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높은 수치다. 이 중 60%가 65세 이상 고령층이다.

    [목포 최원석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