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공간 안의 온도, 소음 등의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토대로 화면에 송출되는 이미지를 실시간 편집해 보여주는 영상 작품 '카마타'. 연합뉴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앞으로 마주하게 될 어두컴컴한 전시장 안에는 어떤 고정된 형식도, 완성된 결과물도 없다. 내 존재가 일으키는 미묘한 온도, 습도, 소음 등의 변화가 영상 작품 속 장면, 공간을 채우는 소리와 냄새조차 시시각각 변화시킨다. 종종 소름 끼치는 기괴함을 맞닥뜨릴 수도 있다. 그것이 인간 존재에 대한 불편함에서 기인하는지, 인간 너머의 가능성을 품은 새로운 시각인지는 관람객 나름의 탐구가 필요하다.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에 질문을 던지며 존재 간 복합적 상호작용을 작품으로 만들어온 프랑스 현대미술 작가 피에르 위그(63)가 아시아 최초로 한국에서 개인전을 연다. 서울 리움미술관에서 이달 27일부터 7월 6일까지 개최하는 전시 '리미널'이다. 지난해 이탈리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선보였던 동명의 화제작 '리미널'(2024)부터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상념을 남기는 영상 작품 '휴먼 마스크'(2014)까지 최근 10여 년의 작품 12점을 선보인다. 리움미술관이 피노 콜렉션의 베니스 소재 유명 미술관인 '푼타 델라 도가나'와 작가의 신작 제작을 공동 지원해 성사됐다.
어둠으로 들어가기 전부터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입구 발치에 걸리는 작은 상자 크기의 현무암 조각품 '에스텔라리움'은 좋은 길잡이가 돼준다. 오목한 표면은 출산 직전 임신부의 부푼 배를 본뜬 것이다. 생명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부드러운 곡선, 펄펄 끓어오르던 용암이 공기와 만나 굳은 돌의 물성 저마다 존재와 부재의 경계를 상징한다.
위그는 '리미널'(경계)을 "생각지도 못한 무엇인가가 출현할 수 있는 과도기적 상태"라고 본다. 끊임없는 진화를 상정하고, 함부로 예측하는 것은 거부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은 일종의 실험처럼 보이기도 한다. 가령 작품 '리미널'은 언뜻 한 여성의 나체가 등장하는 한 편의 영상물로 보이지만, 실상은 좀 더 복잡하다. 우선 화면 속 나체 형상은 얼굴 없이 공허에 둘러싸인 비인간이다. 머리가 뻥 뚫려 으스스하다. 화면 속 형상의 움직임과 시선은 화면 밖 관람객 주변의 환경을 감지해 실시간으로 바뀐다. 인간과 비인간의 교류 현장인 셈이다.
기이함을 느끼고 발걸음을 옮길 때쯤 관람객은 금색 가면도 맞닥뜨리게 된다. 어둠 속에 어렴풋이 떠오르는 가면들은 종종 알 수 없는 소리도 내뱉는다. 그 자체가 하나의 작품 '이디엄'(2024)이다. 가면을 쓰고 있는 건 실제 사람이고, 이들이 내는 소리 역시 주변 정보를 반영해 실시간으로 생성된다. 여기에 더해 전시장 한쪽에서 안개, 소리, 체취, 빛 등을 뿜어내는 기계 '오프스피링'(2018)도 외부 조건을 학습해 변화하는 이른바 '자기 생성 도구'다.
위그의 작품은 이렇듯 시시각각 진화한다. 전시 동선상 가장 마지막에 있는 대형 영상 작품 '카마타' 역시 전시 공간 안의 온도, 습도, 소음 등의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토대로 화면에 송출되는 이미지를 실시간 편집해 보여준다. 스크린 맞은편 기둥에 달린 금색 구가 센서다. 새로운 이미지를 계속해서 펼쳐내니 영상엔 시작과 끝이 없다. 그 내용도 심오하다. 지구상 가장 오래되고 건조하다는 칠레 아타카마 사막에 놓인 해골과 그 주변을 둘러싼 로봇 팔들의 불가사의한 의식을 비춘다. 생명 없이 남겨진 인간의 유해와 움직이는 기계가 빚어내는 장면은 마치 인간 멸종 이후의 세계 혹은 인간과 기계의 새로운 관계 등을 암시하는 듯하다.
전시장엔 말 그대로 살아 숨 쉬는 작품도 있다. '주드람 4' 등 각각 제목이 붙은 세 개의 수족관 작품이다. 수족관은 소라게, 말미잘, 물고기 등의 서식지이자 생물들의 진화 과정을 보여주는 실험장으로서도 기능한다. 또 다른 작품 'U움벨트-안리'와 여기에 연동된 '암세포 변환기'에는 실제 암세포가 배양되고 있다. 연구용 암세포(헬라세포)로, 세포 환경 변화의 데이터가 스크린에 연동돼 반영된다. 삼성서울병원과의 협업이다.
위그는 "내 작업은 인간 존재론에 대한 보편적이고 기본적인 질문이자 그 원형에 대한 탐구"라고 설명했다. 전시를 기획한 김성원 리움미술관 부관장은 "작가의 최근 작업은 기존의 인간 개념이나 현실과는 완전히 다른 '인간 이후' '인간 바깥의 세계'를 탐구하고 있다"며 "전시는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는 게 아니라 보는 사람 스스로 경험하고 질문을 찾는 과정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리움미술관은 삼성문화재단 창립 60주년을 기념하는 '리움 현대미술 소장품전'을 M2 전시장과 로비에서 27일부터 개최한다.
[정주원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