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0 (일)

이슈 '위안부 문제' 끝나지 않은 전쟁

나치박물관에서 만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44명의 눈빛

0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독일 쾰른의 나치기록박물관에서 지난 7일부터 열리고 있는 기획 전시 ‘2차 세계대전 시기의 제3세계’에 전시된 인도네시아 ‘위안부’ 피해자들의 초상화. 인도계 네덜란드인인 얀 배닝 작가의 작품으로, 독일에서는 처음 전시됐다. 장예지 특파원 penj@hani.co.kr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김순옥, 박두리, 문필기, 길원옥, 강덕경, 이용수, 이옥선, 김순덕, 김군자, 심달연, 박옥련, 송신도, 김용숙(북한), 곽금례(북한), 이상옥(북한), 박용심(북한).



독일 쾰른의 나치기록박물관에서 지난 7일부터 열리고 있는 기획 전시 ‘2차 세계대전 시기의 제3세계’에 소개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44명의 명단 중 조선 출신 피해자들의 이름이다. 한반도를 비롯해 중국과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 아시아 지역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사진은 전시를 찾은 관람객들을 가만히 응시한다.



이 기획전은 2차 세계대전 종전 80주년을 맞아 쾰른에서 지난 7일부터 시작돼 오는 6월1일까지 열린다. 2차 세계대전이 ‘유럽의 전쟁’이라는 유럽의 역사적 통념을 깨고, 아시아와 아프리카, 오세아니아에서 벌어졌던 전쟁의 참상을 보여준다. 이 전쟁은 서유럽이 아닌 제3세계에서 더 많은 군인이 참전했지만, 기억의 무게추는 유럽을 비롯한 서방에 치우쳐 있다.



독일 쾰른의 나치기록박물관 전경. 장예지 특파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기획전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문제가 핵심적으로 다뤄진다. 세계 여성의 날인 8일 박물관 앞엔 ‘평화의 소녀상’도 설치됐다. 과거 게슈타포(나치 비밀경찰) 본부가 있었던 박물관 건물은 지금은 한 해 9만명가량이 방문하는 역사적 장소다.



지난 6일 나치기록박물관에서 한겨레와 만난 ‘2차 세계대전 시기의 제3세계’ 전시기획자 카를 뢰셀. 그의 뒤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 44명의 사진과 이름이 담긴 걸개막이 걸려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전시회가 열리기 전날인 지난 6일 나치기록박물관에서 한겨레와 만난 전시기획자 카를 뢰셀은 “소녀상은 아시아와 태평양 지역에서 끌려간 여성의 역사를 넘어선 이야기를 한다. 유럽에서 일어난 전쟁으로 폭력을 당한 여성들, 그리고 오늘의 전쟁을 말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했다. 저널리스트이자 역사 연구자인 뢰셀은 독립 연구단체에서 40여년간 식민지 국가의 관점에서 2차 세계대전을 연구하는 일에 몰두했다. 그는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을 다니며 이야기를 들었고, 희생자 인터뷰를 모았다”며 “자신은 돈도, 배상도 원하지 않고, 일본이 자신들의 전쟁범죄를 인정하는 것만 바랄 뿐이라고 말한 한국인 희생자의 인터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뢰셀이 말한 인물은 2013년 1월, 91살 일기로 별세한 황금주 할머니다. 전시관에선 독일어와 영어, 프랑스어, 포르투갈어로 더빙된 육성 증언을 들을 수 있다. “내 이름은 황금주”로 시작하는 할머니의 육성은 2000년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 국제 법정에서 증언한 목소리다. 또한 19살에 일본 군수공장에 취업을 시켜주겠다는 말에 속아 ‘위안부’ 생활을 했던 황 할머니를 “1990년대 일본 정부에 사과와 배상을 요구한 최초의 여성 중 한 명”이라고 소개했다.



이 전시에선 황금주 할머니의 육성 증언을 들을 수 있다. ‘아시아 여성에 대한 일본의 전쟁범죄’라는 제목으로 ‘위안부’ 문제의 진행 경과와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의 결함 등을 설명하는 전시물.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번 전시는 ‘아시아 여성에 대한 일본의 전쟁 범죄’라는 제목으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책임을 분명히 묻는다. 1990년 창립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의 활동과 2000년 국제법정을 소개하며 “일본 정부는 책임을 지고 피해자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문구도 포함됐다. 일본 정부는 2015년 12월 체결한 한일 ‘위안부’ 합의로 이 문제가 모두 해결됐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박물관은 “피해자들은 (합의 체결에) 참여하지 않았고,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위안부’가 일본군에 의해 ‘강제 납치’ 되었다는 증거가 없다고 다시 선언했다”며 “일본 정부가 2차 대전 당시 일본이 저지른 범죄를 비판적으로 들여다보는 것을 계속 거부했기 때문에 합의는 실패했다. 2025년까지도 변한 것은 없다”고 명시했다.



지난 7일 쾰른 나치기록박물관에서 열린 ‘2차 세계대전 시기의 제3세계’ 전시에 관한 워크숍엔 200명이 넘는 시민이 몰렸다. 소녀상 설치를 위해 협력한 재독 시민단체 코리아협의회의 한정화 대표도 워크숍에서 현재 독일 시민사회에서 소녀상의 의미와 일본 정부가 지속해온 소녀상에 대한 압박 등의 문제를 발표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전시에선 일본의 조선인 강제징집과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카시 원자폭탄 투하로 피폭자가 된 강제동원 노동자들의 이야기도 다뤄졌다. “일본은 13살 또는 14살 정도의 학생 15만5000명을 징집했고, 이들은 일본군을 위해 무기와 장비를 운반하고 배와 기차에 짐을 실었다”며 “1만명의 조선인 소년병이 전선에 보내졌다”는 설명도 실렸다. 히로시마에 건립된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 사진과 함께 1945년 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 투하로 목숨을 잃은 노동자 5만명에 대한 소개도 담겼다. 한반도를 넘어 1930~40년대 중일 전쟁의 역사와 1937년 난징대학살, 일본군의 인도네시아 침략도 두루 다뤘다.



이번 전시에선 ‘일본의 전쟁과 관련된 한반도의 중요성’이란 주제로 일본의 아시아 침략 과정에서 한반도의 역할을 다뤘다. 일본의 조선인 강제징집, 1945년 원폭 피해자가 된 강제동원 노동자들의 이야기와 함께 히로시마에 건립된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 사진이 실렸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뢰셀은 소녀상을 비롯한 ‘위안부’ 문제에 일본 정부가 민감하게 대응해온 것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전시 기간 한시적으로 이곳에 소녀상을 세우기로 하는 과정도, 베를린 등 다른 지역 소녀상 전시가 그러했듯 순탄하지 않았다. 헨리에테 레커 쾰른 시장이 올해 초 소녀상을 박물관 앞 공공 부지가 아닌 박물관 인근 민간 부지에 설치하자고 제안했다. 뢰셀은 “우리는 이미 2년 전부터 기획 전시를 준비했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레커 시장이 교토에 다녀온 뒤, 쾰른시는 시 당국이 시유지 등 공공 부지에 기념물을 설치하는 결정을 단독으로 내릴 수 없기 때문에 시 정부 산하 분과위원회인 정치위원회의 검토와 판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고 했다. 뢰셀을 비롯한 전시기획자들은 “우리는 싸워야 했다”며 쾰른 시민단체들과 연대해 쾰른시장과 시 의회, 정당들에 공개편지를 보내고, 언론에 적극 알리는 등 레커 시장의 결정에 문제를 제기했다. 이후 정치위원회는 만장일치로 지금의 자리에 소녀상 설치를 찬성하면서 레커 시장도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는 게 뢰셀의 설명이다.



지난 1월24일 쾰른시 지역언론에 보도된 쾰른시 시장의 평화의 소녀상 설치 금지 요구에 관한 보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그는 “시 당국은 공식적으론 일본이 영향력을 미치려 했다는 걸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난해 쾰른시와 뒤셀도르프 일본총영사가 만났을 때, 총영사는 쾰른이 속한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에서 누구도 소녀상을 세우려는 아이디어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우리는 다른 여러 소식통에게서 이 이야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쾰른시와 갈등한 끝에 소녀상을 세울 수 있게 된 뢰셀은 전시관 한쪽에 이 문제를 다룬 언론 보도도 함께 전시했다.



독일 나치기록박물관에 전시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44명의 모습. 김순옥, 박두리, 문필기, 길원옥, 강덕경, 이용수, 이옥선, 김순덕, 김군자, 심달연, 박옥련, 송신도, 김용숙(북한), 곽금례(북한), 이상옥(북한), 박용심(북한) 할머니 등이 소개됐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쾰른/글·사진 장예지 특파원 penj@hani.co.kr



▶▶한겨레는 함께 민주주의를 지키겠습니다 [한겨레후원]

▶▶실시간 뉴스, ‘한겨레 텔레그램 뉴스봇’과 함께!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한겨레 주요 뉴스

해당 언론사로 연결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