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정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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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권에서 가계대출 금리인하요구권 평균 수용률이 가장 낮은 곳은 은행인 것으로 나타났다. 매년 수십조원의 이자이익을 내는 은행이 정작 금융 소비자의 금리 인하 요구에 가장 인색했던 것이다. 문제는 고물가와 경기 침체 여파로 이자 부담을 낮추기 위해 금리 인하를 요구하는 대출자들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 당국은 금융사의 금리인하요구권 운영 실태를 점검하기로 했다.

11일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국내 19개 은행의 지난해 하반기 가계대출 금리인하요구권 평균 수용률은 28.5%(단순 평균치)였다. 신청자 10명 중 2명만 수용, 나머지 8명은 퇴짜를 맞았단 의미다. 이는 다른 금융권과 비교해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지난해 하반기 업권별 평균 수용률은 카드사 66.9%, 생명보험사 51.8%, 손해보험사 47.7%, 저축은행 37.8%였다.

금리인하요구권은 승진, 취업 등으로 소득이 늘거나 빚을 성실히 갚아 신용도가 높아질 경우 대출자가 직접 금융회사에 금리를 인하해 달라고 요구할 수 있도록 한 권리다. 은행, 보험, 저축은행 등에서 받은 대출 외 카드사 리볼빙 수수료도 금리인하요구권 대상이다. 각 업권의 협회는 매년 반기(1~6월, 7~12월)별로 두 차례 회원사의 금리인하요구권 운영 실적을 공시하고 있다.

은행의 가계대출 금리인하요구권 평균 수용률은 2023년 상반기 34.6%였으나, 지난해 상반기 31.2%로 낮아진 뒤 하반기엔 28%대까지 떨어졌다. 다른 업권도 지난해 하반기 수용률이 떨어지긴 했으나, 지난 2년간 은행의 추세적 하락이 두드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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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금리인하요구권 신청 건수는 늘고 있다. 지난해 은행에 연간 접수된 건수는 총 256만9999건으로, 2023년(254만4898건)과 비교해 2만건 이상 늘었다. 저축은행, 보험사(생보·손보 합산) 역시 마찬가지였다. 저축은행의 금리인하요구권 신청 건수는 지난해 16만여건으로 전년 대비 30.4%(3만9315건) 늘었으며, 보험사는 13만여건으로 같은 기간 신청 건수가 72.3%(5만6136건) 급증했다.

금리인하요구권 신청이 늘어난 것은 그만큼 버거운 이자 부담을 낮추려는 대출자들이 많다는 뜻이다. 은행 관계자는 “고금리가 장기화한 영향에 이자 부담을 낮추기 위해 금리 인하를 문의하는 대출자들이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라며 “금리인하요구권에 대한 지속적인 안내와 신청 절차 간소화 등으로 신청자가 증가하기도 했다”고 했다. 금리인하요구권 비대면 신청률은 90%대에 달한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비대면을 통해 쉽게 금리인하요구권을 신청할 수 있게 돼 자격 여부와 상관없이 일단 신청하고 보자는 수요가 많이 늘어난 영향도 있다”며 “이로 인해 수용률이 낮아진 점도 있다”고 했다.

금융 당국은 금리인하요구권 활성화를 위해 운영 현황을 점검할 계획이다. 금융 당국은 2019년 6월 금리인하요구권 법제화 후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2023년 신청 건수, 수용 건수, 이자 감면액, 수용률 등 공시 내용을 다양화하고, 금융사가 불수용 사유를 신청자에게 자세히 알리도록 했다. 그럼에도 금리인하요구권 수용률이 높아지지 않는 것은 심사 기준이 ‘깜깜이’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권은 심사 기준을 표준화하는 것은 과도한 시장 개입이라고 반발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가격인 금리를 어떤 기준으로 내릴지에 대한 권한은 금융사가 갖고 있는 것인데, 일률적인 심사 기준을 따르도록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했다.

김보연 기자(kby@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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