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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5 (토)

[fn사설] '오지라퍼' 이창용의 고정관념 깨부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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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왼쪽)와 김용 전 세계은행 총재가 14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100주년기념관에서 열린 글로벌지속가능발전포럼(GEEF)에서 대담하고 있다. 이 총재는 이날 기조연설에서 "우리나라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0.75명으로 1년 전(0.72명)보다 소폭 상승했지만, 이 출산율이 계속되면 2050년대 이후 마이너스(-) 성장을 피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경고했다. /사진=뉴스1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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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사회적 논란이 일었던 '부자동네 대입 상한선'과 같은 파격적 교육제도 개혁을 거듭 제안했다. '7세 초등 의대반'과 같이 망국적 사교육을 잡지 못하면 결혼 기피와 저출생 심화, 서울·수도권 밀집, 집값 과열 등 인구와 양극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지론을 재차 피력한 것이다.

이 총재는 14일 글로벌지속가능발전포럼(GEEF) 기조연설에서 "서울대 입학생 중 강남 3구 출신 비율은 학령인구 비율(4%)의 세 배인 12%에 달한다"며 "이는 사교육이 강한 강남권이 상위권 대학으로 가는 주요 관문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꼬집었다.

그가 제안한 해법은 지역별 학령인구 비율을 반영한 대입 비례 선발 제도다. 대학에 자발적 자율적 전형 권한을 주는 것이다. 입시 개혁과 함께 거듭 거론한 '2∼6개 거점도시 육성'과도 이어진다.

요컨대 사교육을 더 받은 부자 동네 아이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현행 대학 입시 제도가 악순환의 근원이라는 게 이 총재의 주장이다. 역차별 논란을 불러온 지난해 발언보다 완곡해지긴 했으나, 논지의 핵심을 건설적 논쟁으로 확장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오지라퍼'(오지랖이 넓은 사람을 일컫는 말) 이 총재의 발언은 기득권층이 듣기엔 불편하지만 정곡을 찌른다. 지난해 사과 값 폭등에 "농산물 수입을 근본적 해법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하자 발끈한 관계부처 장관이 반박까지 했다. 부족한 가사 돌봄 외국인 인력 활용을 꺼내며 "외국인 근로자는 차등 임금을 적용하자"고도 했다.

올 들어선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의 헌법재판관 임명을 비난한 국무위원을 향해 "또 탄핵되면 과연 정부가 작동할 수 있느냐. 답답하다.(나라 경제) 고민 좀 하라"고 쓴소리를 했다. 추가경정예산(추경) 중에 13조원을 '25만원 민생지원금'으로 전국민에 뿌리겠다고 하자 "잘 되는 자영업자만 더 잘 될 것"이라고 야당을 대놓고 쏘아붙였다.

이렇듯 이 총재가 오지랖 넓게 쓴소리를 쏟아내니 못마땅한 여야 정치인과 고위 관료들이 공히 벼르고 있긴 하다. 딱히 틀린 말도 아니니 대놓고 반박하지 못하는 것 아니겠나.

망국적 사교육과 대학 입시 경쟁에 청년들은 결혼과 출산을 미루고, 서울·수도권 인구 밀집, 강남 등 주요 학군 부동산 폭등과 빈부 양극화로 악순환한다. 기존 질서에 익숙해 손놓고 있으면 저출생은 물론, 계층이동 사다리는 완전히 단절되고 양극화의 골은 깊어질 것이다.

생산인구가 줄고 경제성장률이 저하되면 나랏빚은 늘고 정부재정은 점점 쪼그라들게 돼 있다. 저출생이 이미 경제성장률을 심각히 갉아먹고 있다. 2050년대엔 마이너스 성장으로 역주행이 가속화할 것이다.

속은 곪아 터지는데 연고만 발라 덮는다고 낫지 않는다. 5년 짜리 정권이 코 앞만 내다보고 뿌려대는 현금 지원과 같은 선심성 포퓰리즘 정책도 그런 것이다. 현 세대가 누린 '공짜 혜택'에 불어난 나랏빚을 결국엔 얼마 안 되는 청년세대들이 갚아야 한다.

문제를 잘 알고 있는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뻔한 말만 해선 관행적 질서를 개혁하기 어렵다. 고정관념을 깨부수는 이 총재의 발언과 같이 창의적 파격적 제안을 권장하고 건설적 논쟁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길 고대한다. 그래야 어려운 개혁이 수월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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