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가전브랜드/사진=중국 인터넷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중국에서 지낼 때, 가장 자주 눈에 들어온 백색가전은 에어컨이다. 집, 회사 어디를 가도 항상 거리전기, 메이디가 만든 콩탸오(空調·공기조절기)가 보였다. 중국은 에어컨(에어 컨디셔너)을 뜻 그대로 풀이해서 콩탸오로 부른다. 십몇년 전 봤던 흰색 콩탸오는 투박했지만 기능은 쓸만했다. 나중에 한국이나 외국에서도 중국 에어컨을 쓸 날이 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중국 제조업이 지금처럼 성장할 줄은 예상치 못했다. 에어컨·세탁기 등 백색가전은 말할 것도 없고 글로벌 프리미엄TV 시장에서까지 중국 가전업체들의 추격이 가속화되고 있다.
━
지난해 1286억달러를 기록한 중국 백색 가전 수출
━
중국 백색가전 수출 동향/그래픽=윤선정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작년 중국 백색가전 수출은 전년 대비 14.8% 증가한 1286억달러를 기록했다. 2013년 632억달러였던 냉장고와 세탁기·에어컨 등 중국의 백색가전 수출이 11년 만에 두 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중국 백색가전 수출은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을 전후로 급증했다. 2020년에는 17.2% 늘어난 935억달러, 2021년에는 전 세계적인 코로나 유행으로 무려 25.2% 급증한 1171억달러를 기록했다. 그 후 '위드 코로나'로 전환되기 시작한 2022~2023년에는 다소 주춤해졌다가 작년에 14.8% 늘어났다.
국가 별로 보면 대미국 수출이 235억달러로 1위를 차지했으며 일본이 2위(75억달러)를 차지했다. 중국 백색가전의 대한국 수출은 40억달러로 5위를 기록하는 등 한국에도 중국 백색가전이 밀려들었다.
2021~2024년 백색가전 품목별 수출추이/그래픽=이지혜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작년 중국 백색가전 수출을 견인한 건 대형 가전제품이다. 중국 기계전자수출입상회에 따르면 37개 가전 제품 중 에어컨, 냉장고, 냉동고 수출량이 4년 사이 최고치를 경신했다. 특히 에어컨은 전년 대비 28.3% 증가한 8500만대에 달했으며 냉장고는 17.9% 증가한 6050만대, 냉동고는 23.4% 늘어난 2630만대를 기록했다. 세탁기 수출도 14.2% 증가한 3290만대에 달했다.
2021년부터 살펴봐도 에어컨 수출량은 6670만대를 기록한 후 잠시 주춤하다가 2024년 8500만대로 증가하는 등 성장세가 역력하다. 중동 국가로의 수출도 급증했다. 작년 중국이 중동 최대 시장 사우디아라비아로 수출한 에어컨 금액은 10억8000만달러에 달한다. 이라크에도 8억2300만달러어치 에어컨을 팔았다.
작년 가전 제품 수출 호조에 대해, 저우난 중국 기계전자수출입상회 가전제품 부문 사무총장은 "전 세계 가전시장이 회복되면서 중동·북아프리카·아세안 등 신흥시장 국가로의 수출이 호조세를 보였으며 유럽·미국 시장도 회복세를 보였다"고 평가했다. 그는 "작년 초는 해외시장의 재고 보충으로 수출이 늘었고, 연말에는 트럼프 취임 후 관세가 나올 것이란 우려로 수출이 급증했다"고 덧붙였다.
2020년 이후의 두 자릿수 성장으로 중국 가전산업은 전 세계 가전업계 경쟁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중국 경제매체 차이신에 따르면 이제 거리전기·메이디·TCL 등 대형 가전업체뿐 아니라 중소 가전업체도 해외 진출에 눈을 돌리고 있다. 중국 광둥성 중산시의 한 가전업체 경영진은 "이전에는 국내에서 앞서 가는 대형 가전브랜드만 해외진출에 나선다고 여겼는데, 지금은 중소 가전업체도 모두 해외진출을 서두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방식뿐 아니라 조영(JOYONG·두유메이커), 로얄스타(Royalstar) 등 자체 브랜드로 해외 시장을 개척하는 중소 브랜드가 늘었다"고 부연했다.
━
LG를 제치고 글로벌 프리미엄 TV 시장 2위를 차지한 TCL
━
글로벌 프리미엄TV 시장 점유율/그래픽=김지영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중국 가전업체는 몸집을 불리면서 삼성·LG가 차지하는 프리미엄 시장으로의 진출을 시도하고 있다. 대표적인 제품이 TV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 리서치에 따르면 중국 가전업체 TCL은 작년 4분기 글로벌 프리미엄 TV 시장에서 20%의 점유율로 LG전자(19%)를 제치고 2위를 차지했다. 1위는 삼성전자(29%)가 차지했지만, TCL·하이센스가 1년간 점유율을 각 8%포인트, 6%포인트 끌어올리며 약진했다.
지난해 글로벌 프리미엄 TV 시장은 출하량 기준 38% 성장했으나, TCL·하이센스 등 중국 브랜드가 공략을 가속화하면서 삼성·LG의 점유율이 줄어든 것이다.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IT 전시회 'CES 2025'에서 TCL은 할로(Halo) 컨트롤 시스템, 144Hz의 주사율, 자체 개발한 AiPQ 프로(Pro) 프로세서, 구글 TV 등이 탑재된 차세대 퀀텀닷(QD)-미니 LED TV인 'QM6K TV' 시리즈를 선보였다. 하이센스도 진일보한 미니 발광다이오드(LED) TV 기술력이 적용된 116인치 '트라이크로마(Trichroma) LED TV'를 선보이며 기술력을 과시했다.
하이센스는 지난 2016년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 2016'을 중국 기업 중 유일하게 후원하는 등 스포츠 대회 후원에도 일찍부터 투자하며 해외에서의 브랜드 인지도가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일본은 빅카메라 등 대형 가전 양판점에서 TCL·하이센스 제품이 높은 가성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일본 시장조사업체 BCN리서치에 따르면 작년 중국 하이센스(레그자 포함)가 41.1%로 1위를 차지했다. 레그자는 도시바 브랜드였으나 2018년 하이센스가 인수했다. TCL 점유율은 9.7%로 중국 양사의 점유율이 51%에 달했다.
TCL은 미국에서 베스트바이, 코스트코 등 현지 유통채널과의 협력을 늘리면서 시장 진출을 가속화하고 있다. 카운터포인트 리서치에 따르면 작년 북미 프리미엄 TV 시장에서 삼성·LG 등 한국 TV의 점유율은 53%에 달했는데, 중국 업체의 도전이 거세질 전망이다.
향후 중국 가전업체들의 해외진출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중국 시장의 성장 둔화 및 경쟁 격화로 해외 시장의 중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작년 중국 가전시장 판매금액은 9071억위안(약 181조원), 수출금액은 8205억위안(약 164조원)으로 해외 시장 규모가 중국 시장의 90%에 달했다. 중국 내수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차라리 해외시장, 특히 수요가 급증하는 신흥시장을 개척하는 게 더 쉬운 선택이 됐다.
앞으로 5년 중국 가전업체들이 글로벌 가전업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빠르게 증대될 것으로 보인다. 이제 삼성·LG가 과거에 우리가 쫓던 소니, 도시바 같은 일본 가전업체의 처지에 놓인 것이다. 맹추격해오는 중국 가전업체들을 어떻게 해야 따돌릴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할 때다.
김재현 전문위원 zorba00@mt.co.kr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