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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구호기구, 미국에 사상 검증 당해…‘반미’ 관련 답변 강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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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의 구호 기구들을 설명하는 유엔 누리집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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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의 구호 기구들이 미국 정부에 의해 ‘사상 검증’을 강요받고 있다.



유엔의 구호 기구들은 최근 미국 정부로부터 ‘반미’적인 신념이나 단체와 연관이 있는지를 밝히도록 요구하는 질문지를 받았다고 비비시가 16일 보도했다.



미국 예산관리처(OMB)가 발송한 이 질문지에는 36개 질문이 있고, 이 중에는 공산주의와 관련성을 묻는 말이 있다. 유엔 난민기구 및 국제적십자 등 세계 최대의 인도적 구호기구들도 이 질문지를 받았다.



유엔 기구들은 미 예산관리처의 이런 조처는 트럼프 행정부가 유엔 차원에서도 인도적 업무를 포기하려는 신호로 우려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미 출범 첫날에 세계보건기구(WHO) 에서 미국을 탈퇴시켰다. 미국은 해외 원조에서 유럽 국가들보다도 국내총생산(GDP) 대비 낮은 비율의 예산을 쓰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경제 규모가 커서 세계 전체 인도적 활동 비용의 40%를 담당하고 있다.



질문지 중에는 “귀하의 기구가 공산주의, 사회주의자, 전체주의적 정당, 혹은 반미적인 신념을 가진 정당들과 연관된 실체들과 일하지 않는 것을 확인할 수 있나?”라는 질문이 있다. 또 다른 항목은 중국, 러시아, 쿠바, 이란 등으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지 않는다는 확인을 요구하고 있다. 이 국가들은 미국의 우방이 아니나, 유엔 회원국으로서 그 기구들에 자금을 지원한다.



질문지에서는 또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 이후 부정하는 다양성, 평등성, 포용성 등을 장려하는 다양성(DEI) 정책이나 기후변화와 관련된 요인들이 포함된 프로젝트를 하지 말라고 요구하고 있다. “미국의 공급망 강화나 희토류 확보를 위한 노력”에 영향을 줄 수도 있는 프로젝트에 대한 질문도 있었다.



유엔인권이사회는 미국이 요구하는 이 질문지에 답하기를 거부하기로 결정했다. 유엔인권이사회의 한 대변인은 비비시에 “상세한 설명을 채울 여지가 없이 대부분 ‘예/아니오’식의 질문이고, 질문 중 일부는 유엔에 적용되지 않음을 감안할 때 우리는 이 온라인 질문에 직접 답할 위치에 있지 않았다”고 밝혔다. 대변인은 “대신에 우리는 대응을 할 수 있는 질문에는 설명을 붙여서 이메일로 답장했다”고 밝혔다.



이 질문지를 받은 유엔 구호 기구들의 다수는 폐쇄 결정이 내린 미국국제개발처(USAID)가 아니라 미국 정부로부터 직접 비용을 받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출범 이후 연방 정부 예산 절감을 목표로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정부효율부를 통해 대대적인 연방정부 기구 구조조정을 하며, 특히 미 정부 내 해외원조 기구 및 그 활동들을 겨냥하고 있다.



미국 정부의 이런 요구는 여성에 대한 교육기회 평등을 지지하는 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이나 기후변화 영향으로 가뭄과 홍수로 인한 기근을 방지하려는 세계식량기구(WFP) 등의 활동을 부정하는 것이다. 스위스 제네바대학 인도주의학센터의 칼 블랑세 교수는 “결정은 이미 내려졌다”며 “미국이 유엔의 어떠한 시스템에서도 관여를 중단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유엔 구호 기구들은 이 질문지가 자신들의 중립성 및 불편 부당성이라는 핵심 원칙에 대한 오해를 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유엔 구호 기구들은 전쟁이나 자연재해로 고통받는 주민들은 정치적 신념과 상관없이 도움받아야 하고, 구호는 특정 국가를 강화하는 도구로 사용돼서는 안된다고 밝히고 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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