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오르는 단어는 비겁함뿐이다. 비겁함은 단순한 성격적 결함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병적인 현상이며 우리 사회의 공적 시스템을 좀먹는 만성적 질환이다. 그것은 구조적으로 재생산되며 마치 사회적 전염병처럼 퍼져나간다. 정치인, 행정가들이 보여주는 비겁함은 단순한 나약함이나 도덕적 결핍이 아니라 일종의 병적인 상태이다. 이러한 비겁함이 도를 넘어선 현상을 마주할 때 시민들은 극심한 도덕적 충격과 좌절을 경험하며 이로 인해 사회적으로 감내해야 할 고통이 깊어진다.
역사적으로 볼 때, 권력을 가진 집단이 비겁함을 보이는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도덕적 이상보다 현실적 계산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인의 비겁함이 반복된다는 것은 단순한 전략적 선택이 아니라 시스템적으로 굳어진 병리적 현상이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의학적으로 ‘병리적 비겁함’을 정의할 수 있을까? 심리학에서는 ‘도덕적 회피’라는 개념이 있다. 이는 사람들이 자신의 도덕적 책임을 부정하거나 희석하는 심리적 과정으로, 대중 앞에서 책임을 회피하는 정치인들에게서 쉽게 발견된다. 스탠리 밀그램의 ‘복종 실험’(1961년)과 해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함’ 개념에서도 나타나듯이 권력자는 자신의 책임을 구조적 요인으로 전가하며 도덕적 판단을 피하는 경향이 있다.
첫째, “어쩔 수 없었다”라는 비겁함이다. 이는 책임을 외부 요인에 돌리는 가장 흔한 방식이다. 정치인들은 결정이 잘못되었을 때 “불가항력이었다”라거나 “국제 정세 때문이었다”라는 식으로 변명한다. 이것은 병적인 ‘자기합리화’라 할 수 있다. 둘째, “최선을 다했다”라는 비겁함이다. 이 말은 책임을 회피하는 또 다른 방식이다. 그러나 ‘최선’이란 상대적 개념이며, 실제로는 무능함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사용된다. 그렇지만 최선을 다했다는 말만으로 결과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셋째, “누구 때문에 못했다”라는 비겁함이다. 책임을 타인에게 떠넘기는 것은 오래된 전략으로 ‘야당이 반대해서’ ‘관료들이 협조하지 않아서’라는 식의 변명은 흔하다. 심리학적으론 ‘책임 회피’이며 인류학적으론 ‘희생양 만들기(scapegoating)’의 전형적인 사례다. 역사적으로 독재정권은 항상 외부의 적을 만들어 자신의 무능을 감추려 하지 않았던가.
마지막으로, 시민들을 가장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이 있다. 앞선 모든 비겁함에 대한 비판에도 “자신만이 해결할 수 있다”라고 겁박하는 비겁함이다. 일부 지도자들은 자신을 유일한 해결책으로 포장하며 국민을 협박한다. 만일 “내가 아니면 나라가 무너진다”라는 식의 발언을 하는 지도자들이 있다면, 우리는 역사적 교훈을 떠올려야 한다. 독재자와 같은 정치인과 지지 세력이 비겁함이라는 질병에 걸려 있다면, 우리 시민들은 도덕적 분노와 연대로 맞서야 한다. 의학에서 면역체계가 병균을 퇴치하듯이, 사회적 면역력은 시민들의 연대에서 비롯된다.
1980년대 한국 민주화 운동의 시민들, 그리고 지금까지 지속되어온 사회적 연대 운동은 권력자의 비겁함에 맞서서 민주주의를 지켜왔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지켜야 할 자긍심이다. 이 자긍심이야말로 정치적 비겁함이 심어놓은 ‘내면화된 억압’에서 치유되는 해독제이다.
김관욱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
김관욱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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