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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호의 앵커칼럼] 역사를 또 잊는 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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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의 참상을 담은 '간양록'에는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적선 수천 척이 항구에 가득 찼는데, 우리나라 남녀가 서로 뒤섞여 있고, 양옆에는 시체가 산같이 쌓였으며, 울음소리가 하늘에 사무쳐 바닷물도 역시 흐느꼈다."

부산포에 상륙한 일본군은 20일 만에 서울을 함락했습니다. 조선이 속수무책으로 당한 이유, 바로 '외교 실패' 때문입니다.

전쟁 1년 전, 통신사 황윤길과 김성일이 일본을 다녀왔지만, 두 사람의 의견이 완전히 갈렸습니다.

결국, '전쟁이 없다'고 주장한 김성일이 이겼고, 그 이면에는 서인과 동인의 당파 싸움이 있었습니다.

미국이 한국을 이른바 '민감(sensitive)국가'로 지정했습니다.

에너지부가 지정하는 '민감국가'는 중국, 러시아, 북한, 이란, 쿠바처럼 주로 테러 우범국이거나 미국의 제재 대상국들 입니다.

'상호 방위 조약'을 맺은 동맹국 중엔 한국이 유일합니다. 이리 되면 차세대 원전, AI, 양자컴퓨터 같은 미래 첨단 기술 부문 협력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한미 간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협상도 어려워지고, 트럼프 2기 정부와의 통상, 방위비 협상도 불리해질 수밖에요.

"비공식 제보받은 것을 가지고 상황 파악을 하고 있는 중이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아직 최종 확정된 게 아니라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국이 민감국가로 지정된 건 바이든 정부가 끝나기 2주 전인 지난 1월 초 였습니다.

두 달 동안 뒤통수를 맞은 지도 모른 채 지나갔습니다. 아직도 왜 그렇게 당했는지 이유도 설명 못합니다.

대미 외교 공백이 그대로 노출된 겁니다.

탄핵정국이다 보니, 트럼프 정부가 출범하고도 정상외교는커녕, 고위급 소통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최근 취임 후 첫 인도 태평양 지역 순방에 나선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은 우리만 쏙 뺐습니다. 심각한 '코리아 패싱' 입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여야는 남 탓만 합니다. "친중·반미 이재명과 민주당이 원인" 이라거나 "핵무장 주장이 민감국가 지정으로 이어졌다"고 정부를 비난합니다.

독일의 대철학자 헤겔은 "우리가 역사에서 배우는 것은, 아무도 역사에서 배우지 않는다는 것" 이라고 했습니다. 역사에서 배우지 않는 나라와 민족은 고난을 거듭할 뿐입니다.

3월 17일 윤정호의 앵커칼럼, '역사를 또 잊는 민족' 이었습니다.

윤정호 기자(jhyo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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