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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비상계엄에 연루된 국군방첩사령부 장교 20명과 관계자 3명에 대한 검찰 수사기록을 공개한다. 방첩사가 계엄의 기획·집행부 역할을 했던 만큼 이 기록을 보면 현직 대통령의 ‘내란’이 어떻게 시작돼서 어떻게 끝났는지, 왜 실패했는지를 생생히 알 수 있다. 그들의 진술에는 군이 불법 비상계엄에 동원된 데 대한 안타까움과 분노가 서려 있다. 불법 명령을 거부하지 못한 것에 대한 자책과 회한도 엿보인다. 5편으로 나눠 공개한다. 직접 관련자나 수사 대상이 아닌 사람은 실명을 가리고, 특정 부대나 부서명, 병력과 무기수도 가렸다. *표가 있는 괄호는 진술 조서 원문에 있는 내용, *표가 없는 괄호는 임의로 적은 것이다. <편집자 주>
① “사령관, 계엄 해제되지 않은 것처럼 행동”
② “이 XX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네”
③ “북한이 도발했습니까?”
④ “코드 원 통화 후 공포탄, 단전 이야기 나온 걸로 기억”
⑤ “체포 명단 없었다” vs. “14명 체포 지시 있었다”...서로 다른 진술
2024년 12월 3일 밤, 대한민국은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로 충격에 휩싸였다. 내란 수괴 윤석열은 헌재 심판정에 나와 ‘계몽령이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지시하지 않았다’, ‘호수 위에 떠 있는 달 그림자를 쫓는다’며 그날의 목격자이며 생존자인 국민을 조롱했다.
하지만 계엄이 해제된 후 검찰 조사를 받은 12.3 비상계엄에 동원된 국군방첩사령부(방첩사) 장교 20명과 관계자 3명의 증언은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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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형 방첩사령관은 수사 과정에서 일관되게 “나는 출동을 지시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검찰 조사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서두르지 않고 채근하지 않고 나는 한마디도 안 했다. 다만 밑에서는 나의 이런 마음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매뉴얼대로 돌아간 것이다.그러나 그의 부하들은 정반대의 증언을 하고 있다. 김대우 방첩수사단장(해군 준장)은 12월 3일 밤 여 사령관이 자신에게 직접 14명의 정치인 체포 명단을 전달했다고 진술했다. 김 단장은 검찰 조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여인형 방첩사령관 (중장, 12월 14일, 2회 조서)
12월 3일 23시경 여인형 사령관이 전화해서 ‘김용현 장관으로부터 명단을 받았으니 수첩에 받아 적어라’고 했습니다.체포 대상자는 이재명, 우원식, 한동훈, 조국, 조해주 등 총 14명이었으며, 김 단장은 “수사관들을 출동시켜 명단에 있는 사람들을 체포해 수방사로 이송시키라”는 지시를 여인형 사령관에게 받았다고 증언했다. 구민회 방첩수사단 수사조정과장(중령)도 김대우 단장의 진술을 뒷받침했다.
- 김대우 방첩사 방첩수사단장 (해군 준장, 12월 11일)
“12월 4일 00시 38분경 신동걸 등 8명과 그룹콜. “김대우 단장이 7개 팀 모두 우원식, 이재명, 한동훈 3명 검거에 집중하라고 지시했다. 3명 중 먼저 검거된 인원이 있으면 포박하거나 수갑을 채워 수방사로 데리고 가라”고 지시했습니다.”여 사령관이 체포 작전에 직접 관여하지 않았다면, 대체 이 지시는 어디서 나온 것인가? 누가 무슨 이유로 거짓말을 하고 있는가?
- 구민회 방첩사 방첩수사단 수사조정과장 (중령, 12월 12일, 2회 조서)
홍장원의 통화 기록과 증언
비상계엄 선포 직전과 직후, 윤석열은 주요 인사들과 긴밀히 통화했다. 검찰은 홍장원 국정원 1차장의 통화 기록을 확보했다.
ㆍ 12월 3일 20시 00분, 윤석열 → 홍장원 (7초)
ㆍ 12월 3일 20시 22분, 홍장원 → 윤석열 (20초)
ㆍ 12월 3일 22시 46분, 여인형 → 홍장원 (1분 3초)
ㆍ 12월 3일 22시 53분, 윤석열 → 홍장원 (1분 24초)
ㆍ 12월 3일 22시 58분, 홍장원 → 여인형 (48초)
ㆍ 12월 3일 23시 06분, 홍장원 → 여인형 (2분 47초)
대통령께서 첫 말씀이 뭔가 흥분해서 자랑하듯이 “봤지? 비상계엄 발표하는 거”라고 하기에 “네, 봤습니다”라고 답변드리니, 바로 “이번 기회에 싹 다 잡아들여. 싹 다 정리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국정원에도 대공수사권을 줄 테니까 우선 방첩사를 도와 지원해. 자금이면 자금, 인력이면 인력, 무조건 도와”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제가 그래서 비상계엄 상황에서 임무 부여하는 것이기 때문에 “네, 알겠습니다”라고 답변드렸습니다. 그 후 대통령께서 “그래, 잘해”라고 하시면서 격려해주신 후 통화를 마쳤습니다. 그게 다입니다.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대대적인 체포 작전을 승인하거나 지시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홍장원 전 차장은 헌법재판소에 증인으로 나와 탄핵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 앞에서 똑같이 증언했다. 윤석열은 홍장원의 증언을 모두 부인했다.
- 홍장원 국정원 1차장 (12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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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은 선관위 서버 장악 시도 명령도 부인했으나, 방첩사 간부들의 진술은 달랐다.
12월 3일 23시 55분, 12월 4일 00시 02분경 여인형 사령관이 저에게 “전산센터 통제, 서버 카피, 어려우면 서버 자체를 떼어 오라”고 지시했습니다
- 정성우 방첩사 1처장 (준장 진, 12월 11일)
12월 3일 23시 50분, 정성우 1처장이 저와 박태주, 이종훈, 유재원, 양승철, 안O욱에게 “계엄이 선포되었고 사령관님 지시로 너희들은 내 지시를 받는다. 우리는 포고령 중 2번 사항 관련 임무를 받았다. 합법적으로 지시가 내려온 것으로 알고 있고, 장관님께서 지시에 따르지 않으면 항명죄로 조치한다고 하셨다”, “과천 중앙선관위 본부, 관악 중앙선관위, 수원 선관위 연수원, 여론조사기관 꽃 등 4개소에 팀을 나누어 출동해라”, “서버를 확보해라” 등의 지시를 했습니다.
- 송제영 방첩사 과학수사센터장 (대령, 12월 12일)
법무 검토를 받았다고는 못 들었는데, 처장님이 나중에 전화하셔서 “어디냐, 들어가지 마라. 최대한 멀리 떨어져 있어라”고 하시긴 했습니다.상당수의 방첩사 간부들이 계엄 작전의 위법성을 인지하고 있었으며, 이에 따라 지시 이행을 지연시키거나 무력화하려 했음을 시사한다. 여인형 전 사령관은 이에 대해 "비상계엄 이후라면 모를까, 그 이전에는 그런 사실이 없습니다"라고 증언했다.
- 송제영 방첩사 과학수사센터장 (대령, 12월 12일)
○ 질문: 정성우(방첩사 1처장)는 진술인이 위와 같이 선관위와 여론조사기관 꽃의 위치를 물어보았고, 이에 대해 정성우가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답을 하니, 진술인이 특전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하는데, 사실인가요?계엄 해제 후, 증거 조작 정황
● 답변: 비상계엄 이후라면 모를까, 그 이전에는 그런 사실이 없습니다.
- 여인형 방첩사령관(중장, 12월 24일, 2회 조서)
계엄 해제 이후 방첩사 내부에서 자료 삭제 및 증거 조작을 지시했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배정효 방첩사 지휘협력과장(해군 중령)과 유OO 교관은 검찰 조사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12월 4일 04시경, 여인형 사령관이 ‘자료 같은 거 잘 지우라’고 지시했다.
- 배정효 방첩사 지휘협력과장(해군 중령, 12월 12일)
문상호 사령관이 “여기에 있었던 모든 일은 함구하라”고 얘기했고, 문 사령관이 나간 후에는 김봉규 대령 또는 정성욱 대령이 “여기서 작성한 메모들을 한군데 모아서 폐기하라”고 지시하여 자료들을 모아 세절하고 해산하였습니다.김대우 방첩수사단장은 체포 명단을 없애기 위해 내부 간부들에게 조작을 요구한 정황이 드러났다. 이재학 방첩수사단 안보수사실장(대령)은 “이 지시는 따를 수 없다”며 반발했다고 증언했다.
- 유OO(속초 정보사 교관, 12월 21일)
김대우 단장이 12월 4일 10시경 저에게 전화하여 “사령관님 지시사항이다. 현장에 간 부대원들은 목적, 임무 없이 현장에만 갔을 뿐이고, 체포 명단도 없었다는 취지로 계급별 똑똑한 애를 한두 명씩 골라 우리한테 유리하게 메모를 해놓으라고 지시하라. 나중에 수사기관에 조사를 받을 때 제출할 수 있도록 해라”라고 지시했습니다. 당장은 “알겠다” 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아무래도 이러면 안 될 것 같아 노영훈 실장, 송제영 과학수사센터장, 구민회 중령과 상의하여 따를 수 없는 지시라고 협의하고, 15~16시에 저랑 노영훈 실장, 송제영 센터장, 구민회 중령이 모여서 김대우 단장실로 찾아가 “사령관님의 지시 사항은 위법한 것입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비상계엄의 진짜 기획자는 누구인가
- 이재학 방첩사 방첩수사단 안보수사실장(대령, 12월 11일)
방첩사 간부들이 증언한 비상계엄 관련 지시의 시작은 여인형 사령관이다. 그러나 그 뒤에는 대통령 윤석열과 국방부 장관 김용현이 있다. 여 사령관은 자신이 계엄 계획을 주도하지 않았으며, 실제 비상계엄의 계획을 수립한 사람은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일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언론에서는 제가 비상계엄의 계획을 수립했다고 보도하기도 하나, 저는 그런 역할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오히려 노상원 장군이 그런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노상원 장군이 조력을 했을 것으로 보입니다.‘방첩사 수사기록’ 진술 기록 중 배치되는 내용 (진술 간 불일치, 사실 관계 불일치 등)
- 여인형 방첩사령관(중장, 12월 14일, 2회 조서)
1. 체포 대상자 명단
홍장원 (국정원 1차장), 구민회 (방첩사 수사조정과장), 김대우 (방첩사 방첩수사단장) vs. 여인형 (방첩사령관) :
ㆍ 홍장원, 구민회, 김대우는 여인형이 14명의 명단을 불러줬다고 일관되게 진술. 이 명단에는 이재명, 우원식, 한동훈, 조해주, 조국, 양경수, 양정철, 이학영, 김민석, 김민웅, 김명수, 김어준, 박찬대, 정청래가 포함.
ㆍ 여인형은 비상계엄 선포 이전에는 체포 대상자 14명의 명단을 몰랐다고 주장. 비상계엄 직후 김용현 장관에게서 처음 들었다고 함. 하지만, 대통령이 평소에 부정적인 말을 하던 사람들이라고 언급.
ㆍ 홍장원은 “정청래도 명단에 있었다”고 기억하지만, 여인형이 진술하는 명단에는 정청래가 없음. 구민회가 작성하고 군검찰이 압수한 명단에는 정청래가 있음.
ㆍ 여인형, "언론에 언급된 김동현 판사는 체포 대상자인지 헷갈린다"고 진술.
ㆍ 명단에 권순일이 포함되어 있는 것에 대해서는 여러 증언이 일치하나, 정청래의 포함 여부에는 증언이 갈림.
2. 선관위 서버 출동 지시
정성우 (방첩사 1처장) vs. 여인형:
ㆍ 정성우는 여인형 사령관이 자신에게 선관위 3곳(*과천, 관악, 수원연수원)과 여론조사 ‘꽃’에 가서 전산실을 통제하고 필요시 서버를 카피, 또는 서버 자체를 떼어 오라고 지시했다고 진술.
ㆍ 여인형은 비상계엄 이전에는 그런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부인.
ㆍ 정성우의 진술은 여러 인물들(*송제영, 박태주, 이종훈, 양승철 등)의 진술과 일치함.
3. 임무 중단 지시
정성우 (방첩사 1처장) vs. 여인형:
ㆍ 정성우 방첩사 1처장은 12월 4일 01시 33분경 송제영 과학수사센터장에게 “어디쯤이냐. 들어가지 마라. 멀리 떨어져 있어라”고 지시했고, 02시 34분경 복귀 명령을 내렸다고 진술. 이는 송제영, 유재원, 박태주 등의 진술과 일치.
ㆍ 여인형은 정성우에게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말라”, “그만해라. 대기하라”고 지시한 적이 없다고 부인. 12월 4일 00시 02분 이후로 정성우에게 전화한 적도 없다고 함.
ㆍ 정성우는 임무 중단 지시를 할 때 여인형에게 보고하지 않았다고 진술. 불법 명령임을 인식하고 막아야 한다는 위기의식을 느꼈기 때문.
4. 경찰 지원 요청
구민회 (방첩사 방첩수사단 수사조정과장) vs. 정성우:
ㆍ 구민회는 경찰 100명, 조사본부 100명이 오기로 했다는 김대우 단장의 말을 듣고, 경찰과 조사본부에 지원을 요청했다고 진술.
ㆍ 정성우는 이 사실을 모른다고 진술.
5.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 관련
정성우 vs. 여인형:
ㆍ 정성우 방첩사 1처장은 여인형 방첩사령관이 노상원(전 정보사령관) 장군 번호를 알려주며 전화해 보라고 했다고 진술. 노상원 장군과 통화하며 법적 문제 가능성을 언급.
ㆍ 여인형은 비상계엄 선포 이후 김용현 장관이 선관위에 나가는 사람들에게 노상원을 연결해 주려고 했다고 진술. “여기서 노상원이 왜 나오냐”고 생각했다고 함.
ㆍ 여인형은 자신이 비상계엄 계획을 수립했다는 보도는 사실이 아니며, 오히려 노상원 장군이 그런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
뉴스타파 최윤원 soulabe@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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